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Foreyule 21, Trewsday

Flaming Red Hair

About...
Site Map
Search

Cirion and Eorl
and the Friendship of Gondor and Rohan
Eä of the Ring


II

Cirion과 Eorl 그리고 Gondor와 Rohan의 우정


(i)

북부인과 전차몰이

Cirion과 Eorl 편년사는1 Gondor의 집사 Cirion과 Éothéod의 군주 Eorl의 첫 만남과 함께 바로 시작하니, Celebrant 벌판 전투가 끝나고 그가 Gondor의 침략자들을 섬멸한 후에 말이다. 하지만 Rohan과 Gondor 양국에는 Rohirrim의 북부로부터의 위대한 질주에 대한 담시와 전설들이 있었으니, 이것들로부터 후기 편년사들에2 나오는 해설들이, Éothéod에 관한 다른 많은 내용과 함께 따와졌다. 이것들을 여기에 간결하게 종합하여 편년체로 작성한다.
    Éothéod는 Gondor의 (제삼 시대(Third Age) 1936년에 죽은) Calimehtar 왕 시절에 처음으로 알려졌고, 그 무렵에는 Carrock과 Gladden(창포) 벌판 사이의 Anduin 골짜기 지대에, 대개 그 강의 서편에서 살던 작은 민족이었다. 그들은 저 북부인들(Northmen)의 잔존자들로, 저들은 이전에 Mirkwood(어둠숲)와 달리는 강(River Running) 사이의 드넓은 평원 지대에서 살던 민족들의 막대하며 강력한 연맹이었었으며, 대단한 말 사육자들이자 그들의 기술과 지구력으로 유명하였던 기수들이었으니, 비록 그들이 정착한 집들은 저 숲의 처마에, 특히 주로 그들이 나무를 벌목하여 생겨진 동부 만곡부(East Bight)에 있었지만 말이다.3
    이 북부인들은 제일 시대(First Age)에 중간대륙(Middle-earth)의 서부를 지나, Eldar의 Morgoth와의 전쟁에서 그들의 동맹자가 되었던 이들과 같은 인간 종족의 자손들이었다.4 그들은 그러므로 멀리로는 Dúnedain이나 Númenor인들(Númenóreans)의 친척들이었고, 그들과 Gondor의 사람들 사이에는 대단한 우정이 있었다. 그들은 사실 Gondor의 방파제로, 그 북쪽와 동쪽의 국경지방을 침략으로부터 막았으니, 비록 그것은 그 방파제가 약화되어 끝내 파괴되었을 때까지 그 왕들이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다. Rhovanion의 북부인들의 쇠퇴는 1635년 겨울에 그곳에서 생겨나 곧 Gondor로 퍼진 대역병(Great Plague)과 함께 시작되었다. Gondor에서 그 사망률은 도시들에서 거주하는 자들 가운데에서 특히 대단하였다. Rhovanion의 주민들은 대개 트인 곳에서 살았고, 거대한 도시들은 없었긴 했지만, 그 역병은 말들과 사람들이 대피처로 내몰리고, 낮은 나무로 된 그들의 집과 마구간들이 떼지어 몰려 있었던 추운 겨울과 함께 들이닥쳤으므로, 그것은 그곳에서 더 대단하였는데, 게다가 그들은, Númenor의 지혜로부터 보존되어 Gondor에서는 여전히 많은 것이 알려져 있던, 치료와 의술에 대한 기예에는 거의 능숙하지 않았다. 그 역병이 지나갔을 때, Rhovanion의 민족의, 그리고 또한 그들의 말들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Eä of the Ring    그들은 회복하는데 더뎠으나, 그들의 약점은 오랜 기간 동안 시험받지 않았다. 더 멀리 동쪽의 민족들도 고르게 시달렸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Gondor의 적들은 주로 남쪽과 바다 건너에서 오게 되었다. 하지만 전차몰이들(Wainriders)의 침략들이 시작되어 Gondor가 거의 백 년간 지속된 전쟁에 말려들었을 때, 북부인들이 그 첫번째 강습을 정면으로 받았다. Narmacil II 왕이 거대한 군대를 북쪽으로 Mirkwood 남쪽의 평원 지대로 데려왔고, 북부인들의 흩어진 잔존자들을 그가 할 수 있는 대로 전부 모았으나, 그는 패배하였고, 그 자신은 전사하였다. 그의 군대의 잔존자는 Dagorlad를 지나 Ithilien으로 후퇴하였고, Gondor는 Ithilien을 제외한 Anduin 동쪽의 전토를 포기하였다.5
    북부인들에 관해서는, 소수가 Celduin (달리는 강)을 건너 달아나, Erebor 아래에 있는 (그들과 동족인) Dale(너른골)의 민족과 동화되었다고, 얼마는 Gondor로 피난하였으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평원 전투(Battle of the Plains) 이후 후위대의 교전에서 쓰러진) Marhari의 아들 Marhwini에 의해 모였다고 한다.6 Mirkwood와 Anduin 사이의 북쪽을 지나, 그들은 Anduin 골짜기 지대에 정착하였고, 그 숲을 통과하여 온 많은 도피자들이 합류하였다. 이것이 Éothéod의7 시작이었으니, 비록 수많은 세월 동안 Gondor에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북부인들의 대부분은 강제로 노예 상태가 되었고, 그들의 이전의 땅들은 모두 전차몰이들에게 점령되었다.8

Eä of the Ring    하지만 드디어 Narmacil II의 아들인 Calimehtar 왕은 다른 위험요소들에서 자유로워지자,9 평원 전투의 패배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하였다. 전차몰이들이 Undeep(안 깊은 곳)들을10 건너 Calenardhon을 몰래 습격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그를 경고하는 전령들이 Marhwini로부터 왔으나, 그들은 또한 노예가 된 북부인들의 반란이 준비되고 있으며 전차몰이들이 전쟁에 말려들게 되면 화염을 내뿜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Calimehtar는 그러므로 가능한한 빨리 Ithilien 밖으로 군대를 인솔하여 나왔고, 그 접근이 적들에게 잘 알려지게 되도록 주의하였다. 전차몰이들은 그들이 할애할 수 있는 모든 병력과 함께 내려왔고, Calimehtar는 그들 앞에 길을 내주어, 그들을 자기들 본거지에서 끌어내었다. 드디어 전투가 Dagorlad 위에서 벌어졌고, 그 결과는 불확실한 채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 절정에 이르렀을 때 Calimehtar가 (적이 방비하지 않는 왼쪽의) Undeep들을 건너 보냈던 기병들이 Marhwini가 이끄는 거대한 éored 하나와11 합동으로 전차몰이들을 측면과 후위에서 습격하였다. Gondor의 승리가 압도적이게 되었다 — 결국 결정적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적이 흩어져, 곧 그들의 본거지를 향해 북쪽으로 무질서하게 도피할 때, Calimehtar는 그로서는 현명하게도 그들을 추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 무리의 삼 분의 일에 가까운 자들을 Dagorlad 위에다 과거의 다른 더 고귀한 전투들의 뼈들 가운데에서 썩도록 죽은 채로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Marhwini의 기병들은 평원 지대를 지나는 기나긴 패주를 하는 저 도망자들을 괴롭혀 막대한 손실을 그들에게 입혔고, 마침내 그들은 Mirkwood가 멀리 보이는 곳에 들어섰다. 거기에서 그들은 ‘북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달아나라, Sauron의 민족아! 봐라, 네놈들이 훔친 본거지는 화염 속에 있다!’라고 그들을 조롱하며 떠났다. 거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던 것이었다.
    Marhwini에 의해 계획되고 그의 도움을 받은 그 반란이 실로 발발하였는데, 저 숲 밖으로 나온 필사적인 무법자들이 그 노예들을 각성시켜, 다함께 전차몰이들의 거주지들과, 그들의 창고들과, 그들의 요새화 된 전차 주둔지들 다수를 불사르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 습격 중에 숨졌으니, 그들은 잘 무장되지 않았고, 적들은 저들의 본거지를 무방비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저들의 청년들과 늙은 남자들은 보다 어린 여자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그녀들도 그 주민들 속에서 병기들을 얻어 저들의 본거지와 저들의 아이들을 지키며 사납게 싸웠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끝내 Marhwini는 다시 Anduin 옆의 그의 땅으로 부득이 후퇴하였고, 그의 종족의 북부인은 다시는 결코 그들의 예전 본거지로 돌아오지 못했다. Calimehtar는 Gondor로 철수하여, 그 왕들의 가계가 거의 그 끝에 이르게 된 그 거대한 강습에 앞서, 전쟁으로부터의 휴식기를 (1899년부터 1944년까지) 일시적으로 즐겼다.
    그럼에도 불구 Calimehtar와 Marhwini의 동맹은 헛되지는 않았다. 만일 Rhovanion의 전차몰이들의 세가 깨지지 않았다면, 그 강습은 더 이르게 그리고 더 거대한 병력으로 닥쳐와 Gondor라는 나라는 멸망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동맹의 가장 위대한 성과는 그때에는 누구도 내다볼 수 없었던 먼 미래에 있었는데, Rohirrim의 Gondor를 구원하기 위한 두 차례의 위대한 질주들, 즉 Eorl이 Celebrant 벌판으로 온 것, 그리고 Pelennor에서의 Théoden 왕의 그 뿔나팔들 말이니, 이것이 없었다면 그 왕의 귀환은 헛된 것이 되었을 것이다.12

    그러는 동안 전차몰이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핥으며 몰래 복수할 계획을 하였다. Gondor의 병기들이 미치는 범위 너머인, 어떤 소식도 그 왕들에게는 오지 않는 Rhûn 해의 동쪽 땅에서 그들의 친족이 퍼지고 증가하였으며, 그들은 정복과 전리품을 열망하였고, 그들의 길에 서있는 Gondor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있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Gondor의 힘을 두려워하였고, Anduin 서쪽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 것도 몰라, 그들은 그 나라가 그 무렵에 실제 그랬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인구가 많다고 믿었다. 다른 한편으로 동쪽의 전차몰이들은 Mordor 너머 남쪽으로 퍼지고 있었고, Khand의 민족들과 더 남쪽의 그들의 이웃들과 충돌 중이었다. 결국 평화와 동맹이 이들 Gondor의 적들 사이에서 합의되었고, 북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게 될 공격이 준비되었다.
    물론 Gondor에는 이 속셈과 움직임에 대해 거의 혹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여기에서 전하는 것은 오랜 뒤에 사학자들이 그 사건들로부터 추론했던 것인데, 또한 그들은, Gondor에 대한 증오 그리고 (그들 스스로는 의지도 지혜도 있지 않은) 타협을 통해 행동하는 적들의 동맹이 Sauron의 음모에 기인하였던 것이 명백하다고 보았다. Marhwini의 아들 Forthwini는 강을 따라 올라와서, 그리고 저 숲의 좁아진 지대(Narrows of the Forest)를 통해서,13 양쪽에서 들이닥치는 자기 땅의 남쪽에서의 습격에 매우 고생하였으므로, 실로 (1936년에 그의 아버지 Calimehtar를 이은) Ondoher 왕에게, Rhovanion의 전차몰이들이 그들의 약점과 두려움으로부터 회복하고 있으며, 그들이 동부로부터 새로운 힘을 받고있는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Gondor는 그 무렵 그곳이 찾을 수 있을, 혹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군대를 모으고 훈련시키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강습이 마침내 닥쳤을 때 그것은 Gondor가 준비가 안된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비록 그 힘은 그곳이 필요로 하던 것보다 적었지만 말이다.
    Ondoher는 남쪽의 적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챘고, 그의 병력을 북쪽과 남쪽 군대로 나누는 지혜가 있었다. 그 지방으로부터의 위험은 보다 작다고 여겨졌으므로,14 후자는 더 적었다. 그것은, Narmacil II의 아버지 Telumehtar 왕의 자손으로서 왕실(Royal House)의 일원인 Eärnil의 지휘하에 있었다. 그의 기지는 Pelargir에 있었다. 북쪽 군대는 Ondoher 왕이 친히 지휘하였다. 이것은 늘 Gondor의 관습으로 되어 있던 것으로, 왕은 중요한 전투에서 그의 군대를 지휘할 의사가 있다면, 그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자격을 가진 왕위 계승자가 뒤에 남도록 정한 채로 그리 해야 하였다. Ondoher는 호전적인 가계 출신이었고, 그의 군대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맏이 Artamir와 세 살 정도 더 어린 Faramir라는 두 아들이 있었으니, 모두 병기를 지닐 나이였다.
Eä of the Ring    적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 1944년 Cermië의 아홉째 날에 Pelargir에 이르렀다. Eärnil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니, 그는 자신의 병력의 절반과 함께 Anduin을 건넜고, 나머지는 일부러 Poros의 여울을 무방비로 둔 채 남 Ithilien에서 북쪽으로 사십 miles 정도 되는 곳에서 야영하였다. Ondoher 왕은 자신의 부대를 Ithilien을 통해 북쪽으로 인솔하여, Gondor의 적들에게는 흉조의 벌판인 Dagorlad에 배치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무렵 Sarn Gebir의 북쪽의 Anduin의 강줄기 위에 Narmacil I에 의해 세워졌던 성채들은 여전히 잘 정비되어 있었고, 적들이 Undeep들에서 도강하려는 어떤 시도도 막기 위해 Calenardhon에서 온 군사들로 충분히 배치되었다.) 하지만 북쪽의 강습에 대한 소식은 Cermië의 열두째 날의 아침까지 Ondoher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그 맘때 적은 벌써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Gondor의 군대는 Ondoher가 더 일찍 경고를 받았다면 그랬을 것보다는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고, 그 선봉대는 아직 Mordor의 관문에 이르지 않았다. 그 주력은 왕과 그의 호위대로 시작해서, 우익(Right Wing)과 좌익(Left Wing)의 군인들이 뒤를 따랐는데, 그들은 Ithilien 밖을 지나 Dagorlad에 다가갈 때 그들의 자리를 잡을 것이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예전에 평원 전투와 Dagorlad에서의 Calimehtar의 승전에서 그랬듯이, 그 강습이 북부나 북동부에서 올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았다. 전차몰이들은 Rhûn 내해의 남쪽 연안 지대 옆에서 거대한 무리를 소집하여, Rhovanion에 있는 자기들의 친족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Khand에 있는 자기들의 새로운 동맹자들로부터 강화되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그들은 동부에서 Gondor로 출발하여, Ered Lithui의 능선을 따라 그들이 낼 수 있는 전속력으로 이동하였으니, 거기에서는 그들의 접근이 너무 늦게까지 관찰되지 않았다. 그래서 적의 선봉대의 접근을 알리는 거대한 먼지가 동부로부터 바람에 실려왔을 때, Gondor의 군대의 선두는 Mordor의 관문(Morannon)을 겨우 따라붙게 된 것이었다.15 이것은 전차몰이들의 이륜전차들 뿐만 아니라 얼마를 예상했든 그보다 훨씬 대단한 기병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이륜마차와 기병들이 Ondoher의 무질서한 전열을 들이받았을 때에는, 그는 겨우 방향을 돌려 Morannon에 근접한 그의 우측과 함께 그 강습 쪽을 향하고, 뒤에 있는 우익 대장 Minohtar에게 가능한한 신속히 좌측을 엄호하라는 말을 전할 시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뒤이어 일어난 그 재난의 혼란에 대한 명확한 보고는 Gondor에는 조금밖에 전해져 있지 않았다.
    Ondoher는 엄청난 무게의 기병과 이륜마차들의 돌격에 맞서기에는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호위대와 자신의 기와 함께 급히 낮고 둥근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는 소용이 없었다.16 그 주된 돌격은 그의 기를 향해 퍼부어져 그것은 노획되고, 그의 호위대는 거의 전멸하였으며, 그 자신은 전사하고 그의 아들도 그의 옆에서 죽었다. 그 시신들은 결코 되찾지 못했다. 적의 강습은 그것들 위와 언덕 양쪽 주위를 통과, Gondor의 무질서한 대열 속으로 깊숙이 질주하여, 그들을 뒤에서 저것들을 향해 혼란 속으로 도로 내동댕이치고, 다른 많은 자들을 서쪽으로 죽음의 늪 지대(Dead Marshes)로 쫓아버리며 추적하였다.
    Minohtar가 지휘권을 잡았다. 그는 용감하고 전술에 밝은 남자였다. 적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덜한 손실과 더 거대한 성공으로 그 맹습의 첫 맹위를 소비하였다. 전차몰이들의 주력 부대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그 기병대와 이륜마차들은 이제 철수하였다. 그가 갖게 된 그 시간에 Minohtar는 자신의 기를 세워, 가까이에 있는 중앙부대의 남아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관할에 있는 자들을 재집결시켰다. 그는 즉시 좌익 대장인 Dol Amroth의 Adrahil에게17 전령들을 보내어, 아직 교전하지 않았던 그의 관할부대와 우익의 후위에 있는 자들 모두를 그가 낼 수 있는 전속력으로 철수시키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이 병력으로, Anduin의 동쪽으로 향한 커다란 굽이 덕분에 그 땅이 그곳에서 가장 좁은 곳인, (인원이 배치되어 있는) Cair Andros와 Ephel Dúath 산맥 사이에서 방어 진지를 정하여, Minas Tirith로 가는 진입로들을 가능한한 오랫동안 보호하려 하였다. 이 후퇴의 시간을 벌기 위해 Minohtar는 몸소 후위대를 결성하여 전차몰이들의 주력 부대의 전진을 저지해보려 하였다. Adrahil은 즉시 전령들을 보내어 그들이 할 수 있다면 Eärnil을 찾아내고, Morannon의 재난에 대해 그리고 후퇴 중인 북쪽 군대의 위치에 대해 그에게 알리게 해야 했다.
    전차몰이들의 주력 부대가 진격해왔을 때에는, 정오가 된 지 두 시간 후였으며, Minohtar가 자신의 방어선을 Ithilien의 장대한 북부 도로(North Road)의 머리부분으로 철수시켰을 때였으니, 그곳은 그 도로가 Morannon의 감시탑들로 향해 동쪽으로 도는 지점에서 반mile 너머에 있었다. 전차몰이들의 첫번째 승리는 이제 그들이 망하게 되는 시작이 되었다. 그들은 수비측 군의 수와 질서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 군대의 대부분이 Ithilien의 좁은 땅 밖에서 시간을 갖기도 전에 첫번째 맹습을 너무 이르게 시작했었고, 그들의 이륜마차와 기병대의 돌격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보다 압도적인 성공을 얻어냈다. 그들의 주력 부대의 맹습은 그때로써는 너무 오래 지체된 것이었고, 트인 지대에서의 군사 행동에 익숙한 그들은 더 이상 그 더 거대해진 수를 그들이 의도했던 전술에 따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었다. 왕을 쓰러뜨리고 대항하던 중앙 부대의 태반을 패주시켜 우쭐해진 그들이, 수비측 군대가 이미 전복되었으며, 그들의 주력 군대는 Gondor로 침입하고 점령하러 전진하는 것 이상으로는 거의 할 게 없다 여긴 거라고 아마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만일 그랬다면, 그들은 속았던 것이다.
    전차몰이들은 여전히 의기양양하여 승리의 노래들을 부르며, 그들에게 대항하는 어느 방어자들의 흔적도 아직 보지 못한 채 거의 무질서하게 진군하였고, 마침내 그들은 Gondor로 가는 도로가 남쪽으로 어두운 Ephel Dúath의 그늘 아래에 있는 나무들의 좁다란 땅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군대는 장대한 교통로를 따라 순조롭게 행군하거나 말을 타고 내려갈 수 있었다. 그들 앞에서 그것은 깊숙이 개착하여 만든 길을 통해 뻗어나갔...

여기에서 원문은 갑작스레 중단되고, 그것이 계속되는 주와 약기들은 대부분이 읽기 어렵게 되어있다. 하지만 Éothéod 사람들이 Ondoher와 함께 싸웠다는 것, 그리고 또한 Ondoher의 두 아들 모두가 동시에 전투에 가겠다는 것은 법으로 허락되지 않으므로 그의 둘째 아들 Faramir는 Minas Tirith에 섭정으로 남아있으라는 명을 받았다는 것 (유사한 기록이 여기의 글에서보다 먼저 나타난다)이 해독 가능하다. 하지만 Faramir는 그리 하지 않았는데, 그는 변장하고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하였다. 여기에서 그 필체는 판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Faramir는 Éothéod와 합류하여, 그들의 일행과 함께 죽음의 늪 지대 쪽으로 후퇴하다 그들은 포획된 것으로 보인다. Éothéod의 (첫번째 요소 Marh- 다음은 판독이 안되는 이름의) 지도자가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왔지만, Faramir는 그의 팔에 안기어 죽었고, 그가 왕자임을 나타내는 표장들을 찾아 낸 것은 불과 그가 그의 몸을 수색했을 때였다. Éothéod의 지도자는 그러고나서 Ithilien에 있는 북부 도로의 머리부분에서 Minohtar와 합류하였는데, 그는 마침 Minas Tirith에 있는, 이제는 왕인 왕자에게 전보를 보내기 위해 명을 내리고 있었다. Éothéod의 지도자가 그 왕자는 변장한 채 전투에 나갔다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해준 것이 그때였다.
    Éothéod의 존재와 그들의 지도자의 역할은, Gondor의 군대와 전차몰이들 간의 전투에 대한 이 공들인 내용이 표면상으로는 Gondor와 Rohirrim의 우정의 첫 시기에 대한 해설이 되는 이 글 안에 포함된 연유를 설명하는 지도 모른다.
    생략없이 완전히 쓴 저 본문의 결말 구절은, 그 전차몰이들의 무리가 그 깊숙이 개착된 곳으로 그 교통로를 따라 내려가자 그들의 의기양양하고 우쭐하던 것이 막 가시려 하는 인상을 주나, 그 끝에 있는 주들은 그들이 Minohtar의 후위 방어에 오래 지연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전차몰이들은 Ithilien으로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왔’으며, ‘Cermië의 열셋째 날 늦게 그들은 Minohtar를 괴멸시켰’는데 그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Ondoher 왕의 누이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의 사람들이 그를 싸움터 밖으로 날랐고, 후위대의 남은 자들은 모두 Adrahil을 찾아 남쪽으로 달아났다.’ 전차몰이들의 최고 사령관은 그때 전진을 멈추고 연회를 열었다. 이 이상은 아무것도 해독할 수 없으나,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에 있는 간결한 해설이 어떻게 Eärnil이 남쪽에서 올라와 그들을 패주시켰는지 전한다.

Eä of the Ring1944년에 Ondoher왕과 그의 두 아들 Artamir와 Faramir 모두 Morannon의 북쪽에서의 전투에서 쓰러졌고, 적은 Ithilien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남부 군대(Southern Army)의 대장 Eärnil은 남 Ithilien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두어, Poros 강을 건너던 Harad의 군대를 섬멸하였다. 그는 급히 북쪽으로 가면서 후퇴하는 북부 군대(Nothern Army) 중 그가 모을 수 있는 모든 이들을 모으며 그들의 주요 야영지를 향해 올라왔으니, 그동안 전차몰이들들은 Gondor는 전복되었고 약탈할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고 믿으면서 성찬을 먹고 흥청대고 있었다. Eärnil은 그 야영지를 급습하여 전차들에 불을 놓고 적들을 크게 패주시켜 Ithilien 밖으로 몰아내었다. 그의 앞에서 달아난 자들 중 대부분이 죽음의 늪 지대에서 죽었다.

연대 이야기(Tale of Years)에서 그 Eärnil의 승리는 야영지 전투(Battle of the Camp)라고 불린다. Ondoher와 그의 두 아들들이 Morannon에서 사망한 이후 북쪽 나라의 마지막 왕 Arvedui가 Gondor의 왕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였으나, 그의 주장은 거절되었고, 야영지 전투 다음 해에 Eärnil이 왕이 되었다. 그의 아들이 Nazgûl의 군주의 도전을 받아들인 후 Minas Morgul에서 죽은 Eärnur였으며, 남쪽 나라의 왕들 중 마지막 왕이었다.


(ii)

Eorl의 질주

Éothéod가 자신들의 이전 본거지에서 거주하는 동안18 그들은 신뢰의 민족으로서 Gondor에 잘 알려졌고, 그들로부터 그들은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식을 얻었다. 그들은 지난 시대들에는 Dúnedain과 동족이었다고 여겨지는 북부인들의 잔존자였으며, 위대한 왕들의 시절에 그들의 동맹자들이 되어 Gondor의 백성들에게 많은 양의 그들의 피를 제공하였다. 그리하여 남쪽 나라의 왕들 중에서 마지막을 빼면 마지막인 Eärnil II의 시절에 Éothéod가 멀리 북부로 이동하였을 때,19 Gondor에게는 대단히 큰 문제가 되었다.
    Éothéod의 새 땅은 Mirkwood의 북쪽으로, 서쪽으로는 안개산맥(Misty Mountains) 동쪽으로는 숲강(Forest River) 사이에 있었다. 남쪽으로 그곳은, 그들이 Greylin과 Langwell이라고 이름지은 두 개의 짧은 강들의 합류 지점으로까지 뻗어 있었다. Greylin은 회색산맥(Grey Mountains), Ered Mithrin으로부터 흘러내려왔지만, Langwell은 안개산맥으로부터 나왔고, 그것이 Anduin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이 이름을 그것이 가지게 되었으니, Greylin과의 합류점에서부터는 그들은 Langflood라 불렀다.20
    그들이 떠난 이후로도 전령들이 여전히 Gondor와 Éothéod 사이를 지나갔으나, (그들의 요새화된 burg가 유일하게 있는) Greylin과 Langwell의 합류 지점과 Limlight가 Anduin으로 유입하는 곳 사이는 새가 날아가듯 직선으로는 우리네 mile로 사백 오십 정도였으며, 땅 위로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훨씬 더 멀었는데, 같은 식으로 Minas Tirith까지는 팔백 miles 정도였다.
    Cirion과 Eorl 편년사는 Celebrant 벌판 전투 전까지는 어떤 사건들도 전하지 않으나, 그것들은 다른 자료들로부터 이런 식이 되도록 해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ä of the Ring    갈색 지대(Brown Lands)에서부터 Rhûn해에 이르는 Mirkwood 남쪽의 드넓은 지대는, 침략자들이 동부로부터 Anduin에 올 때까지 그들에게 어떤 장애물도 제공하지 않아 Gondor의 통치자들의 근심과 불안함의 주요 근원이었다. 하지만 조심스런 평화기(Watchful Peace)21 동안에 Anduin을 따라 있는, 특히 Undeep들의 서쪽 연안에 있는 성채들은 인원이 배치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22 그 무렵에 Gondor는 (오랫동안 방비되지 않았던) Mordor에서 나온 Orc들과 Umbar의 해적들 양쪽에게서 습격을 받아, Emyn Muil 북쪽의 Anduin의 강줄기에 배치할 사람도 기회도 없었다.
    Cirion은 2489년에 Gondor의 집사가 되었다. 북부로부터의 위험이 늘 그의 마음에 걸리었고, Gondor의 힘이 줄어들면서 그는 그 지방으로부터의 침략의 위협에 대항하여 궁리될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숙고하였다. 그는 Undeep들을 계속 감시하도록 그 오래된 성채들에 약간의 사람들을 두었고, Mirkwood와 Dagorlad 사이의 지대에 정찰병과 첩자들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는 동쪽에서 나온 새롭고 위험한 적들이 Rhûn해 너머로부터 꾸준히 흘러들어오고 있음을 곧 알아챘다. 그들은 Mirkwood 동쪽에서 아직 거주하는 Gondor의 친구들인, 북부인들의 잔존자들을 학살하거나 북쪽으로 달리는 강 위와 숲 속으로 몰아내고 있었다.23 하지만 그는 그들을 돕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소식을 모으기에는 더욱 더 위험하게 되었는데, 그의 정찰병들 중 너무 많은 이들이 결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하여 2509년의 겨울이 지날 때에야 Cirion은 Gondor에 대항하는 거대한 이동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되었으니, 사내 무리들이 Mirkwood의 남쪽 처마를 따라 전역에 걸쳐 소집되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조잡하게 무장하였을 뿐이었고, 타는 용도의 말은 엄청난 수로 있진 않았으나, 그들에게는 많은 큰 전차들이 있어 말들을 주로 끄는 용도로 이용하였으니, 왕들의 마지막 시절에 Gondor를 습격하였던 (동족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전차몰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추측할 수 있는 한, 전쟁 장비에서 모자란 것을 그들은 숫자로 만회하였다.
    이 위기 속에서 Cirion의 생각은 끝내 자포자기로 Éothéod에게로 향하였고, 그는 그들에게 전령들을 보내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Calenardhon을 지나 Undeep들을 건너서, Anduin의 골짜기 지대에 이르기에 앞서 저 Balchoth가24 이미 감시하고 순찰하는 지대를 지날 것이었다. 이것은 Undeep들까지 사백 오십 miles 정도, 그리고 거기서부터 Éothéod에게로 오백 이상을 말달리는 것을 의미하였을 것이며, 그 Undeep들부터 그들은 Dol Guldur의 그림자를 지날 때까지 신중히 그리고 주로 밤중에 갈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Cirion에게는 그들 중 어느 누구라도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은 거의 없었다. 그는 지원자들을 불러내어, 대단한 용기와 인내를 가진 여섯 명의 기수들을 뽑아 한 쌍씩 하루 간격으로 내보냈다. 각각은 암기한 전갈과, 또한 집사를 나타내는 인장이25 새겨진 작은 돌을 지녀, 만일 그가 그 땅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하면 그는 Éothéod의 군주에게 몸소 전달하여야 했다. 그 전갈은 Léod의 아들 Eorl에게로 보내는 것으로, Cirion은 그가 몇년 전에 겨우 열 여섯살의 청년일 때 그의 아버지를 이었으며, 지금은 스물 다섯에 불과하지만, 그 나이 이상의 대단한 용기와 지혜를 지닌 남자로서 Gondor에 이르는 모든 소식들 속에서 회자되는 것을 알았던 것이었다. 그래도 Cirion은 비록 그 전갈이 전달되더라도 응답이 있으리라는 희망은 희미할 뿐이었다. 그는 Éothéod에게 소용이 될 만한 약간의 병력이라도 그렇게 멀리에서 데려오라고, 그들의 Gondor와의 고대의 우정을 넘어서는 정도로 요구할 자격이 없었다. Balchoth가 남부에서 그들의 혈족의 마지막 남은 이들을 섬멸하고 있다는 소식을 만약 그들이 여태 모른다면, 설령 Éothéod 자신들은 어떤 공격도 위협받지 않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호소에 무게감을 줄지도 몰랐다. Cirion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26 그가 얼마큼의 병력을 가지고 그 폭풍을 맞이할 것인지를 정했다. 그는 가능한한 거대한 군대를 모아, 몸소 지휘하여 북쪽으로 Calenardhon으로 인솔해도 되도록 신속히 준비시켰다. 그의 아들 Hallas는 명령으로 Minas Tirith에 남겼다.
    Súlimë의 열흘째 날에 첫번째 전령 한 쌍이 떠났는데, 결국에 이들 중 한 명이 여섯 모두 가운데 홀로 Éothéod에게 도달하였다. 그가 Borondir로, 자기네가 옛 왕들을 섬긴 북부인들의 대장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가문 출신의 대단한 기수였다.27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어떤 소식도 결코 듣지 못하였으니, Borondir의 동행인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들이 Dol Guldur 부근을 지날 때 그는 복병의 화살을 맞아 살해되었고, Borondir는 운과 그의 말의 속력 덕에 그곳으로부터 탈출하였다. 그는 북쪽으로 Gladden 벌판까지 뒤쫓겼으며, 저 숲에서 나와 잠복 중이던 사람들에게서 종종 습격당하여, 최단 거리의 길을 벗어나 멀리 말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마침내 십오 일 후에, 마지막 이틀은 식량도 없이 Éothéod에게 왔는데, 그는 너무 지쳐 Eorl에게 그의 전갈을 가까스로 말할 수 있었다.
    그때가 Súlimë의 스물 다섯째 날이었다. Eorl은 침묵 속에 스스로와 상의하였으나 오랫동안은 아니었다. 곧 그는 일어나, ‘나는 가겠다. 만일 Mundburg가 함락된다면 우리는 저 암흑으로부터 어디로 달아나야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고나서 그는 약속의 표시로 Borondir의 손을 잡았다.
    Eorl은 즉시 그의 장로회의를 소집하여 위대한 질주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군대가 모이고 집결되어야 했으며, 그들의 대형과 그 땅을 방비하는 데에도 신경써야 했으므로 이것은 여러 날이 걸렸다. 그 무렵 Éothéod는 평화로웠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다만 그것은 자기들의 주군이 멀리 떨어진 남부에서의 전투로 말달려갔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을 때에는 다른 식으로 나타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 Eorl은 다름 아닌 바로 그의 전 병력만이 도움이 될 것임을 잘 알아, 모든 것을 각오하든지 손을 떼고 그의 약속을 깨든지 해야만 하였다.
Eä of the Ring    드디어 전 군대가 집합하였고, 몇백명만이 어리거나 나이 들어서 그러한 절망적인 모험에는 부적당한 사람들을 부양하도록 뒤에 남겨졌다. 그때가 Víressë의 달의 여섯째 날이었다. 그 날 침묵 속에 거대한 éoherë가 두려움을 뒤에 남긴 채 작은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였는데, 그들은 자신들 앞에, 길 상에서든 그 끝에서든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Eorl은 칠천 명 정도의 완전 무장한 기수들과 기마 궁사 수 백명을 이끌었다고 한다. Borondir가 최근에 그 땅을 통과하였으므로, 그는 최대한 멀리까지 길잡이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그의 오른편에서 말달렸다. 하지만 이 거대한 군대는 Anduin의 골짜기 지대로 내려가는 먼 여정 동안 위협이나 습격을 받지 않았다. 선한 종류이든 악한 종류이든 그것을 본 민족은 그 힘과 웅대함에 두려워 그 길 밖으로 달아났다. 그들이 남쪽으로 다가가, 이제는 Balchoth가 들끓는 (거대한 동부 만곡부 아래의) Mirkwood 남쪽을 지나는 동안, 정규군이든 정찰대이든 그들의 길을 막으려는, 혹은 그들이 오는 것을 염탐하려는 어떤 사람의 흔적도 아직 없었다. 이것은 Borondir가 출발한 이래로 일어나게 된, 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에 얼마간 기인하였으나, 또한 다른 세력들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군대가 드디어 Dol Guldur 부근으로 다가가자, Eorl은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어두운 그림자와 구름이 두려워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고, 그리하여 그는 Anduin이 보이는 곳으로 계속 말달렸던 것이었다. 그 기수들 중 다수가, 그들 민족의 전설들 속에서 봄철에 황금처럼 눈부시게 빛났다고 하던 위험한 땅 Dwimordene이 어른거리는 것을 멀리서 어렴풋이 보기 위해, 절반은 두려움 속에 절반은 희망 속에 눈을 그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희미하게 빛나는 안개로 덮인 듯 하였는데, 그들로서는 당황스럽게도 그 안개는 강 위를 지나 그들 앞에 있는 땅 위를 흘러갔다.
    Eorl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달려라!’ 그가 명령했다. ‘다른 나아갈 길이란 없다. 그렇게 오래 길을 오고나서 우리가 강안개 때문에 전투로부터 지연되어야 하겠느냐?
    그들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 새하얀 안개가 Dol Guldur의 어스름을 몰아내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곧 그들은 그 속으로 들어가, 처음에는 천천히 신중하게 말타고 갔으나, 그 차양 아래에서는 선명하고 그늘 끼지 않은 광원으로 모든 것이 환하게 비추어졌고, 한편 왼쪽과 오른쪽으로 그들은 이를테면 비밀을 지켜주는 새하얀 장벽에 의해 보호되었다.
    ‘저 황금 숲(Golden Wood)의 귀부인은 우리 편인가보군요.’ Borondir가 말했다.
    ‘어쩌면.’ Eorl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Felaróf의28 지혜를 신뢰하겠네. 이 놈은 어떤 불길한 냄새도 맡지 않았네. 얘 마음이 들뜨고, 피로가 가셨는데, 마음먹은 대로 하고싶어 이 놈이 기를 쓰는군. 그러도록 하지! 나는 은밀함과 신속함을 이보다 많이 필요로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자 Felaróf가 앞으로 껑충 뛰어나갔고, 뒤의 모든 군대가 거대한 바람 같이, 하지만 마치 그 발굽들이 지면 위를 치지 않는 것처럼 이상한 고요 속에서 따라갔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출발하던 날의 아침 때 만큼이나 기운차고 열망적으로 그 날과 다음날을 계속 말달렸으나, 셋째 날 새벽에 그들이 휴식에서 일어나자, 갑자기 그 안개는 사라졌고, 그들은 자신들이 트인 지대로 멀리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오른쪽에 Anduin이 가까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곳의 거대한 동쪽으로 향한 굽이를 거의 지났고,29 Undeep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Víressë의 열닷새째 날의 아침이었고, 그들은 희망하던 이상의 속도로 거기에 이르렀다.30

여기에서 원문은, Celebrant 벌판 전투에 대한 기술이 뒤에 나오려 하던 한 주와 함께 끝난다.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I)에 그 전쟁을 요약한 해설이 있다.

북동부에서 온 야인들의 거대한 무리가 Rhovanion을 휩쓸고 갈색지대 밖으로 나와 뗏목으로 Anduin을 건넜다. 동시에 (난장이들과의 전쟁이 있기 전인 그 무렵에 대거하여 있던) Orc들이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저 산맥으로부터 급습해왔다. 그 침략자들이 Calenardhon을 침입하여, Gondor의 집사 Cirion은 도움을 청하러 북쪽으로 전갈을 보냈는데...

Eorl과 그의 기수들이 Celebrant 벌판에 왔을 때

Eä of the RingGondor의 북부 군대는 위태로웠다. Wold(불모의 고원)에서 패배하고 남쪽으로는 끊어진 채, 그들은 Limlight를 건너 내몰리었고, 그때 갑자기 Anduin 쪽으로 그들을 압박해오는 Orc 무리에게 습격을 받았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자, 그때 예기치 못한 그 기수들이 북쪽에서 나와 적의 후위로 밀고 들어왔다. 그러자 그 전투의 운수는 역전되어, 적은 학살당하며 Limlight로 내몰렸다. Eorl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추격하였고, 북부의 기병들을 앞서 나아간 그 공포는 매우 대단하여, Wold에 있던 침략자들 역시 공황 속에 내던져졌으며, 그 기수들은 Calenardhon의 평원 지대 곳곳에서 그들을 사냥하였다.

그 외 다른 데로는 부록 A (I, iv)에 유사하며 더 간결한 해설이 실려있다. 어느 쪽에서든 그 전투의 경과는 완벽히 분명하지는 않은 듯 하지만, Undeep들 위를 지난 그 기수들이 그때 Limlight를 건너(여기의 주해 29를 보라), Celebrant 벌판에서 적의 뒤를 습격한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적은 학살당하며 Limlight로 내몰렸다’는 것은 Balchoth가 남쪽으로 Wold로 격퇴되었음을 의미한다.


(iii)

Cirion과 Eorl

이 내용은 Ered Nimrais의 경계선을 따라 있는 Gondor의 봉화대들 중 가장 서쪽에 있는 Halifirien에 대한 주에 이어 나온다.

Halifirien은31 봉화대들 중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높은 Eilenach처럼 거대한 숲 밖으로 홀로 일어서 있는 듯 했는데, Ered Nimrais의 북쪽으로 향한 기다란 지맥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그곳 뒤로는, 깊은 틈새인 어두운 Firien골(Firien-dale)이 있는 것이었다. 그곳은 그 틈새 밖으로 수직으로 된 벽처럼 솟아 있었지만, 그 바깥쪽 비탈들은, 북쪽에서 특히, 길고 가파른 데는 없었으며, 그곳들 위에서 나무들이 거의 그 정상 높이로까지 자랐다. 그곳에서 내려갈 수록, 특히 (그 틈새에서 발원하는) Mering 개울을 따라가다 북쪽으로 그 개울이 Entwash로 흘러들어가는 평원으로 나올 수록, 나무들은 계속 점차 빽빽해졌다. 장대한 서부 도로(West Road)가 그 북쪽 처마 너머의 습지를 피해 그 숲 속의 긴 개착로를 통과하였으나, 이 도로는 고대 시절에 만들어졌고,32 Isildur가 떠난 이후로 Firien 숲(Firien Wood)에서는 어떤 나무도 베어진 적이 없었으니, 그 장대한 도로와 그 언덕 정상 쪽으로 향하는 소로가 열려 있도록 하는 것이 임무인 봉화대 관리인들에 의해서만 말고 말이다. 이 소로는 그 숲의 입구 부근에서 그 도로로부터 갈라져, 그 나무들이 끝나는 곳까지 구불구불 올라갔는데, 그 너머에 봉화대 부지로 향하는 돌로 된 고대의 계단이 있었고, 그곳은 그 계단을 만든 자들에 의해 넓직한 원형 모양으로 평탄하게 되어 있었다. 봉화대 관리인들은 야생 동물들을 제외한 그 숲의 유일한 거주자들이었는데, 그들은 그 정상 부근에 있는 나무들 속의 오두막집에서 살았지만, 궂은 날씨로 거기에 묶여있는게 아니라면 오래 머물지는 않았고, 직무에 따라 차례대로 오고 갔다. 대부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뻐하였다. 야생 동물들의 위험 때문도, 어두운 날에 어떤 불길한 그림자라도 생겨 그 숲을 뒤덮은 것도 아니었으나, 바람 소리들, 새와 짐승들의 울음소리들, 혹은 가끔씩 저 도로 위를 급히 말달리는 기병들의 소음보다도 못한 정적이 거기에 놓여있어, 사람은 마치 저 멀리에서 오래 전에 부른 커다란 목소리의 메아리라도 들으리라 생각한 것처럼 저도 모르게 그의 동료에게 속삭이며 얘기하곤 하였다.
    Halifirien이란 이름은 Rohirrim의 언어로 ‘성산’을 의미하였다.33 그들이 오기 전에는 그곳은 Sindarin으로 ‘경외의 언덕(Hill of Awe)’이라는 Amon Anwar로 알려져 있었는데, (나중에 나오듯이) 통치하던 왕이나 집사에게만을 제외하고는 Gondor에는 그 이유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대담하게도 그 도로에서 벗어나 그 나무들 아래를 배회해 본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그 숲 자체가 충분한 이유가 되는 듯 하였으니, 공통어(Common Speech)로 그곳은 ‘속삭이는 숲(Whispering Wood)’이라고 불렸다. Gondor의 저 위대한 시절에 Osgiliath와 그 나라의 세 개의 탑들34 간에서 전갈이나 신호는 필요 없이 palantíri가 통신을 아직 유지하던 동안에는, 어떤 봉화대도 그 언덕 위에 건설되지 않았다. 더 나중의 시절에는 Calenardhon의 주민들이 감소하면서 북부로부터의 원조는 거의 기대할 수 없었고, Minas Tirith는 Anduin 강줄기를 지키고 남쪽 연안을 경비하기가 더욱 더 곤란해지면서 그쪽으로 무장병력은 보내지 않았다. Anórien에는 아직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며, Calenardhon 밖으로 혹은 Cair Andros에서 Anduin을 건너는 북쪽의 진입로들을 경비하는 임무를 지녔다. 그들과의 연락용으로 세 개의 가장 오래된 봉화대들(Amon Dîn. Eilenach 및 Min-Rimmon)이 건설되었고 유지되었지만,35 Mering 개울줄기는 (Entwash와의 합류지점에 있는 통행할 수 없는 늪 지대와 그 도로가 Firien 숲 밖 서쪽에서 지나는 곳에 있는 다리 사이가) 요새화되긴 했어도, Amon Anwar 위에는 어떤 성채나 봉화대도 설치되는 것이 허가되지 않았다.

    집사 Cirion의 시절에 Balchoth의 거대한 강습이 일어났고, 그들은 Orc들과 동맹을 맺고 Anduin을 건너 Wold로 들어와 Calenardhon 정복을 개시하였다. Gondor를 폐허로 만들 뻔한 이 치명적인 위기에서 청년 Eorl과 Rohirrim이 와 그 나라를 구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그 집사가 어떤 식으로 Eorl을 예우하고 그에게 보답할지 궁금해하였고, Minas Tirith에서 이것이 밝혀질 거대한 연회가 열릴 것이라 기대하였다. 하지만 Cirion은 본인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남자였다. Gondor의 줄어든 군대가 남쪽으로 나아가자, 그는 Eorl과 북부의 기수들로 된 éored 하나와36 동행하였다. 그들이 Mering 개울에 오자 Cirion은 Eorl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서서 말하였다.
    ‘이제 작별하십시다, Eorl, Léod의 아드님. 나는 내 본거지로 돌아가겠으니, 그곳에 정리할 필요로 있는 것들이 많소. Calenardhon은 귀공께서 귀공의 나라로 급히 돌아가려 하는 게 아니시라면 내가 이번에 귀공의 보살핌에 맡기겠소. 석 달 후에 나는 이곳에서 귀공을 뵙겠으니, 그때 우리 함께 상의해보십시다.
    ‘그러겠습니다.’ Eorl이 대답하였는데,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Cirion은 Minas Tirith로 오자마자 그가 가장 신임하는 종복들을 소환하였다. ‘지금 속삭이는 숲으로 가거라.’ 그가 말했다. ‘거기서 너희들은 Amon Anwar로 가는 고대의 소로를 다시 열어야 한다. 그곳은 오랫동안 지나치게 우거졌으나, 그 숲의 북쪽 지역이 그 도로에 가까워지는 지점에 도로 옆에 세워진 돌로 입구가 아직 표시되어있다. 그 소로는 이리로 저리로 꺾이지만, 꺾이는 곳마다 돌이 세워져 있다. 이것들을 따라가면 너희들은 나무들이 끝나는 곳으로 와, 위를 향해 올라가는 돌로 된 계단을 찾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그 이상은 가지 말라고 명한다. 이 작업을 최대한 빨리 한 다음 나에게 돌아오거라. 어떤 나무도 베지 말되, 오직 소수의 사람들이 위를 향해 쉬이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길만 내거라. 그 도로 옆의 입구는 그대로 덮어 가린 채 두어, 내가 몸소 거기에 오기 전에는 그 도로를 이용하는 누구도 그 소로를 이용할 마음이 들지 않게끔 하거라. 너희들이 어디로 가는지 혹은 무엇을 하였는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거라. 누구든지 물으면, 집사님(Lord Steward)께서 저 기수들의 군주님(Lord of the Riders)과 회동할 준비가 된 장소를 원하신다고만 말하거라.
    때가 되자 Ciron은 아들 Hallas와 Dol Amroth의 영주 및 그의 자문 위원회의 다른 두 명과 함께 출발하였는데, 그는 Mering 개울의 도강지에서 Eorl을 만났다. Eorl과 함께 세 명의 그의 주요 대장들이 있었다. ‘이제 내가 마련해 놓은 장소로 가십시다.’ Cirion이 말했다. 그러고서 그들은 그 다리에 기수들로 된 경비대를 남긴 채 나무들로 그늘진 도로로 되돌아가, 그 세워진 돌이 있는 곳으로 왔다. 거기서 그들은 자신들의 말들과 Gondor의 병사들로 된 또다른 강한 경비대를 남겼는데, 그 돌 옆에 선 Cirion은 자신의 동행인들에게 돌아서서 ‘나는 이제 경외의 언덕으로 갑니다. 원하신다면 나를 따라오십시오. 우리 병기들을 나르게 종자 한 명이 나와 함께, 그리고 다른 한 명이 Eorl과 함께 와야겠는데, 다른 모두는 저 고지에서 있을 우리의 말과 행동의 증인으로서 무장을 풀고 가야 하겠소. 저 소로는 내가 내 부친과 여기에 온 이래로 누구도 이용하지는 않긴 했지만, 준비는 되었소.’라고 말했다.
    그러고서 Cirion은 Eorl을 그 나무들 속으로 인도하였고, 다른 이들은 차례차례 따라갔는데, 그들이 안쪽 돌들 중에서 그 첫번째를 지난 이후로 그들의 목소리는 잠잠해졌고, 그들은 마치 어떤 소리도 내고 싶지 않은 것처럼 신중히 걸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그 언덕의 오르막 비탈에 이르렀고, 새하얀 자작나무들 지대를 통과하니, 정상으로 올라가는 돌로 된 계단이 보였다. Úrimë의 달이므로 그 숲의 그림자 뒤로 태양이 뜨겁고 밝은 듯 하였는데도, 그 언덕의 꼭대기는 마치 그 해가 아직 Lótessë 인 것처럼 푸르렀다.
    그 계단 기슭에는 낮은 잔디밭 둔덕들이 놓인 언덕 사면에 만들어진 작은 암상 혹은 후미진 곳이 있었다. 거기에서 일행은 한동안 앉아 있다가, 드디어 Cirion이 일어나 그의 종자에게서 관직용 하얀 봉과 Gondor 집사의 하얀 망토를 받았다. 그러고서 그는 그 계단의 첫번째 단 위에 서서 침묵을 깨고, 낮지만 명확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Éothéod의 군주이신 Léod의 아드님 Eorl께서, Gondor가 절실히 필요로 하던 때에 맞추어 가져오신 그분의 백성들의 용맹과 이곳이 희망하던 이상으로 도움을 주신 데 대한 사례로 그분께 제안하기로 결심한 것을 왕들의 집사들의 권한으로 지금 선언하겠소. Eorl께 나는 Anduin에서부터 Isen까지 Calenardhon의 거대한 전토를 아무 대가 없이 선물로 드리겠소. 만일 그분께서 원하신다면, 거기에서 그분께서는, 그리고 그분의 후계자들께서는 왕이 되실 것이며, 그분의 백성들은 자유로이 거주할 것이니, 위대한 왕(Great King)께서 귀환하실 때까지37 집사들의 권한이 지속되는 한 말이오. 그들만의 법과 의지 이외에 오직 다음만 제외하고 어떤 속박도 그들에게 놓이지 않을 것이니, 두 나라가 지속되는 한 그들은 Gondor와 영구한 우정을 맺고 살 것이며, 그곳의 적들은 그들의 적들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오. 하지만 똑같은 속박이 또한 Gondor의 백성들에게도 놓일 것이오.
    그러자 Eorl이 일어났지만, 얼마 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는 그 후한 선물과 그것을 제안하면서 사용한 기품있는 말투에 깜짝 놀랐던 것인데, 자기 나라의 남은 것들을 보호하려 하는 Gondor의 통치자로서의, 그리고 Éothéod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의 친구로서의 Cirion의 지혜로움을 그는 알아보았다. 그들은 북부의 그들의 땅에 대해 이제는 너무 엄청난 수의 민족으로 자라났고 남쪽의 그들의 예전 본거지로 돌아가기를 갈망하였지만, Dol Guldur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참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Calenardhon에서 그들은 희망하던 이상의 공간을 갖게 될 것이며, 게다가 Mirkwood의 어스름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터였다.
    그렇지만 지혜와 정책을 넘어서서 그 무렵에 Cirion과 Eorl 모두는 그들의 민족들을 결속시킨 위대한 우정과, 진실한 사람들로서 그들 간에 있는 애정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 Cirion 쪽에서 그 애정은 세상의 걱정거리들 속에서 늙은 한 지혜로운 아버지가 그가 젊었던 시절의 강인함과 희망 속에 있는 아들에 대해 가진 그것이었는데, 한편 Cirion에게서 Eorl은 오래 전의 인간의 왕들(Kings of Men)의 존엄 위에 앉아있는, 그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드높고 고귀한 사람이자 가장 지혜로운 남자를 보았다.
    드디어 Eorl은 자신의 생각에서 이 모든 것들이 빠르게 지나가 버리자, 그는 발언하였고, ‘위대한 왕의 집사님, 귀공께서 제안하신 선물을 나는 나 본인을 위해 그리고 내 백성들을 위해 받아들입니다. 설령 우리의 공적들이 아무 대가 없는 우정의 선물이 아니라 해도, 그것은 이것들로 받을 수 있을 어떤 답례도 훨씬 초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잊혀지지 않을 맹세로 그 우정을 보증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이제 저 고지로 가서, 이 증인들 앞에서 적당하다 싶은 맹세들을 하십시다.’ Cirion이 말했다.

    그러고서 Cirion은 Eorl과 함께 그 계단을 올라갔고, 다른 이들은 뒤를 따랐는데, 그들이 정상에 오르니 거기에 울타리는 처지지 않은 평탄한 잔디밭으로 된 넓은 타원형 터가 보였지만, 그 동쪽 끝에 새하얀 alfirin 꽃들이38 발아한 낮은 둔덕이 서있었고, 서쪽으로 가고있는 태양이 그것들을 금빛이 띠게 하였다. 그러자 Cirion의 일행 속에 있는 자들 중 우두머리인 Dol Amroth의 영주가 그 둔덕 쪽으로 가, 그 앞의 풀밭 위에 놓여 있는, 잡초나 비바람으로 여태 훼손되지 않은 한 검은 돌을 보았는데, 그 돌 위에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자 그가 Cirion에게 ‘그러면 이것은 무덤입니까? 하지만 어느 위대한 옛 사람이 여기에 누워있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그 글자들을 읽어보지 않았소?’ Cirion이 말했다.
    ‘읽었보았고, 그래서 제가 궁금해 하는 것입니다.’ 그 제후가 말했다.39그 글자들은 lambe, amdo, lambe이지만, Elendil의 무덤은 있지 않거니와, 그분의 시절 이래로 어느 누구도 감히 그 존함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40
    ‘그럼에도 불구 이것이 그분의 무덤이며, 이 언덕과 저 숲 아래에서 거하는 경외심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오.’ Cirion이 말했다. ‘그것을 세우신 Isildur께로부터 그분을 이으신 Meneldil, 그리고 아래로 왕들의 가계 모두에게로 내려오고, 집사의 가계로 내려와 나 본인에 이르기까지 이 무덤은 Isildur의 명으로 비밀로 부쳐져왔소. 그분께서는 “이곳은 남왕국(Kingdom of the South)의 중앙 지점이며,41 그 왕국이 지속되는 동안 이곳에서 신실한 분 Elendil의 기념물이 Valar께 맡겨진 채로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 이 언덕은 성지가 되어야 할 것이며, 어떤 사람도 그가 Elendil의 후계자가 아니라면 그곳의 평온과 고요함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소. 이곳에서 하는 맹세가 우리 자신과 양편의 우리의 후계자들에게 가장 극도로 엄숙해 보일 것 같아, 나는 여러분들을 여기로 모신 것이오.
    그러자 참석한 자들 모두가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침묵 속에 서있다가, 드디어 Cirion이 Eorl에게 ‘귀공께서 준비가 되셨다면, 이제 귀공 민족의 관습에 따라 귀공께 적당하다 싶은 방식으로 귀공의 맹세를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Eorl은 그러자 앞에 서서 그의 종자에게서 그의 창을 받아 그것을 지면에 수직으로 세웠다. 그러고서 그는 자신의 검을 뽑아 위로 쳐올려 햇빛에 빛나게 하고는 다시 그것을 쥐고 앞으로 나아가 그 날을 그 둔덕 위에 놓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그 손잡이 부근에 있었다. 그는 그러고서 큰 목소리로 Eorl의 맹세를 말하였다. 이것을 그는 Éothéod의 말로 말하였으니, 그것은 공통어로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42

동부의 그림자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 모든 민족들은 이제 들으시오, Mundburg의 군주의 선물을 통해 우리는 그분께서 Calenardhon이라 부르시는 땅에서 거주하기 위해 올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와 서부의 위대한 민족(Great People of the West) 사이에 영원한 우정이 있을 것인 즉, 그들의 적들은 우리의 적들이 될 것이고, 그들이 위급한 때는 우리가 위급한 때가 될 것이며, 불운이든, 위협이든, 강습이든 무엇이든 그들에게 닥치면, 우리는 우리의 힘의 극한까지 그들을 돕겠다고 나는 나 본인의 이름을 걸고 북부의 Éothéod를 대표하여 서약합니다. 이 서약은 나의 후계자들, 우리의 새 땅에서 나의 뒤를 이을 모든 이들에게로 전해질 것이며, 저 그림자가 그들에게 닥쳐 그들이 저주받지 않도록, 그들은 신의로 그것이 깨지지 않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Eä of the Ring 그러고서 Eorl은 검을 검집에 넣고 절하고서 그의 대장들에게로 돌아갔다.
    Cirion이 그러자 회답하였다. 그의 큰 키를 곧추 세운 그는 손을 무덤에 놓고 오른손은 집사들의 하얀 봉을 치켜들고 말을 하니, 그것을 듣는 자들은 경외심으로 가득 찼다. 그가 서자 태양이 서부에서 이글거리며 내려와, 그의 하얀 예복이 불타오르는 듯 하였던 것이었는데, Gondor는 우정이라는 일종의 속박에 묶일 것이며, 모든 위급한 때에 도울 것임을 그는 서약한 후, 목소리를 높여 Quenya로

Vanda sina termaruva Elenna·nóreo alcar enyalien ar Elendil Vorondo voronwë. Nai tiruvantes i hárar mahalmassen mi Númen ar i Eru i or ilyë mahalmar eä tennoio.43

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그는 공통어로 말했다.

이 맹세는 별의 땅(Land of the Star)의 영광과 신실하신 분 Elendil의 신의를 기억하며, 서부의 옥좌들에 앉으신 분들과 영원히 모든 옥좌들 위에 계신 저 유일하신 분께 맡겨진 채로 있을 것이오.

    Elendil 본인이 Eldar의 왕 Gil-galad와 동맹을 선서하였던 이래로 그러한 맹세는 중간대륙에서 들렸던 적이 없었다.44
    모든 것이 끝나고 저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자, Cirion과 Eorl은 그들의 일행들과 함께 침묵 속에 어스레한 숲을 통과하여 다시 내려가, 그들을 위한 천막들이 마련된 Mering 개울 옆의 야영지로 돌아왔다. 그들이 식사를 한 후 Cirion과 Eorl은 Dol Amroth의 제후와 Éothéod 부대의 최고위 대장 Éomund와 함께 앉아, Éothéod의 왕과 Gondor의 집사의 권한의 경계선을 정의하였다.
    Eorl의 나라의 경계는 서부에서는 Adorn과의 합류점에서부터의 Angren강과 거기에서부터 북쪽으로 Agrenost의 바깥 방벽까지,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서쪽과 북쪽으로 Fangorn 숲의 처마를 따라 Limlight강까지가 되기로 하였는데, 그 강은 그 북쪽 경계선이 되었으니, 그 너머의 땅은 Gondor가 결코 영유권을 주장한 적이 없던 것이었다.45
    동쪽에서 그 경계는 Anduin과 Emyn Muil의 서쪽절벽에서 Onodló 하구의 늪 지대로 내려오고, 그 강 너머로는 Anwar 숲을 뚫고 흘러와 Onodló와 합류하는 Glanhír 개울이었는데, 남쪽에서 그 경계는 Ered Nimrais가 그 북쪽으로 향해 있는 팔의 끝까지였지만, 북쪽으로 열린 그곳의 모든 골짜기들과 후미들은 Éothéod에게로 귀속되었으니, Angren과 Adorn 강들 사이에 놓인 Hithaeglir의 남쪽 땅과 마찬가지로 말이다.46
    이 모든 지역들에서 Gondor는 오직 Angrenost의 요새만 여전히 그곳의 통솔 하에 유지하였으니, 그 안에는 남쪽 나라의 palantíri 중 네번째가 놓여 있는 Gondor의 세번째 탑, 난공불락의 Orthanc가 있었다. Cirion의 시절에 Angrenost는 여전히 Gondor인(Gondorians) 경비대가 배치되어 있었지만, 이들은 작은 정착민이 되어, 세습되는 한 대장에 의해 다스려졌고, Orthanc의 열쇠는 Gondor의 집사에게 맡겨졌다. Eorl의 나라의 경계에 대한 기술에서 불리는 그 ‘바깥 방벽’은 Angrenost 관문 남쪽으로 이 miles 정도 나 있는 성벽과 해자로, 안개산맥이 끝나는 양쪽 구릉 사이에 있었는데, 그 너머는 그 요새의 주민들의 경작용 땅이었다.
    이전에 Arnor로 가는 중에 Anórien과 Calenardhon을 통과하여 Athrad Angren (Isen 여울)까지,47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북쪽으로 나 있던 대로(Great Road)도 또한 평화시에는 장애없이 양 백성의 모든 여행자들에게 개방되었고, 그 유지 보수는 Mering 개울부터 Isen 여울까지는 Éothéod의 감독 하에 두기로 합의되었다.
    이 협정에 의해 Mering 개울 서쪽의 Anwar 숲의 작은 일부가 Eorl의 나라에 포함되었으나, Cirion은 Anwar 언덕이 이제 양 민족에게 신성한 장소가 되는 것으로 선언하였고, 그러므로 Eorl인(Eorlings)과 집사들이 그곳의 경비와 유지 보수를 공유하여야 했다. 그러나 늦은 시절에 Rohirrim이 세적 수적으로 점차 커지고, 반면 Gondor는 쇠퇴하고 동부와 바다로부터 늘 위협을 받으면서, Anwar의 관리인들은 완전히 Eastfold의 백성에 의해 공급되었고, 그 숲은 관습에 의해 Mark의 왕들의 왕실 영지의 일부가 되었다. 그 언덕을 그들은 Halifirien, 그 숲을 Firienholt라고 이름 붙었다.48
    뒤이은 시대에 그 맹세식 날은 Eorl이 기수들의 Mark의 왕의 칭호를 받을 때, 그 새 왕국의 첫 날로 계산되었다. 하지만 결국에 Rohirrim이 그 땅의 소유권을 받기에 앞서 다소 시간이 걸려, 그의 생애 동안 Eorl은 Éothéod의 군주와 Calenardhon의 왕으로서 알려졌다. Mark라는 용어는 경계지, 특히 한 나라의 안쪽 땅들의 방어를 담당하는 곳을 의미하였다. Mark와 그 백성을 위한 Sindarin 이름들인 Rohan과 Rohirrim은 Cirion의 아들이자 후계자 Hallas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지만, Gondor에서 뿐만 아니라 Éothéod 본인들도 종종 사용하였다.49
    맹세식 다음 날 Cirion과 Eorl은 포옹하고 원치 않는 작별인사를 했다. Eorl이 ‘집사님, 나는 급히 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은 이제 적들에게서 자유로워졌으나, 그들은 그 근본이 섬멸되지는 않았고, Anduin 너머와 Mirkwood 처마 아래에는 무슨 위험이 도사리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나는 어젯밤, 적어도 한 명은 나보다 먼저 제 고향에 도달하기를 희망하며, 용감하고 솜씨 좋은 기수들인 세 명의 전령을 북쪽으로 보냈습니다. 나는 이제 몸소 약간의 병력과 함께 돌아가야만 하는데, 내 땅은 소수의 남자들, 너무 어리고 너무 늙은 자들에게 남겨진 채 있고, 만일 그들이 그런 엄청난 여행을 하려 한다면, 우리 여성과 아이들은 우리가 남겨둘 수 없는 재산들과 함께 호위를 받아야만 하며, 오직 Éothéod의 군주만을 그들은 따라갈 것입니다. 나는 내가 할애할 수 있는 전 병력인, 지금 Calenardhon에 있는 군대의 거의 절반을 내 뒤에 남길 것입니다. 적의 무리들이 약간이라도 아직 그 땅에서 도사리고 있다면 위급함을 부르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기마 궁수대 일부가 있어야 하겠으나, 주요 병력은 Balchoth가 갈색 지대에서 나와 Anduin을 건넜던 모든 곳을 경비하도록 북동부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니, 가장 커다란 위험이 아직 있으며, 내가 만일 돌아간다면, 내 백성들을 가능하다면 적은 슬픔과 손실을 입고 그들의 새 땅으로 인솔해올 수 있으리라는 내 중요한 희망도 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돌아간다면, 그러나 내 맹세를 지키기 위해 나는 돌아오겠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라고 말씀드리니, 그 기나긴 길 위에서 재난이 우리에게 일어나 내가 내 백성들과 함께 죽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 길은 늘 Mirkwood의 위협 하에 있는 Anduin 동편이어야만 하며, 마지막에는 귀공께서 Dol Guldur라고 부르는 그 언덕의 그림자가 괴롭히는 골짜기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 산맥이 Orc들로 들끓지 않더라도, 그 서편에는 기병들을 위한 도로도, 거대한 백성과 전차들 무리들을 위한 도로도 있지 않은데, 새하얀 귀부인(White Lady)이 거주하고 필멸인 자들은 지날 수 없는 망을 치는 Dwimordene는 적든 많든 누구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50 내가 Celebrant로 온 것처럼 그 동쪽 길로 나는 올 것이니, 우리가 맹세에서 증인으로 부른 저들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이제 희망을 가진 채 헤어집시다! 내가 귀공의 작별인사를 받은 것인지요?’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나는 이제 그리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아니, 실로 귀공은 내 작별인사를 받은 것이오.’ Cirion이 말했다. ‘나는 우리들의 위기 속에서 내가 귀공이 직면한 위험들과 귀공께서 북부에서부터 머나먼 수 league를 지나 올 것이라는 희망을 넘어서는 기적에 대해서 너무 생각이 적었다는 것을 깨달았소. 내가 기쁨과 우리가 구출된 것에 벅찬 마음에 귀공께 제안한 사례는 이제 작은 듯 하오. 하지만 내가 말하기 전에 미리 생각치 못했던 내가 맹세에서 한 그 말은, 내 입 속에 헛되이 놓여 있었던게 아니었다고 나는 믿소. 그러면 우리는 희망을 가진 채 헤어지겠소.
    그 편년사들 방식으로 여기에서 Eorl과 Cirion이 작별할 때 말했다고 하는 것들 중 많은 것들이 전날 밤의 토론에서 발언되고 심사숙고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Cirion이 그 작별 때 그의 맹세의 영감에 관해 말한 것은 확실하니, 그는 적은 교만과 위대한 용기와 후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으로, Gondor의 집사들 중 가장 고귀한 자였던 것이었다.

(iv)

Isildur의 전통

Isildur가 마지막 동맹 전쟁(War of the Last Alliance)에서 돌아와, Arnor의 왕권을 받들기 위해 출발하기에 앞서, 한 동안 Gondor에 머물며 그 나라를 정리하고 조카 Meneldil을 가르쳤다고 한다. Meneldil 및 신임하는 동지들 일행과 함께 그는 Gondor가 영유권을 주장한 모든 땅의 경계선 주위를 여행하였는데, 그들은 Anórien의 북쪽 경계에서 돌아오던 중에, 당시에는 Eilenaer라고 불렸지만, 훗날에는 ‘경외의 언덕’이라는 Amon Anwar로 불리는 높은 언덕으로 왔다.51 그곳은 Gondor 땅의 중심에 가까웠다. 그들은 그 북쪽을 향한 비탈 위의 빽빽한 숲을 뚫어 소로를 하나 내었고, 그리하여 그 정상에 이르렀으니, 그곳은 푸르고 나무는 없었다. 거기에서 그들은 평평한 공간을 만들고, 그 동쪽 끝에 둔덕을 세웠는데, 그 둔덕 안에다 Isildur는 그가 지니고 있던 손궤 하나를 놓았다. 그러고서 그는 ‘이것은 신실한 분 Elendil의 무덤이자 기념물이다. 그것은 이곳 남왕국의 중앙 지점에서, 그 왕국이 지속되는 동안 Valar께 맡겨진 채로 서있어야 할 것이니, 이 장소는 누구도 더럽히면 안될 성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도 그가 Elendil의 후계자가 아니라면 그곳의 고요함과 평온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 숲 주위에서 그 언덕 꼭대기까지 오르는 돌계단을 만들었는데, Isildur는 ‘이 계단 위로는 왕과, 만일 그가 따라오라고 지시를 한다면 그가 데리고 오는 자들을 제외한 어떤 사람도 오르지 못하게 하라.’라고 말했다. 그러고서 참석한 이들 모두가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 하였으나, Isildur는 Meneldil에게, 왕은 가끔씩, 특히 그가 위험이나 고뇌의 나날 속에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 성지를 방문해야 한다고, 그리고 또한 그의 후계자가 완전히 자라 성인이 되면 그를 거기로 데려와, 그에게 그 성지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말해주고, 그가 알아야 하는 그 나라의 비밀과 다른 중대사들을 밝혀야 한다고 조언을 주었다.
    Meneldil은 Isildur의 조언을 따랐고, 그 뒤를 이은 왕들 모두가 그리 했으니, (Meneldil 이후 다섯번째인) Rómendacil I까지 말이다. 그의 시대에 Gondor는 처음으로 동부인들(Easterlings)의 습격을 받았는데,52 전쟁이나 갑작스런 죽음이나 다른 불운 때문에 그 전통이 깨지지 않을까 하여, 그는 그 ‘Isildur의 전통’을, 새 왕이 알아야 하는 다른 것들과 함께 두루마리에 적어 봉했는데, 이 두루마리는 집사에 의해 왕에게 그의 대관식 이전에 전달되었다.53 이 전달은 그때부터 죽 언제나 행해졌으니, 비록 Amon Anwar의 성지를 후계자와 방문하는 관습은 Gondor의 거의 모든 왕들에 의해 유지되긴 했지만 말이다.
    왕들의 시절이 끝에 이르고 Gondor가 Minardil 왕의 집사 Húrin의 자손인 집사들에게 통치를 받을 때에는, 왕들의 모든 권리와 의무들은 ‘위대한 왕이 귀환할 때까지’ 그들의 것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Isildur의 전통’ 건에 관해서는, 그것은 오직 그들에게만 알려져있었으므로, 그들이 곧 판단자들이었다. 그들은 Isildur는 ‘Elendil의 후계자’라는 말을 통해 Elendil의 자손인 왕실 가계의 사람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그는 집사들이 통치하게 되는 것은 내다보지 못했다고 판단하였다. 만일 그때 Mardil이 왕의 권한을 그의 부재 중에 행사했다면,54 집사권을 물려받은 Mardil의 후계자는 왕이 귀환할 때까지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졌으므로, 각 집사들은 그가 하고자 할 때 그 성지를 방문하고, 그가 적당하다 생각하면 그와 함께 올 자들에게 그것을 허락할 권리가 있었다. ‘그 왕국이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그들은 Gondor는 대리섭정에 의해 통치되는 ‘왕국’으로 남아있고, 그러므로 그 말은 ‘Gondor의 그 상태가 지속되는 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 집사들은, 왕들의 관습에 따라 그들의 후계자를 그 언덕꼭대기로 데려갈 때를 제외하고는, 부분적으로는 경외감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그 왕국을 돌보느라고, Anwar의 언덕 위의 성지에는 매우 드물게 갔다. 때때로 그곳은 몇 년 동안 방문되지 않은 채로 남아, Isildur가 기도했듯이 그곳은 Valar에게 맡겨진 채로 있었는데, 그 숲이 자라 엉키고 그 정적 때문에 사람들이 피하게 되면서 그 오르막 소로는 소실되긴 했지만, 그 길이 다시 열릴 때에는 여전히 그 성지는 비바람을 맞지도 더럽혀지지도 않은, 하늘 아래 늘 푸르고 평온한 채로 발견되었던 것이었으니, Gondor 왕국이 변화했을 때까지 말이다.
    제 십이대 통치 집사(Ruling Steward) Cirion이 새롭고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으니, 침략자들이 백색산맥(White Mountains) 이북의 Gondor의 모든 땅들을 정복하려고 위협하였으며, 만일 그것이 벌어지면 온 왕국의 파멸과 멸망이 곧 뒤따를 게 틀림없었다. 역사책들 속에서 알려지다시피, 이 위기는 오직 Rohirrim의 도움에 의해 피하게 되었는데, 위대한 지혜를 가진 Cirion은 그들에게 Anórien을 제외한 북쪽의 모든 땅들을 수여하여, 그들만의 통치권과 왕 하에 있게 하였으니, 다만 Gondor와 영구한 동맹을 맺은 채로 말이다. 그 북쪽 지역에서 살게 하기에도, 심지어 Anduin을 따라 늘어선, 그 동쪽 경계선을 경비하는 성채들에서 병력을 유지하기에도 그 나라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충분히 있지 않았다. Cirion은 그가 Calenardhon을 북부의 기수들(Horsemen of the North)에게 수여하기에 앞서 이 중대사를 오랫동안 숙고하였는데, 그는 그곳의 할양은 Amon Anwar의 그 성지에 관한 ‘Isildur의 전통’을 완전히 변화시킬 게 틀림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장소로 그는 Rohirrim의 군주를 데려가, 그곳의 Elendil의 둔덕 옆에서 가장 커다란 엄숙함으로 Eorl의 맹세를 받고, Cirion의 맹세로 회답하여, Rohirrim과 Gondor 양 왕국의 동맹을 영원히 승인하였다. 하지만 이것을 끝마치고, Eorl이 그의 온 백성을 그들의 새 거주지로 데리고 오기 위해 북부로 돌아갔을 때, Cirion은 그 Elendil의 무덤을 치웠다. 그는 ‘Isildur의 전통’은 이제 공허하게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 성지는 더 이상 ‘남왕국의 중앙 지점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경계 상에 있는 것이었는데, 게다가 ‘그 왕국이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말은 Isildur가 그 경계를 둘러보고 정의하고나서 말했을 때 그대로의 왕국을 언급한 것이었다. 그 날 이래로 그 왕국의 다른 지방들이 상실된 것은 사실이었으니, Minas Ithil은 Nazgûl의 수중에 있었고, Ithilien은 황폐화되었으나, Gondor는 그곳들의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Calenardhon을 그곳은 맹세 하에 영원히 양도하였다. 그러므로 Isildur가 그 둔덕 안에 놓은 그 손궤를 Cirion은 Minas Tirith의 성지로 옮겼으나, 그 푸른 둔덕은 한 기념물의 기념물로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그곳이 거대한 봉화대의 부지가 되었을 때 조차, 그 경외의 언덕은 여전히 Gondor에게도, 그리고 그곳을 자신들 말로 성산(Holy Mount), Halifirien이라고 이름 지은 Rohirrim에게도 경건함의 장소였다.


주해

1 어떤 저술도 이 제목을 달고 현존하지 않지만, 저 세번째 편(여기의 ‘Cirion과 Eorl’)에 실린 글이 그 일부를 나타내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 왕들의 책(Book of the Kings) 따위. [저자의 주.] — 이 저작은 Elessar 왕에 의해 Frodo와 Peregrin에게 공개된 Gondor의 기록문들 가운데에 (집사들의 책(Book of the Stewards)Akallabêth와 함께) 있는 것으로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의 서두 구절에서 언급되었으나, 그 개정판에서 그 언급은 삭제되었다.
3 그 외 다른 데에서는 이름 불리지 않는 그 동부 만곡부는 반지들의 제왕의 지도에서 보이는 Mirkwood의 동쪽 경계에 있는 크게 움푹 들어간 곳이었다.
4 북부인들은, Hador 가문에 의해 통치된, 요정친구들(Elf-friends)의 민족들 중에서 세번째이자 가장 거대한 민족에 매우 가까운 동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주.]
5 그 Gondor의 군대가 완전한 궤멸에서 탈출한 것은 후위대로 활약한 (‘Rhovanion의 왕’ Vidugavia의 자손인) Marhari 하의 북부인 기병들의 용기와 충실함에서 부분적으로 기인하였다. 하지만 Gondor의 병력은, 동부로부터 증강될 때까지 그 침략을 밀어붙이기에는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하게 하고, 그동안 Rhovanion 정복을 달성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할 만큼의 손실을 전차몰이들에게 입혔다. [저자의 주.] —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 iv)에서는 스스로를 Rhovanion의 왕이라고 부른 Vidugavia는 북부인들의 지배자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였는데, 그가 동부인에 대항한 전쟁에서 도움을 준 (1366년에 죽은) Gondor의 왕 Rómendacil II에게서 그는 호의를 받았고, Rómendacil의 아들 Valacar와 Vidugavia의 딸 Vidumavi의 혼인은 십오 세기에 Gondor에서 파괴적인 동족분쟁(Kin-strife)을 야기하였다고 전해진다.
6 북부인과 Éothéod의 초기 왕들과 지배자들의 이름들이 Léod, Eorl, 및 후기의 Rohirrim의 경우에서처럼 고대영어(Old English) (Anglo-Saxon어)가 아니라 Goth어 형태라는 것은, 내 아버지의 저술들 어디에서도 언급되어있지 않다고 나는 믿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Vidugavia는 철자가 Latin어화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는 Goth인의 이름인 Goth어 Widugauja (‘숲거주자(wood-dweller)’)를 나타내며, 유사하게 Vidumavi와 Goth어 Widumawi (‘숲처녀(wood-maiden)’)가 그렇다. MarhwiniMarhari는 Goth어 단어인 marh ‘말’을 함유하니, 고대영어 mearh, 복수형으로는 반지들의 제왕에서 Rohan의 말들에 대해 사용된 단어인 mearas에 해당하였고, wini ‘친구’는 Mark의 몇몇 왕들의 이름에서 보이는 고대영어 winë에 해당하였다. 부록 F (II)에서 설명하다시피, Rohan의 언어는 ‘고대 영어를 닮도록 만들어졌’으므로, Rohirrim의 조상들의 이름들은 가장 초기의 기록에 남아있는 German의 언어 형태로 만들어졌다.
7 그 이름의 훗날의 형태로는 말이다. [저자의 주.] — 이것은 ‘말민족’이라는 고대영어인데, 주해 36을 보라.
8 상술한 글은 비록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 iv와 II)에 있는 해설보다 훨씬 간결하긴 하지만 어긋나지는 않는다. 십 삼세기에 (Rómendacil II라는 이름을 받은) Minalcar에 의해 동부인들과 싸운 전쟁에 대해, 그 왕에 의한 수많은 북부인들의 Gondor의 군대들로의 흡수, 혹은 그의 아들 Valacar의 북부인 공주와의 혼인과 그로부터 야기된 Gondor의 동족분쟁에 대해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나, 그것은 반지들의 제왕에서 거론되지 않은 약간의 특징들을 덧붙이니, Rhovanion의 북부인들의 쇠퇴는 대역병에 기인하였다는 것, 부록 A에서는 ‘Anduin 너머’에서였다고 하는 1856년의 Narmacil II가 전사한 전투가 Mirkwood 남쪽의 드넓은 땅에서였으며 평원 전투로 알려졌다는 것, 그리고 그의 거대한 부대가 Vidugavia의 자손 Marhari의 후위 방어를 통해 전차몰이들에 의한 전멸로부터 구출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평원 전투 이후에 북부인의 잔존자인 Éothéod가 Carrock과 Gladden 벌판 사이의 Anduin 골짜기 지대에서 거주하면서, 별개의 민족이 되었다는 것을 여기에서 더 명확히 해준다.
9 그의 조부 Telumehtar는 Umbar를 함락하여 해적들의 세력을 깨부쉈고, Harad의 민족들은 이 기간에 그들간의 전쟁과 반목들로 묶여 있었다. [저자의 주.] — Telumehtar Umbardacil에 의한 Umbar 획득은 1810년에 있었다.
10 Fangorn 숲의 동쪽에서 Anduin의 서쪽을 향한 거대한 굴곡부들인데, ‘Galadriel과 Celeborn의 역사’의 부록 C에 실린 여기의 첫 인용문을 보라.
11 éored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주해 36을 보라.
12 이 내용은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 iv)에 있는, ‘Narmacil II의 아들, Calimehtar는 Rhovanion에서의 반란의 도움을 받아, 1899년에 Dagorlad에서 동부인들에 대한 위대한 승리로 아버지의 원한을 갚았고, 한동안 위기는 피하게 되었다’는 요약된 해설보다 매우 훨씬 충만하다.
13 저 숲의 좁아진 지대는, 동부 만곡부가 움푹 들어가면서 생긴, 남쪽에 있는 Mirkwood의 좁은 ‘허리’를 언급하는 것이 틀림없다 (주해 3을 보라).
14 당연했다. 근 Harad로부터 나온 공격은 — 그 무렵에는 도움이 안되던 Umbar로부터 원조를 얻지 않는다면 — 보다 쉽게 격퇴하고 봉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Anduin을 건널 수 없었고, 북쪽으로 가면 강과 산맥 사이의 좁아지는 땅 안으로 나아갔다. [저자의 주.]
15 그 본문과 관련된 한 따로 분리된 주에서는 이 기간에 Morannon은 여전히 Gondor의 통제 하에 있었고, 그 동쪽과 서쪽에 있는 두 개의 감시탑들(이빨 탑들(Towers of the Teeth))은 여전히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논평한다. Ithilien을 통과하는 도로는 Morannon까지 여전히 완전히 정비되어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것은 Dagorlad를 향해 북쪽으로 가는 도로와, 그리고 Ered Lithui의 경계선을 따라 동쪽으로 가는 또다른 도로와 만났다. [이들 도로 중 어느 것도 반지들의 제왕의 지도 상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 동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Barad-dûr의 부지의 북쪽 지점까지 연장되었는데, 그것은 더 멀리로는 결코 완성되지 못했고, 만든 것은 이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 이전에 완공된 그 첫 오십 miles은 그 전차몰이들의 접근 속도를 크게 빠르게 하였다.
16 사학자들은 그곳이 Elessar 왕이 제삼 시대를 끝내는 마지막 전투에서 Sauron에게 저항하였던 곳과 같은 언덕이라고 짐작하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곳은 아직 기병들에게는 거의 장애가 되지 않는, 자연적으로 위로 완만하게 융기한 곳이었을 뿐이지, 아직 Orc들의 노동으로 쌓아 올려지지는 않았다. [저자의 주.] — 여기에서 언급된 왕의 귀환 (V 10)에 있는 구절들은 ‘Aragorn은 이제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진형으로 군사들을 배치하여, Orc들이 수년의 노동으로 쌓아 올린 마른 돌과 흙으로 된 거대한 두 개의 구릉 위에 정열시켰다’고, 그리고 Aragorn이 Gandalf와 함께 그 한 곳 위에 서는 한편, Rohan과 Dol Amroth의 기들은 다른 곳 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17 Dol Amroth의 Adrahil의 존재에 대해서는 주해 39를 보라.
18 그들의 이전 본거지는 Carrock과 Gladden 벌판 사이의 Anduin 골짜기 지대에 있었는데, 여기를 보라.
19 Éothéod의 북쪽으로의 이주의 원인은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I)에 ‘[Eorl의 선조는] 그 평원 지대를 가장 사랑하고, 말들과 모든 마술 묘기를 즐겼지만, 그 시절에 Anduin의 증간 골짜기 지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게다가 Dol Guldur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있었는데, 그러므로 그들이 [1975년에] 마술사왕의 전복에 대해 들었을 때, 그들은 북부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찾아내려 하였고, 그 산맥 동쪽 면의 Angmar의 백성들의 잔존자들을 몰아내었다. 하지만 Eorl의 아버지인 Léod의 시절에 그들은 엄청난 수의 민족으로 자라났고, 그들의 본거지의 땅은 다시 다소 좁아지게 되었다.’라고 실려있다. Éothéod의 이주의 지도자는 Frumgar라고 이름 불렸는데, 연대 이야기에서 그 연도는 1977년으로 실려있다.
20 이들 이름없는 강들이 반지들의 제왕의 지도 상에 표시되어 있다. 거기에서 Greylin은 두 갈래의 지류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21 조심스런 평화기는 Sauron이 Dol Guldur에 부재하였던 2063년에서 2460년까지 지속되었다.
22 Anduin을 따라 있는 성채들에 대해서는 여기를 보고, Undeep들에 대해서는 여기를 보라.
23 이 본문의 더 이른 구절(여기)로부터는, 1899년에 Calimehtar의 Dogorlad에서의 전차몰이들에 대한 승리 이후로 Mirkwood의 동쪽 지대에 남은 북부인들은 없었다는 인상이 든다.
24 이들 민족은 Gondor에서 그렇게 불렸으니, Orc 같은 민족들에게 적용되던 서부어(Westron) balc ‘무서운’과 Sindarin hoth ‘무리’에서 나온, 통속 언어에 혼합된 단어였다. [저자의 주] — Silmarillion의 부록에 있는 hoth 항목을 보라.
25 Eä of the Ring집사 arandur(왕의 시종)를 나타내는, 위에 세 개의 별들이 놓인 R· ND ·R 글자들. [저자의 주.]
26 그는 또한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그가 탐지한 대로 Éothéod는 그들의 북쪽 지대가 매우 증가된 그들의 수를 지탱하기에는 너무 좁고 메마르다는 것을 깨닫고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주.]
27 그는 Eorl의 오른편에서 éoherë와 함께 말달려 돌아와, 맨 처음으로 Limlight를 건너, Cirion을 돕도록 길을 내었으므로, 그의 이름은 Rochon Methestel (마지막 희망의 기수(Rider of the Last Hope))라는 노래 속에서 Borondir Udalraph (등자없는 자 Borondir)로서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그는 자신의 주군을 지키다 Celebrant 벌판에서 끝내 쓰러져, Gondor와 Éothéod에게 커다란 슬픔이 되었고, 뒤에 Minas Tirith의 성지에 있는 무덤 안에 뉘어졌다. [저자의 주.]
28 Eorl의 말.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I)에서는 야생마들을 길들이는 자였던 Eorl의 아버지 Léod는 감히 Felaróf에 올라 탔다가 그에게서 내던져졌고, 그리하여 그는 죽음을 맞았다고 전한다. 뒤에 Eorl이 그 말에게 아버지에 대한 보상으로 그의 생이 끝날 때까지 그의 자유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Felaróf는 복종하였으니, 다만 그는 Eorl을 제외한 어떤 사람도 올라 타는 것을 허락치 않으려 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였고, 그들만큼 오래 살았는데, ‘Shadowfax의 시대 때까지 Mark의 왕 혹은 그의 아들들을 제외한 누구도 태우지 않으려 하던’ 그의 자손들, mearas처럼 말이다. Felaróf는 ‘매우 용맹한, 매우 강한’이라는 Anglo-Saxon의 시적인 표현 형식의 한 단어로, 사실 현존하는 시에는 기록되어있지는 않다.
29 Limlight가 유입하는 곳과 Undeep들 사이. [저자의 주.] — 이것은 ‘Galadriel과 Celeborn의 역사’의 부록 C에 실린 여기의 첫 인용문에 확실히 어긋나는 듯 한데, 거기에서는 ‘북쪽과 남쪽의 Undeep들’이 Anduin의 ‘두 개의 서쪽을 향한 굴곡부들’이며, 그 최북단에서 Limlight가 흘러들어왔다.
30 아흐레 만에 그들은 직선으로는 오백 miles 이상을, 그들이 말달린 대로는 육백 이상을 간 것이다. 비록 Anduin의 동편에는 거대한 자연적 장애물은 없긴 했지만, 그 땅의 많은 곳이 지금은 황폐하였고,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나 말을 위한 소로는 유실되었거나 거의 이용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겨우 짧은 기간 동안에만 빨리 말달릴 수 있었고, 또한 그들은 Undeep들에 닿자마자 전투를 예상하였으므로, 자신들과 자신의 말들의 힘을 아껴 쓸 필요가 있었다. [저자의 주.]
31 Eä of the RingHalifirien는 반지들의 제왕에서 두차례 거론된다. 왕의 귀환 V 1에서 Gandalf와 함께 Shadowfax를 타고 Minas Tirith로 말달리던 Pippin이 불빛들이 보인다고 외쳤을 때, Gandalf는 ‘원조를 보내달라고 Gondor의 봉화들이 지펴진 거야. 전쟁이 점화된거야. 봐라, Amon Dîn에 불빛이, Eilenach에 불꽃이 있는데, 그것들이 빠르게 서쪽으로 Nardol, Erelas, Min-Rimmon, Calenhad, 그리고 Rohan의 경계에 있는 Halifirien으로 전해지는거야.’라고 대답하였다. 5편 3장에서 Rohan의 기수들은 Minas Tirith로 가는 도중에 Fenmarch를 지났고, ‘그 오른쪽에는 거대한 참나무숲이 Gondor의 경계 옆의 어두운 Halifirien의 그늘 아래에 놓인 구릉지대의 기슭 위로 올라갔다.반지들의 제왕에 있는 Gondor와 Rohan의 큰 축척의 지도를 보라.
32 그것은 두 왕국(Two Kingdoms)을 연결하는, Isen 여울에서 Isen을, Tharbad에서 Greyflood(회색범람)를 건넌 다음, 북쪽으로 Fornost까지 죽 가는 Númenor인들의 장대한 도로였는데, 그 외 다른 데에서는 남북 도로(North-South Road)라고 불린다. 여기를 보라.
33 이것은 Anglo-Saxon어 hálig-firgen의 철자를 현대화한 것인데, 유사하게 firgen-dæl이 Firien-dale로, firgen-wudu가 Firien Wood로 되었다. [저자의 주.] — Anglo-Saxon어 단어 firgen ‘산’의 g는 현대의 y로 발음하게 되었다.
34 Minas Ithil, Minas Anor 및 Orthanc.
35 그 외 다른 데에 있는 그 봉화대들의 이름들에 대한 주는 ‘반지 전쟁(War of the Ring)에서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던 그 완전한 봉화 체계는, 오백년 정도 전에 Rohirrim이 Calenardhon에서 정착했던 것보다 더 오래된 것일 수는 없는데, 그것의 주된 기능은 Gondor가 위험에 처했음을 Rohirrim에게 알려주는 것, 아니면 (보다 드문) 그 반대였던 것이었다’고 한다.
36 Eä of the Ring Rohirrim의 대형에 대한 주에 따르면, éored는 ‘정확히 고정된 수는 없지만, Rohan에서 그것은 전쟁을 위해 완전히 훈련된 기수들에게만 적용되었으니, 임기 동안 혹은 어떤 경우에는 종신으로 왕립군(King’s Host)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얼마이든 상당한 수가 교련 혹은 임무 중에 한 구성단위로 말을 타면 한 éored라 불렸다. 하지만 반지 전쟁 백 년 전인 Folcwine 왕 시절에 Rohirrim이 회복하고 그 병력들을 재편한 후에, 전투 대형에 있어 한 “완전한 éored”는 (대장을 포함하여) 적어도 120명 이상의 수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그리고 Mark의 기수들이 전원 소집한 것(Full Muster)의 백분의 일로 계산하였으며, 왕실(King’s Household)에 있는 자들은 포함하지 않았다. [두 개의 탑 III 2에서 Éomer가 데리고 Orc들을 추격한 éored는 120명의 기수들이었으니, Legolas는 그들이 저 멀리에 있을 때 105명을 세었고, Éomer는 열 다섯명을 Orc들과의 전투에서 잃었다고 말하였다.] 물론 그러한 부대가 모두 함께 Mark 밖의 전쟁으로 말달렸던 적은 없었으나, 만 명의 기수들의 원정대를 데리고 나가야 될거라는 Théoden의 주장이 (왕의 귀환 V 3) 타당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Folcwine의 시절 이래로 Rohirrim은 증가하였고, Saruman의 공격 이전에는 전원 소집시 아마 만 이천 명 이상의 기수들이 생겼을 것이므로, Rohan은 훈련된 방비군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서쪽의 전쟁에서의 손실, 서두른 소집, 그리고 북부와 동부로부터의 위협 때문에 Théoden은 육천 명 정도의 창수만 데리고 나갔을 뿐이나, 그래도 이것은 여전히 Eorl이 온 이래로 기록에 남은 Rohirrim의 가장 거대한 질주였다.
    기병대가 전원 소집된 것은 éoherë라 불렸다(주해 49를 보라). Rohan의 실제 언어는 모든 곳에서 Anglo-Saxon어 형식으로 번역되므로, 이들 단어들, 그리고 또한 Éothéod도 물론 그 형식이니(위의 주해 6을 보라), 그것들은 첫번째 요소로 eoh ‘말’을 함유한다. éored, éorod는 기록에 남아있는 Anglo-Saxon어 단어로, 그 두번째 요소는 rád ‘말달림’에서 파생되었는데, éoherë의 두번째 요소는 herë ‘부대, 군대’이다. Éothéodthéod ‘주민’ 혹은 ‘땅’이 들어가 있으며, 그 기수들 본인들과 그들의 땅 모두에 대해 사용되었다. (청년 Eorl이란 이름에 있는 Anglo-Saxon어 eorl은 아주 상관없는 단어이다.)
37 이것은 집사들의 시절에는 어느 엄숙한 성명에서든 늘 말하여졌으니, 다만 (제 십이대 통치 집사) Cirion의 시대 때에 그것은 상투어가 되어, 그것이 언젠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적었지만 말이다. [저자의 주.]
38 alfirin이란 Edoras 아래의 왕들의 고분들의 simbelmynë이며, 태고 시절(Elder Days)에 Tuor가 Gondolin의 거대한 협곡에서 본 uilos인데, 여기의 주해 27을 보라. Legolas가 Minas Tirith에서 ‘mallos와 alfirin의 황금빛 종들이 흔들린다 / Lebennin의 푸른 벌판에서.’라고 부른 운문(왕의 귀환 V 9)에서 alfirin이 이름 불리지만 명백히 다른 별개의 꽃에 대한 것이다.
39 Dol Amroth의 영주는 이 직함을 가졌다. 그것은 그의 선조들과 혈연관계에 있는 Elendil을 통해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그 파멸 이전에 Númenor로부터 항해해와 (Lórien의 마지막 왕 이후에 이름 붙어진) Dol Amroth의 높은 곶 위의 본거지와 더불어 Ringló와 Gilrain 하구들 사이의 Belfalas 땅에 정착한 신실한 자들의 일가였다. [저자의 주.] — 그 외 다른 데(여기)에서는, 그들의 가문의 전승에 따르면 Dol Amroth의 초대 영주는 Belfalas에 거주하는 Númenor인 Imrazôr와 Nimrodel의 동행인들 중 하나인 요정여인 Mithrellas의 아들 Galador(삼 시대 2004-2129년경)였다. 방금 인용한 저 주는 이 신실한 자들의 일가가 Númenor의 파멸 이전에 Dol Amroth 위의 본거지와 더불어 Belfalas에 정착하였음을 암시하는 듯 한데, 만일 그렇다면 이 두 진술은 그 제후들의 가계와 실로 그들이 거주한 곳이 Galador의 시절 이전인 이천 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라는, 그리고 (1981년에 Amroth가 익사한 이후인) Galador의 시대 때에야 Dol Amroth는 그리 이름 붙어졌던 것이므로 Galador가 Dol Amroth의 초대 영주로 불리는 것이라는 가정에서만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더 한층 어려운 문제는, 1944년의 전차몰이들에 대항한 전투에서 Gondor의 군대의 사령관으로서 (분명히 반지 전쟁 시대에 Dol Amroth의 영주인 Imrahil의 아버지 Adrahil의 선조인) Dol Amroth의 Adrahil이 존재한 것이나(여기), 이 먼저번의 Adrahil은 그 무렵에는 ‘Dol Amroth의’ 식으로 불리지는 않았다고 억단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것들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도,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이 설명들을 Dol Amroth의 영주들의 기원에 대한 두 개의 별개이며 독립적인 ‘전승들’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나로서는 덜 그럴듯해 보인다.
40 그 글자들은 Eä of the Ring(L · ND · L), 즉 모음 부호들이 없는 Elendil의 이름이었으니, 그가 휘장 및 그의 인장의 도안으로 사용하였다. [저자의 주.]
41 Amon Anwar는 사실 Limlight가 유입하는 곳에서부터 Tol Falas의 남쪽 갑까지 이은 선의 중앙에 가장 가까운 고지였는데, 그곳에서부터 Isen 여울까지의 거리는 그곳으로부터 Minas Tirith까지의 거리와 같았다. [저자의 주.]
42 다만 완벽하진 않은데, 그것은 고대의 어투로 되었고, Eorl이 아주 능숙하였던, Rohirrim이 사용하는 운문 형식과 고위 언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 — 본문에 공통어로 실린 Eorl의 맹세 이외에는 그것의 어떤 다른 판도 현존해 있지 않은 듯 하다.
43 vanda: 맹세, 공약, 엄숙한 약속. ter-maruva: ter ‘통하여’, mar- ‘머무르다, 정착 혹은 고정되다’인데, 미래시제임. Elenna·nóreo: Elenna·nórë ‘별방향(Starwards)이라 이름불리는 땅’이 alcar에 종속된 속격. alcar: ‘영광’. enyalien: en- ‘다시’, yal- ‘소환하다’로, 부정사 (혹은 동명사) 형으로는 en-yalië이며, 여기에서는 여격으로 ‘상기하기 위해’이지만 직접 목적어 alcar를 지배하며, 그리하여 ‘영광을 상기 혹은 “칭송”하는 것’임. vorondo: voronda ‘충의에 견실한, 맹세나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의 속격인데, ‘칭호’로 사용되거나 종종 이름의 한정사로 사용되는 형용사들은 이름 뒤에 놓이며, Quenya에서는 일상적이다시피한, 어형 변화를 할 수 있는 두 개의 이름들이 병렬된 경우에는 오직 마지막 것만이 어형 변화된다. [또 다른 글에서 그 형용사는 voronda와 같은 뜻을 가진 vórima의 속격 vórimo로 실려 있다.] voronwë: ‘견실, 충실, 신실’로 enyalien의 목적어.
    nai: ‘그리 된다면, 그리 되기를’인데, nai tiruvante는 ‘그들이 그것을 지켜준다면’, 즉 ‘그들이 그것을 지켜주기를’임 (-nte, 주어가 이전에 거론된 것이 아닐 때 3인칭 복수형의 변화형). i hára: ‘에 앉아있는 그들이’. mahalmassen: mahalma ‘옥좌’의 처소격 복수형. mi: ‘에 있는’. Númen: ‘서부’. i Eru i: ‘인 저 유일자’. : ‘이다’. tennoio: tenna ‘까지, 만큼’, oio ‘끝없는 기간’인데, tennoio는 ‘영원히’임.
[저자의 주.]
44 그리고 다시 Elessar 왕이 귀환하여 Eorl의 후손인 제십팔대 Rohirrim의 왕 Éomer와 같은 곳에서 결속을 다시 새로이 할 때까지 쓰이지 않았다. 오직 Númenor의 왕만이 가장 장엄하고 엄숙한 의식에서만 증인으로 Eru를 부르는 것이 적법하였다. 그 왕들의 가계는 그 파멸 때 숨진 Ar-Pharazôn에서 끝에 이르렀으나, Elendil Voronda는 제사대 왕 Tar-Elendil의 후손이었고, 왕들에 대한 반란에 참여하지 않고 파괴로부터 지켜진 신실한 자들의 적법한 군주로 여겨졌다. Cirion은 Elendil의 후손인 왕들의 집사로, Gondor에 관한 한 섭정으로서 그들의 전권을 가졌다 — 왕이 다시 오게 될 때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 그의 맹세는 그것을 들은 자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고, 그들을 경외심으로 채웠으며, (그 존엄한 무덤에 더하여) 그것만으로도 그것을 말한 장소를 신성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저자의 주.] — Cirion의 맹세에서도 나오는 Elendil의 이름 Voronda ‘신실한 자(Faithful)’는 이 주에서 처음에는, 그 맹세에서는 ‘신실, 견실’을 뜻하는 명사인 Voronwë로 쓰여져 있었다. 하지만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 ii)에서 Gondor의 초대 통치 집사 Mardil은 ‘Mardil Voronwë “견실한 자(Steadfast)’라 불리는데, 제일 시대에 Tuor를 Vinyamar에서부터 길잡이를 한 Gondolin의 요정은 Voronwë라 이름 불리며, Silmarillion의 색인에서 내가 마찬가지로 ‘견실한 자’로 번역하였다.
45 여기의 ‘Galadriel과 Celeborn의 역사’의 부록 C에 있는 첫 인용문을 보라.
46 이들 이름들은 Gondor의 관례에 따라 Sindarin으로 실려있으나, 그 중 많은 것들이 Éothéod가 더 옛날 이름들을 자기들의 말에 알맞게 개조하거나, 번역하거나, 그들이 직접 만들거나 하여, 그들에 의해 새롭게 이름 지어졌다. 반지들의 제왕의 글에서는 Rohirrim의 언어로 된 이름들이 주로 사용되어있다. 그러므로 Angren = Isen, Angrenost = Isengard, Fangorn (이것 역시 사용되어있음) = Entwood, Onodló = Entwash, Glanhír = Mering 개울 (둘 다 ‘경계선 개울’을 의미한다). [저자의 주.] — Limlight 강의 이름은 복잡하다. 이 점에 있어서 두 가지 판의 원문과 주가 있으니, 그 중 하나로부터는 그 Sindarin 이름은 Limlich로서, Rohan의 언어에서는 (Limlight로 ‘현대화되는’) Limliht로 고쳐진 듯 하다. 다른 (더 나중의) 판에서는 Limlich는 당혹스럽게도 Limliht로 원문에서 정정되어, 이것이 그 Sindarin형으로 되어있다. 그 외 다른 데(여기)에서는 이 강의 Sindarin 이름은 Limlaith로 실려 있다. 이 불확실함을 고려하여 나는 본문에 Limlight로 실었다. 그 원래 Sindarin의 이름이 무엇이 되었든, 적어도 그 Rohan형은 그것을 개조한 것이었지, 번역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뜻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나, 상술한 어느 것보다도 훨씬 일찍 쓰인 한 주에서는 Limlight라는 이름은 요정어 Limlint ‘빠른빛(swift-light)’을 부분 번역한 것이라고 하긴 하지만 말이)다. Entwash와 Mering 개울의 Sindarin 이름들은 오직 여기에서만 찾아지는데, Eynd, Ent들이라는 OnodrimOnodló와 비교하라 (반지들의 제왕, 부록 F, ‘다른 종족들에 대하여’).
47 Athrad Angren: Isen 여울의 Sindarin 이름이 Ethraid Engrin으로 실려 있는 여기를 보라. 그때 그 여울(들)의 이름은 단수와 복수형 모두 존재하였는 듯 하다.
48 그 외 다른 데에서는 그 숲은 늘 (Halifirien 숲의 단축형인) Firien 숲으로 불린다. Firienholt는 — Anglo-Saxon 시에 기록된 단어 (firgenholt) — 똑같이 ‘산 숲’을 의미한다. 주해 33을 보라.
49 그 진정한 형태는 RochandRochír-rim이며, Gondor의 기록들에서 그것들은 Rochand 혹은 RochanRochirrim으로 철자되었다. 그것들은 Sindarin roch ‘말’을 함유하며, Éothéod와 많은 Rohirrim의 인명들 속에 있는 éo-로 번역되었다 [주해 36을 보라]. Rochand에는 Sindarin 어미 -nd (-and, -end, -ond)가 더해졌는데, 그것은 보통 지역이나 지방의 이름들에 사용되었지만, -d는 일반적으로 구어에서는, 특히 Calenardhon, Ithilien, Lamedon 등 같이 긴 이름들에서는 빼먹었다. Rochirrim은 전시에 Éothéod의 기병대가 완전 소집한 것에 대해 그들이 사용한 용어 éo-herë를 본떠 만들었는데, 그것은 roch + ([Anglo-Saxon 단어] herë와는 완전히 관계없는) Sindarin hîr ‘군주, 주인’로 되었다. Eledhrim (Edhelrim) ‘모든 요정들’, Onodrim ‘Ent족’, Nogothrim ‘모든 난장이들, 난장이 민족’에서처럼, 민족의 이름들에서는 Sindarin rim ‘거대한 수, 무리’ (Quenya rimbë)가 집합적 복수형을 이루기 위해 보통 사용되었다. Rohirrim의 언어는 여기에서는 ch (Welsh어의 ch처럼 파찰음)로 표현되는 음을 함유하였고, 비록 그것은 단어 중간에서는 모음들 사이에 드물게 있긴 했어도,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공통어에는 있지 않아, (그것이 매우 빈번하게 있는) Sindarin을 발음할 때 Gondor의 백성들은, 배우지 못했다면, 단어 중간에서는 그것을 h로, 끝에서는 (올바른 Sindarin에서는 가장 힘을 줘야 하는 발음인) k로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반지들의 제왕에서 사용된 RohanRohirrim이라는 이름들이 생겨났다. [저자의 주.]
50 Eorl은 그 새하얀 귀부인의 호의의 표시를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여기를 보라.
51 Eilenaer는 Númenor인 이전 사람들 말(pre-Númenórean)에서 기원한 이름으로, 분명 Eilenach와 관련이 있다. [저자의 주.] — 봉화대들에 대한 한 주에 따르면, Eilenach는 ‘아마도 Sindarin, Númenor어(Númenórean), 혹은 공통어도 아닌 외래 이름이었을 것.... Eilenach와 Eilenaer 모두 주목할 만한 특징들이 있었다. Eilenach는 Drúadan 숲의 가장 높은 지점이었다. 그곳은 서부 멀리에서도 볼 수 있었고, 그 봉화대 시절에 그곳의 역할은 Amon Dîn의 경고를 전달하는 것이었으나, 그 날카로운 정상 위에는 공간이 적어, 그곳은 큰 봉홧불 용으로는 알맞지 않았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다음 봉화대의 이름이 Nardol “불언덕꼭대기(Fire-hilltop)”인데, 그곳은 높은 산마루의 끄트머리에 있었고, 그곳은 원래 Drúadan 숲의 일부였지만, 돌마차 계곡(Stonewain Valley)을 오르는 석공과 채석인들에 의해 나무들이 멀리까지 없애어졌다. Nardol에는 경비대 하나가 배치되었고, 그들은 또한 그 채석장들도 보호하였는데, 그곳은 연료가 잘 저장되어 위급시 거대한 화염을 붙일 수 있어, 맑은 밤 중에는 서쪽으로 멀리 백 이십 miles 정도 떨어진 마지막 봉화대(Halifirien)에서도 볼 수 있었다.
    같은 주에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Amon Dîn “조용한 언덕”이 아마 가장 오래된 것이었을 것이니, 그곳은 원래 Dagorlad에서 북 Ithilien으로 들어오는 통로와, 적들이 Cair Andros에서 혹은 그 부근에서 Anduin을 건너려는 어떤 시도도 계속 감시하도록, 그 봉화대를 볼 수 있는 Minas Tirith의 요새화된 전초지로서의 기능을 지녔다. 왜 그곳이 이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그곳이 나무가 심하게 우거진 Drúadan 숲 (Tawar-in-Drúedain)의 구릉 지대에서 튀어나와 고립되어, 사람, 짐승 혹은 새들은 거의 찾지 않는 바위 투성이 불모지인 독특한 언덕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2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 iv)에 따르면, Meneldil 이후 네번째 왕인 Ostoher의 시절에 Gondor가 동부에서 나온 야인들에게 처음으로 공격을 받게 되었으나, ‘그의 아들 Tarostar가 그들을 패퇴시키고 밖으로 몰아내어, Rómendacil “동부의 승리자(East-victor)”라는 이름을 받았다.
53 집사(Arandur ‘왕의 시종’) 직을 창설한 이도 또한 Rómendacil I였지만, 그는 전쟁에 나가거나 그 나라를 떠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높은 신뢰와 지혜를 가진,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은 남자로서, 왕에 의해 선택되었다. 그는 결코 왕실의 일원이 아니었다. [저자의 주.]
54 Mardil은 Gondor의 초대 통치 집사였다. 그는 마지막 왕 Eärnur의 집사였는데, 그는 2050년에 Minas Morgul에서 사라졌다. ‘Gondor에서는 그 신의없는 적이 그 왕을 덫으로 잡아, 그는 Minas Morgul에서 고문 속에 죽었다고 믿었으나, 그의 죽음에 대한 목격자들은 있지 않으므로, 훌륭한 집사(Good Steward) Mardil이 그의 이름으로 여러 세월 동안 Gondor를 통치하였다’ (반지들의 제왕, 부록 A (I, iv)). Eä of the Ring




eXTReMe Tracker CCL
Copyright © 2005–2017 of the Ring.
This is a non-profit site. Copyrights and trademarks for the books, films, articles,
and other promotional materials are held by their respective owners.
Eä of the Ring Eä of the Ring Eä of the Ring
Eä of the Ring
(i) 북부인과 전차몰이
(ii) Eorl의 질주
(iii) Cirion과 Eorl
(iv) Isildur의 전통
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