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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Journey in the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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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ntíri Eä of the Ring


III

Palantíri


palantíri가 Númenor에서 조차도 널리 사용되거나 널리 알려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간대륙(Middle-earth)에서 그것들은 튼튼한 탑의 높은 곳에 있는 경비되는 방들 안에 보관되었고, 오직 왕들, 통치자들, 그리고 그들이 임명한 관리인들만이 그것들에 접근하였으며, 결코 공공연하게 참고되지도 전시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왕들이 소멸할 때까지 그것들은 악의적인 기밀이 아니었다. 그것들을 이용하는 데에는 아무 위험도 수반되지 않았으며, 왕 혹은 그것들을 조사하도록 허가받은 다른 사람은 누구도, 멀리 있는 통치자들의 행위나 의견들을 그 돌들을 통해 얻으면 그것에 대해 그가 알게 된 출처를 밝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1
    왕들의 시절과 Minas Ithil의 손실 이후로 그것들의 공개적이며 공식적인 사용에 대해 거론한 것은 더 이상 있지 않다. 북부에는 1975년의 마지막 왕 Arvedui의 난파 이후로 응답하는 돌이 있지 않았다.2 2002년에는 Ithil석을 잃었다. 그 뒤로는 Minas Tirith의 Anor석과 Orthanc석만이 남아있었다.3
    그때 두 가지가 그 돌들이 방치되고 그 백성의 일반적인 기억에서 소멸되는 원인이 되었다. 첫번째는 Ithil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무시였으니, 그것은 Minas Ithil이 함락되고 약탈되기 전에 그 방어자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합리적으로 여겨졌으나,4 그것이 빼앗겨 Sauron의 소유가 되는 것은 분명 가능하였으며, 일부 보다 현명한 이들과 보다 선견지명이 있는 이들은 이를 검토하였는지 모른다. 그들은 그리 하고서, 그 돌은 그것과 통하는 또다른 돌과 접촉하지 못하면 그가 Gondor에 피해를 주는 데에는 거의 쓸모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깨달았던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5 반지 전쟁(War of the Ring) 때까지 집사들의 모든 기록물들에서는 조용한 Anor석은, 이 이유 때문에 통치 집사들(Ruling Stewards)만이 접근할 수 있게 빈틈없이 지켜지는 비밀로 간직되었으며, Denethor II 때까지는 그들에 의해 사용된 적이 결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두번째 이유는 Gondor의 쇠퇴, 그리고 그 나라의 높은 사람들 중에서도 소수를 뺀 모두에게서 고대 역사에 대한 흥미나 학식이 쇠미해진 것으로, 그들의 족보, 즉 그들의 혈통 및 혈연관계에 관한 것까지 제외하면 말이다. 왕들 이후로 Gondor는 학식이 희미해지고 기술이 더 단순해지는 ‘중세시대(Middle Age)’로 저물어갔다. 통신은 전령과 심부름용 기수들, 혹은 비상시엔 봉화에 의존하였고, 소수에게만 그 존재가 알려진 Anor 및 Orthanc의 돌들이 설령 과거로부터 여전히 보물로서 지켜졌다 해도, 옛날의 그 일곱 돌들(Seven Stones)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으며,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지식의 운문들은 설령 기억되었다 해도 더 이상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것들의 작동법은 전설 속에서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고대 왕들의 요정스러운 능력과, 그들을 곁에서 따르며 그들에게 소식을 가져오거나 그들의 전갈을 나르는, 새같은 날쌘 영들로 변형되었다.
Eä of the Ring    Orthanc석은 이 무렵에 집사들에게서 오랫동안 경시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더 이상 어떤 쓸모도 있지 않았고, 난공불락인 탑 안에서 안전하게 보관되었다. 그것도 Ithil석에 관한 그 의혹의 그림자로 드리워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Gondor가 점차 덜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된 지역에 있었다. 결코 인구가 밀집된 적이 없던 Calenardhon은, 1636년의 어둠의 역병(Dark Plague)으로 황폐화되었고, 그후로 Númenor인의(Númenórean) 후손 출신의 거주민들이 Ithilien 및 Anduin에 보다 가까운 지대로 이주하여 그들을 꾸준히 빼앗겼다. Isengard는 집사들의 개인 소유로 남아있었지만, Orthanc 자체는 유기되었고, 결국에는 닫혀져, 그 열쇠들은 Minas Tirith로 옮겨졌다. 집사 Beren이 Saruman에게 이것들을 주었을 때 설령 그 돌을 조금이라도 고려하였다 해도, 그는 그것은 Sauron에 대항하는 저 회의의 우두머리의 손보다는 더 안전한 어느 손 안에서도 있을 수 없다고 아마 생각하였을 것이다.

Eä of the Ring    Saruman이 자신의 주의를 끌었을 그 돌들에 대해 특별한 학식을 자신의 연구로부터6 입수하였으며, Orthanc석은 아직 그 탑 안에 온전히 있다고 확신하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명목상 그 탑의 관리인이자 Gondor의 집사들의 부관으로서 2759년에 Orthanc의 열쇠들을 얻었다. 그 무렵에 Orthanc석에 대한 문제는 백색회의(White Council)는 거의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집사들의 호의를 얻던 Saruman만이, palantíri의 중요성과 남아있는 그것들의 사용법들을 알아챘을 정도로 이미 Gondor의 기록물들을 충분히 연구해놓았으나, 그는 자신의 동료들에게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Gandalf에 대한 질투와 증오 때문에 Saruman은 그 회의와 협력하는 것을 그만두었으며, 그들은 2953년에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때 Saruman은 아무 정식 선언도 없이 Isengard를 자신의 영토로 빼앗고는 Gondor에는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회의가 이것을 불가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Saruman은 자유로운 요원이었으며, 그가 바란다면 Sauron에 대한 저항에 있어 그만의 정책에 따라 독자적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었다.7
    일반적으로 그 회의는 독자적으로 그 돌들과 그것들의 아주 오래된 성질에 대해 알았던 것은 틀림없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현 시점에 아주 중요하다고 여기진 않았으니, 그것들은 Dúnedain의 왕국들의 역사에 귀속된, 놀랍고 훌륭하지만 이제는 대부분 잃어버렸거나 거의 쓸모가 없게 된 물건들이었다. 그 돌들은 원래 ‘순결’하며, 어떤 악한 목적에도 이용되지 못하는 것으로 기억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것들을 악의적이며 지배와 속임수의 도구로 만든 자가 Sauron이었다.
Eä of the Ring    (Gandalf의 경고를 통해) 그 회의가 Saruman의 복안들을 반지들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Gandalf 조차도 그가 Sauron의 동맹자, 혹은 종복이 되었다는 것은 알지는 못했다. 이것을 Gandalf는 3018년 7월에야 겨우 깨달았다. 하지만 비록 Gandalf가 끝무렵의 세월에 Gondor의 문서들을 연구함으로써 그곳의 역사에 대한 자신과 그 회의의 학식을 넓혔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여전히 그 반지였으며, 그 돌들에 잠재된 가능성들은 깨닫지 못했다. 반지 전쟁 무렵에는 그 회의가 Ithil석의 운명에 관한 의혹을 알아채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으며, (분명 Elrond, Galadriel, Gandalf 같은 사람들 조차도 자신들의 근심들의 무게에 눌려) 만일 Sauron이 그 돌들 가운데 하나를 소유하게 되고, 그때 다른 어느 누구라도 다른 하나를 사용하게 되면 무슨 결과가 생길지를 고려한, 그것의 중대성을 충분히 인식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던 것은 명백하다. (Parth Galen에서의 원정대 공격에서 Isengard의 병력이 Sauron이 지시한 다른 자들과 합류했었던 것이 드러난 이후에 그 존재가 보이게 된) Isengard와 Barad-dûr 간의 그 ‘연결수단’이 사실 Orthanc석 — 그리고 다른 하나의 palantír였다는 것을 갑작스레 밝히기 위해서는, Dol Baran에서 Orthanc석이 Peregrin에게 작용한 효과들이 증명될 필요가 있었다.
    Dol Baran에서부터 Shadowfax를 몰면서 Gandalf가 Peregrin에게 해준 말에서 (두 개의 탑 III 11) 그의 직접적인 목적은, 그 Hobbit이 대담하게도 만지작거린 것들의 고전적 가치, 위엄성 및 능력을 깨닫기 시작하도록 그에게 palantíri의 역사에 대해 약간의 개념을 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것을 깨닫고 추론한 과정을 내보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Sauron이 어떻게 그것들을 제어하게 되어, 그것들이 아무리 고귀한 어느 누구에게라도 사용하기가 위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그 마지막 지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Gandalf의 머릿속은 진정 그 돌들로 분주하였으며, 멀리 떨어진 사건들에 대해 Denethor가 가지고 있는 학식과,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 보통인 종족 및 일가에 속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예순 살을 많이 넘지 않았을 때에도 처음부터 눈에 띄던 때아니게 늙은 그의 모습처럼, 그가 지켜보았고 곰곰 생각했었던 많은 것들에 대해 그 Dol Baran에서의 계시가 담고 있는 것들을 검토하였다. Gandalf가 Minas Tirith에 서둘러 도달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시간의 촉박함과 전쟁의 긴박함에 더하여, Denethor도 또한 palantír, Anor석을 사용하였다는 갑작스러운 염려와 이것이 그에게 무슨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판단하고 싶은 그의 바램으로 인해 재촉된 것이었으니, 절망적인 전쟁이라는 고된 시험에서든 아니든, 그가 (Saruman처럼) 더 이상 신뢰받지 못하며 Mordor에 항복할지 모른다는 것은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었다. Minas Tirith에 도착하자마자, 그리고 이어진 날들에 Gandalf가 Denethor와 했던 관계들을,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게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는 모든 것들을, Gandalf의 머릿속은 이 의심의 빛으로 비추어 바라보았던 것이 틀림없다.8
    그리하여 Minas Tirith의 palantír의 중요성이 그의 생각에 들어온 것은 겨우 Peregrin이 Dol Baran에서 겪은 일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 존재에 관해 그가 아는 것 혹은 추정한 것들은 물론 훨씬 일렀다. 조심스런 평화기(Watchful Peace) (2460년) 말기와 백색회의의 결성 (2463년)까지의 Gandalf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져있는 것이 거의 없으며, Gondor에 대한 그의 관심은 Bilbo가 반지를 찾고 (2941년) Sauron이 Mordor에 공개적으로 돌아온 (2951년) 이후에야 보여지는 듯 하다.9 그때 그의 주의는 (Saruman처럼) Isildur의 반지에 집중되었으나, Minas Tirith의 기록 보관소에서 문서들을 읽으면서 그는 Gondor의 palantíri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으니, 다만 그것들에 잠재된 중대성에 대한 즉각적인 이해는 Saruman에게 보였던 것보다는 적긴 했는데, 그의 정신은 Gandalf의 것과 대조적으로 늘 사람들보다는 권세를 가진 인공물과 도구들에 더 많이 이끌렸다. 그래도 Gandalf는, Arnor라는 고대의 나라와 그 지역들의 후기 역사에 관한 모든 것이 그의 특별한 관할 지방이었으며, Elrond와는 친밀한 동맹 관계였으므로, 아마 그 무렵에 이미 palantíri의 본질과 궁극적인 기원에 대해 Saruman보다 더 많이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Anor석은 비밀이 되어버렸으니, 집사들의 어느 연대기나 기록물에서도 Minas Ithil의 함락 이후로 그것의 운명에 대해서 아무 거론도 나오지 않았다. 역사는 실로 Orthanc도 Minas Tirith의 백색탑(White Tower)도 적에게 빼앗기거나 약탈당한 적이 없음을 명확히 해주었을 것이며, 그러므로 그 돌들은 거의 어쩌면 그 고대의 부지들에 온전한 채로 남아있을 것으로 여겨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들이 집사들에 의해 옮겨져 어떤 비밀의 보물실에, 심지어 Dunharrow와 비교될만 한, 산 속의 어떤 마지막 비밀 피난처에 있는 곳에, ‘깊이 파묻히’지는10 않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Eä of the Ring    Gandalf는, Denethor가 그의 지혜가 쇠약해질 때까지는 그것을 사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기록되었어야 했다.11 Denethor가 왜 그 돌을 감히 사용하였는지는 억측의 문제였으며 그리 남아있으므로, 그는 그것을 알려져있는 사실로써 진술할 수가 없었다. Gandalf는 그 문제에 대해 그가 한 바대로 잘 생각을 했겠지만, Denethor와 그에 대해 전해지는 것을 고려하면, 그가 3019년보다 여러 해 전에, Saruman이 Orthanc의 돌을 사용하는 것을 감행하거나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때보다 더 먼저 Anor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럴듯 하다. Denethor는 2984년에 집사직을 이어받았으니, 그때 그는 쉰 네 살이자 주인티가 나는 남자로서, 현명하며 그 시절의 기준을 넘어설 정도로 배운 자이자, 강한 의지와 자신의 능력에 자신을 가진 두려움을 모르는 자였다. 그의 ‘섬뜩함’은 2988년에 그의 아내 Finduilas가 숨진 후에 다른 이들에게 처음으로 눈에 띌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palantíri 문제와, 통치 집사 외에는 그 후계자만이 이용 가능한, 집사들의 특별 기록 보관소에 보존된 그것들에 관한 전승들 및 그 사용법을 연구하면서, 그가 권세를 얻자마자 즉시 그 돌에게로 주의를 돌렸다는 것은 아주 명백해 보인다. 그의 부친 Ecthelion II의 치세 말기 동안에, ‘Thorongil’의12 명성과 그의 부친이 그에게 보인 호의로 인해 그의 지위가 약화되는 동안 Gondor에서의 고민이 증가하면서, 그는 그 돌을 매우 참고하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그의 동기들 가운데 하나는 Thorongil에 대한 질투, 그리고 Thorongil의 집권기 동안에 그의 부친이 많은 주의를 기울인 Gandalf에 대한 적대감이었던 것이 틀림없는데, Denethor는 학식과 정보에 있어 이 ‘강탈자들’을 능가하고, 또한 그들이 다른 곳에 있을 때에는 가능하다면 그들을 계속 지켜보고 싶었다.
    Denethor가 Sauron과의 대면에 대한 부담을 타파한 것은, 그 돌의 사용에 대한 일반적인 부담과는 구별되어야만 한다.12 후자를 Denethor는 견뎌낼 수 있다고 (그리고 이유가 없지 않다고) 생각하였는데, Sauron과의 대면은 거의 확실히 여러 해 동안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Denethor가 원래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마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palantíri의 사용법, 그리고 ‘보기’ 위해 그것들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과, 다른 쪽 반응하는 돌 및 그 ‘조사자’와의 통신용으로 사용하는 것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여기를 보라. Denethor는 그 기술을 익힌 후에 Anor석 하나만 사용하여 먼 거리의 사건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그가 그것을 조작하는 것을 Sauron이 알아채게 된 후에도 그는 자신의 목적대로 자신의 돌을 조종하는 힘을 유지하는 한 여전히 그리 할 수 있었으니, Sauron이 Anor석을 늘 자기 쪽으로 ‘비틀려’고 시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그 돌들은 Sauron의 웅대한 복안과 작전들에 있어서 겨우 작은 한 물품일 뿐으로, 그의 적수들 가운데 둘을 지배하고 현혹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그가 영구히 감시하며 Ithil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만 한다. 그런 도구들을 부하들이 사용하도록 맡기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으며, 그의 어떤 종복의 정신력도 Saruman 혹은 심지어 Denethor의 그것 조차도 능가하지 못했다.
    Denethor의 경우에는, 그 집사는 Sauron에 대해서도 조차 강력하게 되었으니, 그 돌들은 적법한 사용자들, 그 중에서도 (Aragorn처럼) 진짜 ‘Elendil의 후계자들’을 훨씬 더 잘 따르지만, Saruman 혹은 Sauron과 비교하자면 (Denethor처럼) 상속받은 권한을 가진 자한테도 또한 그랬다는 사실로 인해서였다. 그 효과들은 각기 달랐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Saruman은 Saruon의 지배하에 들어가 그의 승리를 바랬거나, 더 이상 그것에 대항하지 않았다. Denethor는 Sauron을 뿌리친 채로 견고히 있었지만, 그의 승리는 피할 수 없다고 믿게 되었으며,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차이의 이유들은, 첫째로 Denethor가 위대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의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 입은 (외관상) 치명적인 부상이라는 최후의 일격을 받을 때까지 그의 고결한 품성을 유지하였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교만하였지만, 이는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으니, 그는 Gondor와 그곳의 백성을 사랑하였고, 숙명에 의해 자신이 이 절망의 시간 속에서 그들을 이끌도록 임명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둘째로, Anor석은 정당한 권리로 그의 것이었으며, 방편적인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그가 자신의 진지한 고민들로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 거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Ithil석은 악의 수중에 있다고 추측하였으며, 자신의 힘을 믿으며 그것과의 접촉을 각오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의 믿음은 완전히 정당화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Sauron은 그를 지배하는 데에는 실패하였고, 속임수를 통해 그에게 영향을 줄 수만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는 처음에는 Mordor쪽은 보지 않고, 그 돌이 감당할 만큼의 ‘먼 광경들’로, 그 후로는 멀리 떨어진 사건들에 대한 자신의 놀랄 만한 학식으로 만족하였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Orthanc석 및 Saruman과 접촉해봤는지는 전해져있지 않은데, 아마도 그는 했을 것이며, 자신에게 이득이 되게 그리 했을 것이다. Sauron은 이 회담에 끼어들 수가 없었으니, 오직 Osgiliath의 주인석(Master Stone)을 사용하는 조사자만이 ‘도청’할 수가 있었다. 다른 돌들 중 두 개가 반응 중인 동안에는, 제삼의 돌은 그 양쪽 모두가 비어있는 것으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14

    Gondor에는 palantíri에 관하여 왕과 집사들에 의해 보존된 상당한 지식이 있었으며, 그것들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된 이후에도 전수되어왔던 것이 틀림없다. 이 돌들은 Elendil과 그의 후계자들에게 주어진 양도될 수 없는 선물로써, 정당한 권리로 그들에게만 귀속된 것이었으나, 이것은 그것들이 이 ‘후계자들’ 가운데 한 명만이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들은, ‘Anárion의 후계자’이든 ‘Isildur의 후계자’이든, Gondor나 Arnor의 적법한 왕의 허가를 받은 어느 누구든지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것들은 보통 그런 대리인들이 사용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각각의 돌에는 그 관리인이 있었으며, 그들의 의무들 중 하나는 규칙적인 시간 간격으로, 명령을 받았을 때에, 아니면 필요한 때에 ‘그 돌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또한 그 돌을 방문하도록 임명되었으며, ‘정보수집’에 관여하는 각내상들은 그것들을 정기적으로 특별히 검사하여 얻어낸 정보를, 요구되는 정도에 따라, 왕과 자문위원회에 혹은 사적으로 왕에게 보고하였다. 후기 Gondor에서는 집사직이 중요해지고 세습이 되어, 이를테면 왕의 영구적인 ‘대역’이자 필요시에는 즉각적인 부왕을 제공하게 되면서, 그 돌들에 대한 통솔권과 사용권은 주로 집사들의 수중에 있었던 것으로, 그리고 그것들의 본질과 사용에 관한 전승들은 그들의 가문에서 지켜지고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집사권은 1998년부터 죽 세습되었으므로,15 따라서 그 돌들을 사용할, 아니면 다시 그 사용권을 위임할 권한은 그들의 가계에서 합법적으로 전해졌고, 그러므로 Denethor에게 완전히 귀속된 것이었다.16
Eä of the Ring    하지만 반지들의 제왕의 글에 관해서는, 심지어 세습되기까지 한 그런 위임된 권한에 대하여, 어느 ‘Elendil의 후계자’이든지 (즉, 이 혈통 덕분에 Númenor인의 나라들에서 왕위나 군주권을 차지한, 인정받는 후손은) palantíri 가운데 어느 것이든 사용할 권리가 있었다는 점을 주의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Aragorn은 Orthanc석이 이제 당장은 소유자나 관리인이 없으므로,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취할 권리를 주장하였는데, 또한 그는 정당한 권리로(de jure) Gondor 및 Arnor 양국의 적법한 왕이었으며, 의사가 있다면, 타당한 이유를 위해 전에 수여된 것 모두를 자신에게로 회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돌들에 대한 지식’은 지금은 잊혀져있으며, 억측으로,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기록한 것들로부터 부분적으로 메울 수만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완벽한 구체로, 정지해 있을 때에는 짙은 검은 빛의 단단한 유리나 수정으로 만들어진 듯 보였다. 그것들은 아무리 작아도 직경이 대략 일 foot만 했지만, 어떤 것은, 분명 Osgiliath 및 Amon Sûl의 돌들은 훨씬 더 컸고, 한 사람으로는 들어올릴 수 없었다. 원래 그것들은 그 크기와 용도에 적합한 부지에 놓여, 검은 대리석으로 된 낮은 원탁 중앙의 움푹 들어간 곳 혹은 오목한 곳에, 필요할 때 손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두었다. 그것들은 매우 무겁지만 완벽하게 매끈매끈하였고, 사고나 악의적으로 자리에서 밀어내 탁자에서 굴러 떨어뜨려도 손상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은 실로 그 당시 사람들이 제어하는 어떤 폭력으로도 부서질 수가 없었으나, 다만 일부 사람들은 Orodruin의 그것처럼 엄청난 열은 그것들을 박살낼 것이라고 믿었으며, 이것이 Barad-dûr의 몰락 때 Ithil석의 운명이었다고 짐작하였다.
    외부에 어떤 종류의 표시도 조금도 없긴 해도, 그것들은 영구적인 극들이 있으며, 원래는 ‘수직으로’ 서도록 각 부지에 놓였다. 극에서 극까지 이은 선이 지구의 중심을 가리켰지만, 그때 영구적으로 아래인 극이 밑에 있어야만 했다. 이 자세에서 그 둘레의 면들이 바라보는 면들로써, 외부로부터 영상들을 수신하여 그것을 저쪽 편에 있는 ‘조사자’의 눈으로 전달하였다. 그러므로 서쪽을 보고 싶은 조사자는 자신을 그 돌의 동쪽에 두었을 것이고, 그가 보는 영상을 북쪽으로 옮기고 싶으면, 자신의 왼쪽, 남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또한 작은 돌들, Orthanc, Ithil과 Anor, 그리고 어쩌면 Annúminas의 돌들은 원래 상태로 고정된 방향성이 있어, (예를 들면) 그 서쪽 면은 서쪽만을 보며,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비게 될 것이었다. 만일 돌이 자리에서 밀리거나 훼방을 받으면, 관측을 통해 재설치할 수 있었으며, 그때는 그것을 회전시켜보는 것이 유용하였다. 하지만 Orthanc석처럼 옮겨지거나 내던져지면 제대로 설치하기가 아주 쉽지 않았다. 따라서 Peregrin이 그 돌을 만지작거리다 하필 지면에 거의 ‘수직으로’ 두고, 그것의 서쪽에 앉아 하필 그 동쪽을 보도록 고정된 면을 적당한 위치로 해놓았다는 것은, (Gandalf가 말했을 바대로) 인간들이 부르는 대로 하자면 ‘우연’이었다. 큰 돌들은 고정되어있지 않아, 그 둘레가 회전해도 되었으며, 어느 방향으로든 ‘볼’ 수 있었다.17
    palantíri는 단독으로는 ‘볼’ 수만 있을 뿐, 소리는 전달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볼 것을 지정해주는 정신이 통제해주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어, 그 ‘영상들’은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되는 대로 보여주게 되었다. 예컨대 높은 곳에서 그 서쪽을 향한 면은, 그 영상이 양쪽과 위 아래가 희미해지며 왜곡되고, 명확도가 계속 줄어들어서 흐려진 뒤에 있는 것들로 인해 앞에 위치한 것이 불명료해진 채로, 엄청난 먼 거리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것들이 ‘보는’ 것은 우연으로, 어둠에 의해, 아니면 ‘덮어 가리기’를 통해 (아래를 보라) 지정되거나 방해를 받았다. palantíri의 영상은 오직 어둠에 의해서 말고는 물리적인 장애물에 의해 ‘가리어’지거나 ‘차단’되지 않았는데, 따라서 어둡거나 그늘진 작은 일부를 관통하여 바라보는 것처럼 산을 관통하여 바라볼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빛을 받지 않는 안쪽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것들은 벽을 꿰뚫어 볼 수 있지만, 방, 동굴, 혹은 지하 저장실 내부는 어느 정도의 빛이 비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는데, 그것들이 직접 빛을 제공하거나 투영할 수는 없었다. ‘덮어 가리기’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그것들이 보는 것에 대비하는 것이 가능하였는데, 이를 쓰면 특정한 물건 혹은 지역들이 돌에서는 그늘이나 깊은 안개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 돌들과 그것들을 통해 감시받고 있을 가능성을 알아 챈 자들이) 이것을 어떻게 행하였던 것인지는 palantíri의 잃어버린 신비로운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18
    보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그 돌의 영상을 그 직선 상의 혹은 그 부근의 어떤 지점에 집중시킬 수가 있었다.19 제어되지 않는 ‘영상들’은, 특히 작은 돌들에서 작았으니, palantír의 표면으로부터 자신을 얼마간 거리에 (기껏해야 삼 feet 정도) 둔 주시자의 눈에는 훨씬 더 크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능숙하고 강한 조사자의 의지력을 통해 제어되면, 그 배경은 거의 억제하는 동시에, 보다 멀리 떨어진 사물들을 이를테면 더 가깝고 더 선명하게 가져와 확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상당한 거리에 있는 사람은 반 inch 높이의 조그마한 인물상처럼 보여, 풍경이나 다른 사람들 무리에서 집어내기가 어려웠을지 모르나, 외관상 일 foot 정도 높이의 그림처럼 세세한 것은 축소되긴 해도 명확하게는 보일 때까지, 그리고 그가 조사자에게 알려진 자라면 알아보게 될 때까지, 집중력이 그 영상을 확대시키고 선명하게 할 수 있었다. 엄청난 집중력은 조사자가 관심있어하는 어떤 세세한 것까지도 확대하여, (예컨데) 그가 손에 반지를 끼었는지도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집중력’은 매우 피로하게 하였고, 소진되어버렸을 것이다. 그 결과로 그것은, 정보를 다급히 원하며, (아마도 다른 정보로 거들어진) 우연이 조사자로 하여금 그 돌의 뒤죽박죽인 영상들에서 (그와 그의 직접적인 관심사에 중대한) 항목들을 집어낼 수 있게 했을 때에만 시도되었다. 예를 들면 Denethor는 Rohan을 걱정하며 Anor석 앞에 앉아서, 즉시 봉화를 지피고 ‘화살’을 보내라고 명을 내릴지 말지를 결정하다, 북서미서쪽으로 Rohan을 관통하여 바라보며, Edoras에 근접하며 계속하여 Isen 여울 쪽을 향해 지나는 직선에 자신을 위치하였을지 모른다. 그때 그 선상에서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이 눈에 띄였을지 모른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말하자면) 한 집단에 집중하여, 그들이 기수들임을 알아보다가, 마침내 그가 아는 어떤 인물을 발견했을 수 있으니, 예컨데 Helm 협곡으로 증원군과 함께 말달리다 갑자기 이탈하여 북쪽으로 질주하던 Gandalf를 말이다.20
    palantíri는 스스로 사람들의 머릿속을 불시에 혹은 본의아니게 조사할 수는 없었는데, 생각의 전이는 양편 사용자의 의지력들에 달려있으며, (말로 수신되는) 생각은21 오직 서로 통하는 돌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주해

1 그것들은 필시 1944년에 Arnor와 Gondor 사이에 있었던 왕위 계승에 관한 협의에서 사용되었다. 북부 왕국(Northern Kingdom)의 절박한 곤경에 대해 전한, 1973년에 Gondor에서 받은 ‘전갈들’이 아마 반지 전쟁이 다가올 때까지 그것들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일 것이다. [저자의 주.]
2 Annúminas 및 Amon Sûl(Weathertop(비바람꼭대기))의 돌들은 Arvedui와 함께 실종되었다. 북부의 세번째 palantír는 Emyn Beraid 위의 Elostirion 탑에 있는 것으로, 특별한 속성이 있었다(주해 16을 보라).
3 Osgiliath의 돌은 1437년에 동족분쟁(Kin-strife)의 내전 중에 Anduin 강물 속에서 실종되었다.
4 palantíri의 파괴성에 대해서는 여기를 보라. 연대 이야기(Tale of Years)의 2002년 항목에서는, 또한 부록 A (I, iv)에서는 그 palantír는 Minas Ithil의 함락 때 포획되었음을 사실로 진술하나, 내 아버지는 이 연대기는 반지 전쟁 이후에 만들어졌으며, 그 진술은 아무리 확실할지라도 추론되어진 것이라고 적으셨다. Ithil석은 다시는 결코 찾지 못했고, 아마 Barad-dûr의 파괴 때 소멸하였을 것인데, 여기를 보라.
5 그 돌들은 스스로 먼 곳의 혹은 과거의 장면이나 인물들을 수만 있었다. 이것들은 설명이 되지 않았는데, 여하튼 조사자의 의지나 욕망을 통해 어떤 영상이 보이게 지정하는 것은 후기 시절의 사람들에게는 어려웠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정신이 그것과 통하는 돌을 차지하면, 생각이 ‘전달’(되어 ‘말’로써 수신)될 수도 있었고, 한 돌의 조사자의 정신 속의 사물의 영상이 다른 조사자를 통해 보여질 수도 있었다. [보다 많은 것은 여기와 주해 21을 보라.] 이 능력들은 원래는 협의를 할 때 정부에 필수적인 소식, 또는 조언과 의견들을 교환하는 목적으로 주로 이용되었는데, 단순한 친교와 즐거움을 위해 혹은 인사와 조문을 위해서는 덜 자주 쓰였다. 자신의 뛰어난 의지를 전달시켜, 더 약한 조사자를 지배하고, 그에게 억지로 숨겨놓은 생각을 누설하게 하고 명령에 복종시키기 위해 돌을 이용한 자는 Sauron 뿐이었다. [저자의 주.]
6 Saruman이 Minas Tirith의 두루마리와 책들을 오랫동안 공부한 것에 관해 Gandalf가 Elrond 회의에 논평한 것들과 비교하라.
7 보다 ‘속세적인’ 어떤 권세 및 군사 정책에 대해서도, Isengard는 Rohan 간극의 요지로써 잘 위치한 곳이었다. 이것은 서부의 방어에 있어서는, 특히 Gondor가 쇠퇴한 이래로는 약점이 되었다. 그곳을 통해 비밀리에 적대적인 첩자들과 밀사들이, 혹은 결국에는 이전 시대처럼 전투병력이 지나갈 수 있었다. 많은 세월동안 Isengard는 빈틈없이 경비되었으므로, 그 회의는 그 환벽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채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Orc들의 이용은,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특별한 번식법은 비밀로 유지되었고, 일러도 2990년 훨씬 전까지는 시작되었을 수는 없다. Orc부대들은 Rohan에 대한 공격 전에는 Isengard 영토 너머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회의가 이에 대해 알았더라면, 그들은 즉시 Saruman이 사악해진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저자의 주.]
8 Eä of the Ring Denethor는 Gandalf가 추정하고 수상히 여기는 것을 분명 알아챘고, 즉시 그것들에 격노하면서도 냉소하듯이 즐거워하였다. Minas Tirith에서 그들이 만났을 때 그가 Gandalf에게 (왕의 귀환 V 1) ‘동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는 내 계획을 위해 그 공적들에 대해서는 이미 족히 아오.’라고 말한 것과, 특히 뒤이어 ‘참말이오만, 사람들이 말하듯 그 돌들은 잃어버리긴 했어도, Gondor의 군주들은 여전히 아랫 사람들보다 더 예리한 시력을 가졌으며, 많은 전갈들이 그들에게 오기 때문이오.’라고 한 조롱하는 듯한 말을 주의하라. palantíri는 아주 제쳐놓고, Denethor는 위대한 정신력을 가진 남자이자, 얼굴과 말 뒤에 놓인 생각들을 빠르게 읽어내는 이였지만, 또한 그는 Anor석에서 Rohan과 Isengard에서 있었던 사건들의 영상을 실제로 잘 보았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주.] — 보다 많은 것은 여기를 보라.
9 (2983년에 태어난) Faramir가 자신이 아이였을 때와 나중에 다시 두세번 Gandalf를 Minas Tirith에서 보았다고 회상하며, 그가 오게된 것은 기록물들에 대한 관심에서였다고 말하는 두 개의 탑 IV 5에 있는 구절을 주의하라. 그 마지막 때가 Gandalf가 Isildur의 두루마리를 찾은 3017년이었을 것이다. [저자의 주.]
10 이것은 ‘Arnor와 Gondor의 잃어버린 돌들이 지금 어디에 파묻혀 있는지, 아니면 깊이 가라앉아 있는지를 누가 알겠나?’라고 Gandalf가 Peregrin에게 한 말을 언급하는 것이다(두 개의 탑 III 11).
11 이것은 왕의 귀환 V 7의 끝에서 Denethor의 죽음 이후에 Gandalf가 한 말을 언급하는 것이다. 내 아버지가 ‘Denethor는 그것을 감히 사용하지 않았네’를 ‘Denethor는 그것을 감히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네’로 교정하신 것은 (분명 단순한 부주의로) 그 개정판에 수록되지 않았다. 여기의 소개말을 보라.
12 Thorongil(‘별의 독수리(Eagle of the Star)’)은 Aragorn이 변장하여 Gondor의 Ecthelion II를 섬길 때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었는데, 반지들의 제왕, 부록 A (I, iv, 집사들)을 보라.
13 palantíri를 사용하는 것은, 특히 그 일에 훈련받지 못한 후기 시절의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었으며, 그의 고민들에 더하여 이 부담이 Denethor의 ‘섬뜩함’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아마 다른 자들보다 그의 아내가 더 먼저 느꼈을 것이고, 그녀의 불행이 점차 증가하여, 그녀의 죽음이 재촉되었을 것이다. [저자의 주.]
14 여백에 제대로 놓이지도 못한 한 주는 Saruman의 고결함은 ‘순전히 개인의 긍지와 자신의 의지력의 지배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밑에 구멍이 생겼다. 반지들에 대한 그의 연구가 이를 야기하였으니, 그의 긍지는 자신이 다른 어떤 의지력도 무릅쓰고 그것들을 혹은 그 하나를 이용할 수 있다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나 목적들에 대한 헌신이라고는 어느 것이든 잃어버리면서, 한 우월한 의지력의 지배에게, 그것의 위협에게, 그리고 그 권세의 과시에게 열려 있었다’라고 평한다. 그리고 게다가 그는 Orthanc석에 대한 권리가 있지 않았다.
15 1998년은 Gondor의 집사, Pelendur가 사망한 해였다. ‘Pelendur의 시절 이후로 집사권은 왕권처럼 부친에게서 아들 혹은 가장 가까운 혈족에게로 세습되었다.반지들의 제왕, 부록 A (I, iv, 집사들).
16 Eä of the Ring 이 경우는 Arnor에서는 달랐다. 그 돌들의 적법한 소유권은 (보통 Annúminas의 돌을 사용한) 왕에게 있었으나, 그 왕국은 분열되고, 최고 왕권은 논쟁 속에 있었다. 분명 정당한 권리를 가진 Arthedain의 왕들은 Amon Sûl에서 특별한 관리인을 유지하였는데, 그곳의 돌은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하며, Gondor와의 통신에 주로 운영된 것으로, 북부의 palantíri 중 최고로 여겨졌다. 1409년에 Amon Sûl이 Angmar에게 파괴된 이후, 두 돌 모두 Arthedain의 왕이 거주하는 Fornost에 놓였다. 이것들은 Arvedui의 난파로 실종되었으며, 그 돌들을 사용하는 것을 지시하거나 물려줄 어떤 권한이라도 가진 대리인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유일한 하나인 Emyn Beraid에 있는 Elendil석이 북부에 남아있었지만, 이것은 특별한 속성들을 지닌 것으로 통신에서는 쓰이지 않았다. 그것을 사용하는 데 대한 상속권은 Dúnedain의 인정받는 족장이자 Arvedui의 후손인 ‘Isildur의 후계자’에게 귀속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Aragorn을 포함하여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든 잃어버린 서부를 바라보고 싶어 그것을 들여다 본 적이 있었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이 돌과 그것의 탑은 Círdan과 Lindon의 요정들이 유지 및 경비하였다. [저자의 주.] —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 iii)에서는 Emyn Beraid의 palantír는 ‘다른 것들과 다르며, 그것들과는 통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오직 바다만을 향해 보았다. Elendil은 “곧은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며, 사라진 서부에 있는 Eressëa를 볼 수 있도록 그것을 거기에 두었으나, 그 아래 굽은 바닷물이 Númenor를 영원히 덮고 있었다.’라고 전한다. Elendil이 Emyn Beraid의 palantír로 Eressëa를 본 것에 대해서는 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Silmarillion 292쪽)에서도 또한 전해지는데, ‘그리하여 그는 가끔 멀리, 주인석이 놓였고, 지금까지도 놓여있는 Eressëa 위의 Avallónë의 탑까지도 보았을 것으로 믿어진다.’ 현재 해설에서 이 주인석에 대해 아무 언급도 없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17 떼어낸 후기의 한 주는 palantíri에 극성을 띤 방향성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만, 보다 자세한 것은 실려있지 않다.
18 주해 17에서 언급한 후기의 주는 palantíri의 이런 측면들 가운데 몇 가지를 약간 다르게 다루는데, 특히 ‘덮어 가리기’라는 개념은 달리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매우 급히 쓰고 다소 애매한 이 주는 어느 정도는 다음과 같이 쓰였다. ‘그것들은 수신된 화상들을 간직하여, 각자 그 자체 내에 먼 과거의 어떤 화상 및 장면들을 다수 수용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어둠 속을 “볼” 수 없었으며, 즉 어둠 속에 있는 것들은 그것들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것들 자체는 어둠 속에서 보관될 수 있었고 일반적으로 그리 되었는데, 그럴 때 그것들이 상영해주는 장면들을 보기가, 그리고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그것들이 “넘치는 것”을 제한하기가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것들이 그렇게 “덮어 가리어”졌는지는 비밀로 부쳐졌고, 그리하여 지금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들은 먼 대상들 자체가 빛 속에 있는 한, 벽, 언덕, 혹은 숲처럼 물리적인 장애물에 의해 “가리어”지지 않았다. 후기의 해설자들은, 그 돌들은 허가받지 않은 자가 오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형 각 안에 넣어 잠근 채로 원래의 부지에 놓였으나, 이 각은 또한 그것들을 덮어 가리어 정지되게 하는 일도 수행하였다고 말하거나 추측하였다. 그러므로 그 각들은 지금은 알려져있지 않은 어떤 금속 아니면 어떤 물질로 만들어졌던 것이 틀림없다.’ 이 주와 연관된 여백의 약기들은 일부 읽기 어렵지만, 그것들은 더 멀리 떨어진 과거일수록 더 선명하게 보였으며, 한편 먼 것을 보기 위해서는 돌에 따라 다른 ‘적절한 거리’가 있어, 그 거리에 있는 먼 대상들이 보다 선명하였다는 것 만큼은 해독할 수 있다. 보다 큰 palantíri가 보다 작은 것들보다 훨씬 더 멀리 볼 수 있었는데, 보다 작은 것들은 ‘적절한 거리’가 대략 오백 miles로, Orthanc석과 Anor의 그것 사이만큼이었다. ‘Ithil은 너무 가까웠지만, 대개 [읽기 어려운 단어들]용으로 많이 사용되었지, Minas Anor와의 개인적인 접촉용은 아니었다.
19 물론 그 방향성은 ‘사방’으로 구분되어 나뉘어진게 아니라 연속적인 것이어서, 남동쪽에 앉은 조사자에게는 그 영상의 선이 북서쪽으로 향하게 되었을 것이며, 기타 등등이다. [저자의 주.]
20 두 개의 탑 III 7을 보라.
21 한 떼어진 주는 이 측면에 대해 보다 명시적으로 ‘각자 다른 것과 “통하는” 돌을 사용하는 두 사람은 대화를 할 수 있었지만, 그 돌들이 전달하지 못하는 소리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생각”을 교환하였을 것이니 — 그들의 완전하거나 진실된 생각, 혹은 그들이 의도하는 것들이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으로부터 언어의 형식을 이미 갖추거나 사실상 소리내어 말하게 되는) 그들이 전달하고 싶은 생각들, “무언의 말”을 말인데, 그것을 응답자들이 받게 되어서, 물론 “말”로 변형되었을 것이며, 그런 것들만이 기록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기술한다. Eä of the 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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