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Thrimidge 3, Hevensday

The Breaking of the Fellowship
(feat. “In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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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aster of the Gladden Fields Eä of the Ring


I

Gladden 벌판의 재난


Sauron의 몰락 이후 Elendil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Isildur는 Gondor로 돌아갔다. 거기서 그는 Arnor의 왕으로서 Elendilmir를 인수하고,1 북부와 남부의 전 Dúnedain에 대한 그의 최고 지배권을 공포하였는데, 그는 대단한 긍지와 활력의 남자였던 것이었다. 그는 일 년간 Gondor에 남아 그곳의 질서를 회복하고 그 경계를 정의하였으나,2 Arnor의 군대의 대부분은 Isen 여울에서 Fornost까지 Númenor인의(Númenórean) 도로를 통해 Eriador로 돌아갔다.
    그가 마침내 본인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겠다 느끼자, 그는 성급해져 Imladris를 먼저 가고 싶어하였는데, 그는 아내와 막내 아들을 거기에 남겨두었었고,3 게다가 Elrond의 의견이 급하게 필요하였던 것이었다. 그는 그러므로 Osgiliath에서부터 Anduin 골짜기 지대를 지나, Imladris로 내려가는 북부의 높은 오르막 협로인 Cirith Forn en Andrath까지4 북쪽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그 동맹 전쟁(War of the Alliance) 이전에 종종 그곳을 여행하였었고, Elrond와 함께 동쪽 Arnor의 남자들과 그 길을 따라 전쟁으로 행군하였으므로,5 그는 그 땅을 잘 알았다.
    그것은 긴 여정이지만, 유일한 다른 길인 서쪽으로, 다음에 북쪽으로 Arnor에 있는 도로 교차지점으로, 그 다음에 동쪽으로 Imladris까지 가는 것은 훨씬 더 멀었다.6 아마도 기수들에게는 빨랐겠지만, 그는 타기에 적당한 말들을 갖지 않았으며,7 아마도 옛적에 더 안전했겠지만, Sauron은 무찔렀고, 그 골짜기 지대의 사람들은 그 승리에 있어 그의 동맹자들이었다. 그는 날씨와 피곤 말고는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이것들은 중간대륙(Middle-earth)에서는 필요할 때 멀리 밖으로 보내지는 사람들은 견뎌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8
    그래서 훗날의 전설에서 전해지다시피, Isildur가 Ivanneth 초에 Osgiliath를 출발했을 때에는 제삼 시대(Third Age)의 두번째 해가 이울고 있었던 것이었으니,9 그는 북부에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Narbeleth 중순까지 사십 일 내에 Imladris에 도달하리라 예상하였다. 환한 아침에 저 다리의 동대문(Eastgate of the Bridge)에서 Meneldil이10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제 적당한 속력으로 가시고, 숙부님의 떠나시는 날의 태양이 숙부님의 길을 비추는 것을 그치지 않기를 비옵니다.
    Isildur와 함께 그의 세 아들 Elendur, Aratan, Ciryon,11 그리고 엄격하고 전쟁으로 단련된 Arnor의 남자들인, 이백 명의 기사와 군인들로 된 그의 호위대가 갔다. 그들이 Dagorlad를 지나, 북쪽으로 거대한 Greenwood(푸른숲) 남쪽의 넓고 텅 빈 땅으로 들어설 때까지의 그들의 여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스물째 날에, Ivanneth의 붉은 색과 금색의 희미한 빛을 멀리서 띄며 그들 앞의 고지대 위에 얹혀있는 저 숲이 멀리 보이는 곳으로 그들이 오자, 하늘은 우중충 해지고 비를 실은 어두운 바람이 Rhûn해로부터 다가왔다. 그 비는 나흘동안 지속되었으니, 그들이 Lórien과 Amon Lanc12 사이에 있는 저 골짜기 지대의 입구에 오자, Isildur는 빠른 물살로 불은 Anduin으로부터 방향을 돌려, 그 숲의 처마 부근에 나 있는 숲 요정들(Silvan Elves)의 고대의 소로들에 이르기 위해 그 동쪽 면의 가파른 비탈을 올라갔다.
    그래서 그들 여정의 서른째 날의 늦은 오후에 그들은 Gladden(창포) 벌판의13 북쪽 경계를 통과하며, Thranduil의 나라로 이르는 한 소로를 따라 행군하고 있었던 것이었으니,14 그때는 그랬다. 그 맑은 날은 이울고 있었는데, 저 멀리 산맥 위에서는 안개낀 태양에 의해 붉게 물든 구름들이 그쪽으로 끌려내려가듯이 모이고 있었으니, 그 계곡의 깊숙한 곳들은 벌써 회색 그늘 속에 있었다. Dúnedain은 노래하고 있었으니, 그날의 행군은 거의 그 끝에 이르렀고, Imladris까지의 먼 길의 세 배가 그들 뒤로 있던 것이었다. 그들의 오른쪽에는 그들 위로 저 숲이 가파른 비탈들의 꼭대기에 우뚝 서있었고, 그 아래의 계곡 바닥으로 내려가는 내리막 경사는 더 완만하였다.
    태양이 구름 속으로 뛰어들자 갑자기 그들은 Orc들의 끔찍한 고함소리들을 들었고, 전투함성을 외치며 저 숲에서 나와 비탈들을 타고 내려오는 그들을 보았다.15 그 어둑한 빛 속에서 그들의 수는 겨우 헤아릴 수 있었지만, Dúnedain이 수 배, 적어도 열 배나 되는 수에 압도된 것은 명백하였다. Isildur는 측면에서 포위되면 급할 때에는 닫힌 고리형이 될 때까지 양쪽 끝을 뒤로 구부릴 수 있는 이 열 방패벽인, thangail16 정렬하라고 명령했다. 만일 그 땅이 평평하거나 그 비탈이 그에게 유리했다면, 그는 Dúnedain과 그들의 무기들의 거대한 힘을 통해 Orc들을 가르며 나아가 그들이 당황하여 흩어지기를 바라며, 그의 일행을 dírnaith16 배열시켜 그들에게 돌격했을 것이나, 그것은 지금은 행할 수 없었다. 나쁜 전조의 그림자가 그의 마음에 드리워졌다.
    ‘비록 Sauron은 죽었는지 모르나, 그의 원한은 살아있구나.’ 그가 곁에 서있는 Elendur에게 말했다. ‘여기에 교활함과 흉계가 있구나! Moria와 Lórien은 이제 멀리 뒤에 있고, Thranduil은 앞으로 나흘을 행군해야 하니, 우리는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계산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 짐들을 나르고 있습니다.’ Elendur가 말했으니, 그는 아버지의 신뢰를 받았던 것이었다.
    Orc들은 이제 가까이로 모이고 있었다. Isildur는 그의 종자에게 돌아서서, ‘Ohtar,17 이것을 네게 맡긴다.’라고 말하고는, Elendil의 검, Narsil의 거대한 검집과 파편들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네가 찾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 그리고 모든 대가를 치러서, 나를 버린 겁쟁이로 남는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것이 노획되지 않도록 지켜라. 네 동행인을 데리고 달아나라! 가라! 명령이다!’ 그리하여 Ohtar는 무릎을 꿇어 그의 손에 입맞춤을 하였고, 그 두 젊은이들은 저 어두운 계곡 아래로 달아났다.18
    설령 예리한 눈을 가진 Orc들이 그들의 도주를 주시했더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강습을 준비하며 잠시 멈추었다. 먼저 그들은 화살을 빗발치게 날리고서는, 갑자기 거대한 외침과 함께 Isildur가 하려 했던 대로 하며, 그들의 최고의 전사들 한덩어리를 저들의 방패벽을 깨수부기를 기대하며 저 마지막 비탈 아래로 Dúnedain을 향해 내던졌다. 하지만 그것은 견고히 서있었다. 그 화살들은 Númenor인들의 갑옷에는 소용이 없었다. 그 거대한 인간들은 가장 키가 큰 Orc들 위로 높이 솟아올랐고, 그들의 검과 창들은 적들의 무기들보다 훨씬 멀리까지 닿았다. 그 맹습은 비틀거렸고, 깨졌으며, 거의 해를 입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저 방어자들을 남긴 채, 쓰러진 Orc 더미들을 뒤로하고 후퇴하였다.
    Isildur에게는 적들이 저 숲 쪽으로 철수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태양이 저 산맥 뒤로 내려가자, 그 붉은 테두리가 구름들로부터 희미하게 빛났는데, 밤이 곧 떨어질 것이었다. 그는 즉시 행군을 재개하라고, 그리고 Orc들에게 덜 유리할, 더 낮고 더 평탄한 지형 쪽으로 그들의 진로를 굽히라고 명령을 내렸다.19 비록 그들의 정찰병들이 밤새 그를 따라와 그의 야영지를 감시할지는 몰라도, 값 비싼 대가를 치룬 그 퇴각 이후 그들이 길을 내줬을 것이라고 아마도 그는 믿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먹이감이 돌아서서 깨물 수 있을 때 매우 종종 당황해하는 Orc들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판하였다. 그 공격에는 교활함 뿐만이 아니라, 사납고 무자비한 증오도 있었다. 저 산맥의 Orc들은 오래 전에 그곳의 협로들을 감시하기 위해 보내진 Barad-dûr의 무시무시한 부하들에 의해 강화되었고 지휘되었으며,20 비록 그들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이 년 전에 그의 검은 손으로부터 잘린 그 반지는 여전히 Sauron의 사악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 그의 모든 부하들에게 도와달라고 불렀다. Orc들이 다시 움직일 때는 Dúnedain이 일 mile도 못가서였다. 이번에는 그들은 돌격하지 않고, 그들의 전 병력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넓은 강가로 내려오다, 초승달 모양으로 휘더니, 곧 Dúnedain 주위를 빈틈 없는 고리 속에 포위하였다. 그들은 이제 조용하였고, 두려워하던 Númenor의 강철 활의 사정거리 밖에서 계속 있었으니,21 비록 햇빛은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고, Isildur는 위급한 경우를 위한 궁병이 너무나도 적었지만 말이다.22 그는 멈추었다.
    Dúnedain 가운데 가장 눈이 예리한 이가 Orc들이 은밀히 한걸음 한걸음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잠시 쉴 틈이 있었다. Elendur가 마치 생각에 잠긴 듯 어두이 홀로 서있는 아버지에게로 갔다. ‘Atarinya, 이 가증스런 피조물들을 으르고, 아버지께 복종하라고 저들에게 명령할 그 권능은 어찌 되었습니까?’ 그가 말했다. ‘그것은 그러면 소용이 없는 겁니까?
    ‘아아, 그렇다, senya. 나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만질 때의 고통이 매우 두렵다.23 그리고 나는 아직 그것을 내 의지에 굴복시킬 힘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지금 나 자신이 그렇다고 아는 것보다 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 내 긍지는 추락했다. 그것은 그 셋의 수호자들(Keepers of the Three)에게로 가야 해.
    그 순간 별안간 뿔나팔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Orc들이 사방에서 접근하여, 꺼리낌없이 포악하게 스스로를 Dúnedain에게 내던졌다. 밤이 왔고, 희망은 희미해졌다. 인간들은 쓰러지고 있었으니, 더 거대한 Orc 몇명이서 한번에 둘이 뛰어올라, 죽든 살든 그들의 몸무게로 한 Dúnedan을 덮쳐서, 다른 강한 갈고리발톱들이 그를 끌어내어 살해하였던 것이었다. Orc들은 이 교환에서 한 명에 다섯 명을 지불하였지만, 그것은 너무나 싼 값이었다. Ciryon이 이런 식으로 전사하였고, Aratan은 그를 구하려다 치명상을 입었다.
    아직 상처를 입지 않은 Elendur가 Isildur를 찾으려 하였다. 그는 그 강습이 가장 격렬한 동편에서 장병들을 재집결시키고 있었으니, 그 Orc들은 그가 이마에 두른 Elendilmir를 여태 두려워하여 그를 피하였던 것이었다. Elendur가 그의 어깨에 손을 대자 그는 Orc가 뒤에서 살며시 다가온거라 생각하고 사납게 돌아섰다.
    ‘왕이시여, Ciryon은 죽었고, Aratan은 죽어가고 있습니다.Elendur가 말했다. ‘전하의 마지막 고문이 전하께 조언을, 아니, 전하께서 Ohtar에게 명령하신 대로 명령을 드리니, 가십시오! 전하의 짐을 가지고 가셔서, 모든 대가를 치르셔서, 전하의 사람들과 저를 저버리는 대가를 치르셔서라도 그것을 그 수호자들에게로 가져가십시오!
    ‘왕의 아들아, 나는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 고통이 두려웠다.’ Isildur가 말했다. ‘더구나 네 허락 없이 갈 수는 없었다. 나를, 그리고 너에게 이 운명을 가져온 내 교만을 용서해다오.24 Elendur가 그에게 입맞춤을 하였다. ‘가십시오! 이제 가십시오!’ 그가 말했다.
    Isildur는 서쪽으로 돌아서서, 그의 목 둘레의 사슬줄로부터 전대 안에 매달린 그 반지를 꺼내들어, 고통의 외침과 함께 그것을 손가락에 끼었고, 다시는 중간대륙 위의 어느 눈을 통해서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서부의 Elendilmir는 꺼지지 않았고, 그것은 타오르는 별처럼 갑자기 붉고 분노에 찬 빛을 내뿜었다. 인간과 Orc들은 두려움에 길을 내줬는데, Isildur는 두건으로 머리를 눌러 쓰고 밤 속으로 사라졌다.25
    그 Dúnedain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오직 이것만이 후에 알려졌으니, 기절하여 쓰러진 사람들 속에 파묻혀있던 젊은 종자 하나만 제외하고, 머지 않아 그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뒤에 왕이, 그리고 그를 아는 모든이들이 예언했듯이 그의 강인함과 지혜, 그리고 교만없는 그의 존엄으로 Elendil의 자손 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이들 중 하나가 되었어야 했던, 그의 조부를 매우 닮았던 Elendur는 그렇게 숨졌다.26

    이제 Isildur에 대해서는 그의 마음은 거대한 고통과 고뇌 속에 있었지만, 그는 그 계곡 바닥에 이를 때까지 사냥개들에게 쫓기는 숫사슴처럼 달렸다고 전해진다. 거기에서 그는 추적 당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멈추어 섰으니, Orc들은 어둠 속에서도 냄새로 도망자를 쫓을 수 있었고, 눈은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의 앞으로 거칠고 길이 없는 드넓은 습지가, 헤매는 발들을 위한 수많은 함정들과 함께 어둠 속으로 펼쳐져 있었으므로, 그는 보다 신중하게 나아갔다.
Eä of the Ring    그래서 그는 한밤중에 드디어 Anduin의 둔덕에 이르러 지치게 되었으니, 그러한 지면에서는 Dúnedain도 낮에 멈추지 않고 행군하여도 더 빨리 이룰 수 없는 여정을 그가 치뤘던 것이었다.27 그 강은 그의 앞에서 어둡고 빠르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절망 속에 홀로 서있었다. 그러다 그는 급히 허리띠에 찬 단검을28 제외한 그의 모든 갑옷과 무기들을 벗어버리고, 그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그 나이의 Dúnedain에서도 조차 소수만이 그와 비등할 수 있는 힘과 인내력을 지닌 남자였지만, 그가 저 반대편 강가에 이를 가망은 거의 없었다. 그가 멀리 나아가기도 전에 그는 그 물살을 거슬러 거의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는 계속 Gladden 벌판의 수초들 쪽으로 떠밀려갔다. 그것들은 그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더 가까이에 있었고,29 그가 물살이 줄어들었음을 느끼며, 거의 다 건너게 되었을 때, 그는 거대한 골풀들 가운데에서 버둥거리며 잡초들을 꽉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거기서 갑자기 그는 반지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그것은 우연히, 아니면 기회를 잘 살려서 그의 손을 떠나 그가 결코 다시는 그것을 찾기를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처음에 그는 그 상실감에 압도되어 더 이상 버둥거리지 않아, 가라앉아 익사할 뻔 하였다. 하지만 그일이 벌어진 만큼 빠르게 그 기분은 지나갔다. 그 고통이 그를 떠났다. 거대한 짐이 없어졌다. 그의 발이 강바닥을 찾아내었고, 진흙 밖으로 몸을 일으켜 그는 서쪽 강가에 근접한, 습지에 생긴 작은 섬을 향해 갈대밭을 간신히 나아갔다. 거기에서 그는 물 밖으로 일어섰으니, 단지 한 필멸의 남자, 중간대륙의 황무지에서 길을 잃고 버려진 한 작은 피조물로서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경계하며 잠복 중인 밤눈 밝은 Orc들에게 그는 별처럼 날카로운 하나의 눈을 가진, 괴물 같은 공포의 그림자로서 어렴풋이 나타났다. 그들은 그것을 향해 독 묻은 화살들을 날리고는 달아났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으니, 무장하지 않은 Isildur는 심장과 목을 관통당했고, 비명도 없이 그는 물 속으로 도로 쓰러졌던 것이었다. 그의 시신의 흔적은 요정이나 인간에게 영원히 발견되지 못했다. 두번째, 그리고 세상의 그 시대에서는 마지막이었던 전 Dúnedain의 왕이자 Arnor와 Gondor의 군주 Isildur, 주인 없는 반지의 악의의 첫 희생자는 그렇게 사라졌다.

Isildur의 죽음에 대한 전설의 출처

그 사건의 목격자들이 있었다. Ohtar와 그의 동행인은 Narsil의 파편들을 지니고 탈출하였다. 그 이야기는 그 살육에서 살아남은 한 젊은이를 거론하는데, 그는 Elendur의 종자로 Estelmo라 이름 불렸으며, 마지막으로 쓰러진 자들 중 하나였지만, 곤봉에 맞아 기절하였지, 살해되지는 않아 Elendur의 시체 아래에서 산 채 발견되었다. 그는 Isildur와 Elendur가 이별할 때의 담화를 들었다. 그 현장에 너무 늦게 온 구조자들이 있었지만, Orc들을 방해하고 그 시신들을 토막내는 것을 막기에는 적시였으니, Thranduil에게 심부름꾼들을 통해 소식을 보내고, 자신들은 Orc들을 매복공격하기 위해 병력을 모은 약간의 숲속 인간들(Woodmen)이 있었던 것이었다 — 그 승리에도 불구 Orc들의 손실은 막대하여 큰 Orc들은 거의 모두 쓰러졌으므로, 그들은 강풍을 맞고 흩어졌는데, 그들은 그후 오랜 세월동안 다시는 그러한 공격을 꾀하지 않았다.
    Isildur의 마지막 시간들과 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은 짐작에 의한 것이지만, 근거는 충분하였다. 다른 증거들이 발견된 제사 시대(Fourth Age)의 Elessar의 치세 때까지는 그 완전한 형태로 된 전설은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때까지 알려져 있었던 것은, 첫째로 Isildur가 그 반지를 가졌고, 그 강 쪽으로 달아났었다는 것, 둘째로 그의 사슬갑옷, 투구, 방패와 커다란 검이 (하지만 그 외 다른 것은 없이) Gladden 벌판 위로 멀지 않은 둔덕 위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셋째로 그 Orc들이 전투를 피하여 그 강으로 달아날지 모르는 어느 누구라도 도중에서 붙잡기 위해 (Gladden 벌판의 경계에 가까운 하나를 포함한 그들의 야영지들의 흔적들이 발견되었으므로) 그 서쪽 둔덕에 활로 무장한 감시자들을 남겨두었었다는 것, 그리고 넷째로 만일 Isildur가 그 반지를 낀 채 그 서쪽 강가에 닿았다면, 그는 그 감시를 피했을 것이고, 그러면 그렇게 대단한 인내력을 지닌 억센 남자가 비틀거리며 쓰러지기 전에 Lórien이나 Moria로 오는 데 실패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에, Isildur와 그 반지는 따로따로 아니면 다함께 그 강에서 실종되었던게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랜 여정이긴 했지만, Dúnedain은 각자 허리띠에 있는 봉해진 전대 안에다 여러 날 동안 생명을 유지시켜 줄 감로주 작은 병 하나와 종이로 싼 여행용빵들을 넣어 가져갔다 — 그것은 실로 Eldar의 miruvor30 lembas는 아니었지만 그것들과 비슷한 것으로, Númenor의 의술과 다른 기예들은 효험이 있었고 아직 잊혀져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Isildur가 버린 소지품 중에는 허리띠나 전대는 없었다.
    오랜 후, 요정들의 세상(Elvish World)의 제삼 시대가 이울고 반지 전쟁(War of the Ring)이 다가왔을 때, Gladden 벌판의 가장자리 부근이자 서쪽 둔덕에 가까운 곳에서 가라앉았던 그 반지가 발견되었다는 게 Elrond 회의에서 드러났으니, 비록 Isildur의 시신의 흔적은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은 또한 그때 Saruman이 비밀리에 같은 지역을 조사해왔다는 것을 알아챘으나, 비록 그는 (오래 전에 채여가졌던) 그 반지는 찾아내지 못하긴 했지만, 그들은 그가 다른 무언가를 발견했을 것이라고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Elessar 왕이 Gondor에서 왕관을 쓰자, 그는 자신의 나라를 재정리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첫 임무들 중 하나는 Orthanc의 복원이었으니, 그는 Saruman으로부터 회복한 palantír를 거기에 다시 설치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러고서 그 탑의 모든 비밀들이 조사되었다. 가치있는 많은 것들이 발견되었으니, Théoden 왕의 쇠퇴기 동안에 뱀혓바닥(Wormtongue)의 중개로 Edoras로에서 빼돌린 Eorl의 보석 장신구들과 상속물들, 그리고 고분과 무덤들에서 샅샅이 빼돌린 보다 고대의 아름다운 다른 물건들 말이다. 타락한 Saruman은 용이 아니라 갈까마귀가 되었었다. 끝으로, Elessar가 난장이 Gimli의 도움을 얻지 못했다면 그들이 찾아낼 수도 열 수도 없었을 숨겨진 문 뒤에서 강철로 된 벽장이 드러났다. 아마 그것은 그 반지를 맞아들일 의도였던 듯 했으나, 그것은 거의 휑뎅그렁하였다. 높은 선반 위의 손궤 안에 두 물건이 놓여져 있었다. 하나는 가느다란 사슬줄에 부착된 금으로 된 작은 통이었는데, 비어 있고, 글자도 표장도 지니지 않았지만, 아무런 의심도 할 것 없이 그것은 이전에 Isildur의 목 둘레에서 그 반지를 담았었던 것이었다. 그 옆에는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오랫동안 한탄스러워 해왔던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 놓여 있었으니, mithril31로 된 머리띠 위에 놓인 요정의 수정의 새하얀 별, Silmarien으로부터 Elendil에게로 전해졌으며, 그를 통해 북왕국(North Kingdom)에서 왕실의 증표로써 받아들여졌던32 Elendilmir 그것이었다. Arnor에서 그들을 이은 모든 왕과 족장들이, 아래로는 Elessar 그 자신까지 Elendilmir를 지녔으나, 그것은 Imladris에서 Isildur의 아들 Valandil을 위해 요정 대장장이들이 만든 대단히 아름다운 보석 장신구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Isildur가 어둠 속으로 달아나고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을 때 잃어버렸던 그것의 고전적 가치도 권위도 갖지는 않았다.
    Elessar는 경건하게 그것을 들어 올렸고, 그가 북부에 돌아와 Arnor의 왕권을 완전히 다시 받들었을 때, Arwen이 그것을 그의 이마에 둘러주었고, 사람들은 그 찬란함을 보고는 깜짝 놀라 조용하였다. 하지만 Elessar는 다시는 그것을 위태롭게 하지 않았고, 북왕국에서 오직 축제일들 때에만 착용하였다. 반면, 왕의 복장을 입을 때에는 그가 물려받은 Elendilmir를 지녔다. ‘그리고 이것 또한 경건하게 대할 물건이며, 나의 가치보다도 위에 있으니, 앞서 마흔 분의 머리들께서 그것을 착용하셨소.’ 그는 말했다.33
    사람들이 이 비밀 저장고를 보다 더 면밀하게 검토하자, 그들은 당황하였다. 그들로서는 이 물건들은, 그리고 분명히 Elendilmir는 그것들이 Isildur가 가라앉았을 때 그의 몸에 있지 않았었다면 찾아질 수 없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으나, 만일 그것이 물살이 센 깊은 물 속에 있었다면 그것들은 장차 멀리 떠밀려갔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Isildur는 깊은 물줄기가 아니라 어깨 높이를 넘지 않는 얕은 물 속에서 쓰러졌던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비록 한 시대가 지나긴 했지만 왜 그의 유골들의 흔적들은 있지 않은 것인가? Saruman이 그것들을 찾아내었고, 그것들을 업신여기며 — 그의 아궁이들 중 하나에서 무례하게도 그것들을 태워버렸다면? 만일 그랬다면 그것은 괘씸한 짓이겠으나, 그것이 그의 최악의 짓은 아니었다.


주해

1 Elendilmir는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 iii)의 각주에서 그 이름이 나오니, Arnor의 왕들은 어떤 왕관도 쓰지 않았‘지만, 은제 머리띠로 그들의 이마에 둘러진 Elendil의 별, Elendilmir라는 단 하나의 새하얀 보석을 지녔다.’ 이 주는 저 글의 진행 중에 나오는 Elendil의 별에 대한 다른 거론들을 언급하는 것이다. 사실 이 이름의 보석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있었는데, 여기를 보라.
2 Eorl의 맹세와 Gondor의 Rohirrim과의 동맹을 끌어낸 사건들의 해설을 위한, 지금은 대부분 잃어버린 더 오래된 역사책들에 작성된 Cirion과 Eorl 이야기에서 전하여지듯이 말이다. [저자의 주.] — 여기를 보라.
3 Isildur의 막내 아들이 Arnor의 삼대 왕인 Valadil이었으니, Silmarillion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 295–6쪽을 보라.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 ii)에서는 그가 Imladris에서 태어났다고 진술한다.
4 이 협로는 오직 여기에서만 요정어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훨씬 후에 Rivendell(갈라진골)에서 난장이 Gimli가 ‘Beorn인들(Beornings)이 아니었다면 Dale(너른골)에서 Rivendell까지의 통행은 오래 전에 불가능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들은 용감한 사람들이고 그 높은 협로(High Pass)와 Carrock의 여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키지요.’ (반지 원정대 II 1)라며, 높은 협로라고 그것을 언급하였다. 이 협로에서 Thorin 참나무방패(Oakenshield)와 그의 일행이 Orc들에게 포획되었던 것이었다 (Hobbit 4장). Andrath는 ‘긴 오르막’을 의미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여기 주해 16을 보라.
5 Silmarillion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 295쪽에서 ‘[Isildur는] Gondor에서부터 북쪽으로 Elendil이 왔었던 그 길을 통해 행진하였다.’라는 것과 비교하라.
6 삼백 leagues 이상 인데다 [즉 Isildur가 탈 작정인 노선을 통해], 대개 인공 도로들이란 없었는데, 저 시절의 Númenor인의 도로들은 Calenardhon을 통과한 다음 Tharbad에서 Gwathló를 건너, 이어서 마지막에는 Fornost로 이르는 Gondor와 Arnor를 연결하는 대로와, 그리고 회색항구(Grey Havens)에서 Imladris까지의 동서 도로(East-West Road) 뿐이었다. 이들 도로들은 Amon Sûl(Weathertop(비바람꼭대기)) 서쪽의 한 지점[Bree]에서 교차하였는데, Númenor인의 도로 측정치들에 의하면 Osgiliath에서부터 삼백 구십 이 leagues요, 다음에 동쪽으로 Imladris까지 백 십육이니, 도합 오백 팔 leagues였다. [저자의 주.] — Númenor인의 길이 측정에 대해 여기의 부록을 보라.
7 Númenor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말들을 소유하였는데, 그들을 중히 여기었다 [여기의 ‘Númenor에 대한 기술문’을 보라]. 하지만 그들은 전쟁에서는 그들을 이용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모든 전쟁들은 해외에서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커다란 신장과 힘을 가졌고, 그들의 완전 무장한 군인들은 무거운 갑옷과 무기들을 지는데 익숙해 있었다. 중간대륙의 바닷가 위의 그들의 정착지들에서 그들은 말들을 얻고 사육하였지만, 운동과 오락에서 말고는 그들을 타는 데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전쟁에서는 급사들, 그리고 (대개 Númenor인 종족 출신이 아닌) 경무장한 궁병단들만이 그들을 이용하였다. 그 동맹 전쟁에서 그들이 이용한 말들은 큰 손실을 입었고, 소수만이 Osgiliath에서 이용이 가능하였다. [저자의 주.]
8 그들은 집 없는 지방에서 얼마간의 장비와 식량들이 필요하였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여행의 거의 끝에 있는 Thranduil의 나라에 다다를 때까지는 요정이나 인간들의 어떤 거주지도 찾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행진에서 각각의 장정은 (저 본문[여기]에서 거론되는 ‘위급용 전대(need-wallet)’ 이외에) 이틀 치의 양식을 휴대하였으며, 그 나머지와 다른 장비는 작고 튼튼한 말들을 통해 운반되었는데, 그들은 먼저 저 Greenwood의 남쪽과 동쪽에 있는 드넓은 평원 지대에서 야생으로 자유로이 발견되었었던 종 출신이라고 전해졌다. 그들은 길들여졌으나, 무거운 짐들은 (걷는 속도로) 운반하려고는 했지만, 어떤 사람도 타는 것을 허락치 않으려 하였다. 저들은 이들 중 열 마리만이 있었다. [저자의 주.]
9 Shire력에서 약간의 변화와 함께 여전히 유지된 Númenor인의 ‘왕력(King’s Reckoning)’에 따르면 Yavannië 5일. 그러므로 Yavannië (Ivanneth)는 우리네 9월인 Halimath에, Narbeleth는 우리네 10월에 해당하였다. (Narbeleth 15일까지의) 사십 일은 모두가 잘 간다면 충분하였다. 그 여정은 행군하는데 아마도 최소한 삼백 팔 leagues였을 것이나, 거대한 힘과 인내력을 가진 키 큰 남자들인 Dúnedain의 군인들은 완전 무장으로 하루에 팔 leagues를 ‘쉬이’ 이동하는데 익숙해 있었으니, 그들이 한 league 씩 여덟 차례로, 각 league의 끝에서의 짧은 휴식들(lár, Sindarin으로 daur, 원래는 정지나 중지를 의미)과 정오 즈음의 한 시간의 휴식을 취하며 갈 때 말이다. 이것이 약 열 시간 반의 ‘행군’을 이루었고, 그 중 여덟 시간을 그들은 걷고 있었다. 그들은 충분한 식량으로 이 속도를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서두르면 그들은 훨씬 더 빠르게 하루에 십 이 leagues를 (혹은 크게 급할 때에는 더 많이)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더 짧은 기간 동안이었다. 그 재난이 일어나던 날짜의 (그들이 접근하고 있던) Imladris의 위도에 있는 트인 지방에서는 낮이 최소한 열한 시간이었으나, 한겨울에는 여덟 시간이 못되었다. 하지만 평화시 북부에서는 Hithui (Hísimë, 11월)의 시작과 Nínui (Nénimë, 2월)의 끝 사이에는 긴 여행은 기도되지 않았다. [저자의 주.] — 중간대륙에서 사용되던 역법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은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D에 실려있다.
10 Meneldil은 Isildur의 조카이며, Barad-dûr 공성에서 전사한 Isildur의 아우 Anárion의 아들이었다. Isildur는 Meneldil을 Gondor의 왕으로 앉혔다. 그는 예의 바르지만 선견지명이 있는 남자여서, 그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사실 Isildur와 그의 아들들의 떠남을 아주 기뻐하였고, 북부에서의 업무들이 오랫동안 계속 그들을 여념이 없게 하기를 바라였다. [저자의 주.] — Elendil의 후계자들에 관한 미발표된 연대기에서는 Meneldil은 Anárion의 넷째 아이이며, 그는 제이 시대(Second Age)의 3318년에 태어났다고, 그리고 Númenor에서 태어난 마지막 사내라고 진술한다. 방금 인용한 주는 그의 인품에 대한 유일한 언급이다.
11 셋 모두 그 동맹 전쟁에서 싸웠으나, Aratan과 Ciryon은 Mordor 침공과 Barad-dûr 공성에서는 있지 않았으니, Sauron이 Gil-galad와 Elendil을 따돌리고 (후에 Cirith Ungol로 불린) Cirith Dúath를 뚫고 애써서 나아가, 그가 녹초가 되기에 앞서 Dúnedain에게 복수를 할까 걱정되어, Isildur가 그들을 그의 Minas Ithil 요새에 배치하기 위해 보냈던 것이었다. Isildur의 후계자이자 그가 친애하는 Elendur는 (Orodruin 위에서의 그 마지막 도전을 제외한) 그 전쟁 내내 아버지를 수행하여, 그는 Isildur의 완전한 신뢰를 받았다. [저자의 주.] — 바로 전의 주에서 거론된 연대기에서는 Isildur의 맏아들은 제이 시대의 3299년에 Númenor에서 태어났다고 진술한다 (Isildur 본인은 3209년에 태어났다).
12 ‘헐벗은 언덕(Naked Hill)’이라는 Amon Lanc는 그 Greenwood의 남동쪽 모퉁이에 있는 고지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었고, 그 정상에서는 어떤 나무도 자라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불리었다. 훗날 그곳이 Sauron이 깨어난 후의 그의 첫 본거지, Dol Guldur였다. [저자의 주.]
13 Gladden 벌판 (Loeg Ningloron). 태고 시절(Elder Days)에 숲 요정들이 처음 거기에 정착하였을 때의 그곳은, Anduin이 북부로부터 그 경로 중 가장 빠른 부분인 약 칠십 miles의 긴 내리막 경사를 타고 깊은 저지로 흘러 내려와, 거기서 저 산맥에서 급하게 내려오는 Gladden강 (Sîr Ninglor)의 급류와 섞이어 형성된 호수였다. 그 호수는 그 계곡의 동쪽 사면이 더 가팔라 Anduin의 서편으로 더 넓게 되어 있었으나, 그 동쪽은 아마 (그때도 여전히 울창하였던) 저 숲에서부터 내려오는 긴 비탈의 기슭까지 멀리 이르렀을 것이고, 그곳은 완만한 경사로 구별되던 갈대로 우거진 경계였을 것이니, Isildur가 따라가고 있는 그 소로 바로 아래 말이다. 그 호수는 거대한 늪지가 되어, 무수한 작은 섬들, 갈대와 골풀로 덮인 강바닥, 그리고 노란 붓꽃 군락들 사이를 그 강물이 구불구불 나아갔는데, 그것들은 사람보다 더 높이 자라며, 그 전 지역에, 그리고 저 산맥에서 오는 강의 하류에서 가장 빽빽이 자라 그 강에게 그들의 이름을 주었다. 그러나 그 늪지는 동쪽으로 물러나, 보다 낮은 비탈 기슭에서부터 이제는 풀과 작은 골풀들이 자라는 넓은 습지로, 사람들이 그 위로 걷곤 하였다. [저자의 주.]
14 그 동맹 전쟁에 앞서 오래 전, 자라나는 Sauron의 세력의 소문에 혼란스러워진 Anduin 동쪽의 숲 요정들의 왕 Oropher는, Lórien의 그들의 혈족에게는 강 건너인 Amon Lanc 주위의 그들의 고대 거처를 떠났다. 세 차례 그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제이 시대 말기에 그는 Emyn Duir 서쪽의 험한 골짜기지대에서 거주하였고, 그의 수많은 백성들은 고대 난장이로(Dwarf-Road) (Men-i-Naugrim)의 북쪽에서, 서쪽으로 Anduin까지 숲과 골짜기 지대에서 살며 돌아다녔다. 그는 그 동맹에 참가하였지만, Mordor의 관문에서의 강습에서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Thranduil은 Isildur의 행군 전 해에 숲요정 군대의 잔존자들과 함께 귀환하였다.
    Emyn Duir (암흑산맥(Dark Mountains))는 그 숲의 북동쪽에 있는 높은 구릉 지대로, 전나무들이 그 비탈들에서 촘촘히 자라 그렇게 불렸으나, 그것은 아직 불길한 이름이 아니었다. 훗날에 Sauron의 그림자가 거대한 Greenwood에 퍼지고, 그 이름이 Eryn Galen에서 (Mirkwood(어둠숲)으로 번역되는) Taur-nu-Fuin로 바뀌었을 때, Emyn Duir는 그의 가장 사악한 피조물들 중 대다수의 소굴이 되어, Mirkwood 산맥이라는 Emyn-nu-Fuin으로 불리었다.
[저자의 주.] — Oropher에 대해서는 ‘Galadriel과 Celeborn의 역사’의 부록 B를 보건데, 거기에 인용된 한 단락에서는 Oropher의 Greenwood 내에서의 북쪽으로의 후퇴는 Khazad-dûm의 난장이들과 Lórien에 있는 Celeborn과 Galadriel의 영향 범위 밖으로 이동하려는 그의 욕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Eä of the Ring    Mirkwood 산맥의 요정어 이름들은 그 외 다른 데에서는 찾아지지 않는다.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F (II)에서는 Mirkwood의 요정어 이름은 Taur-e-Ndaedelos ‘거대한 공포의 숲’인데, 여기에 실린 Taur-nu-Fuin ‘밤 아래의 숲’은, 태고 시절에 Beleriand의 북쪽 경계 상에 수목으로 뒤덮인 고지대인 Dorthonion의 더 나중의 이름이었다. Taur-nu-Fuin이라는 똑같은 이름을 Mirkwood와 Dorthonion에 적용한 것은, 그곳들에 대한 내 아버지의 그림들의 밀접한 관계로 보면 주목할 만하니, J. R. R. Tolkien의 그림들(Pictures by J. R. R. Tolkien), 1979년, 37번의 주를 보라. — 반지 전쟁의 끝 이후 Thranduil과 Celeborn은 Mirkwood을 한번 더 개명하여, 푸른잎들의 숲(Wood of Greenleaves), Eryn Lasgalen라고 그곳을 불렀다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
    난장이로라는 Men-i-NaugrimHobbit, 7장에서 기술되는 옛 숲 도로(Old Forest Road)이다. 지금 글의 이 부분에 대한 더 이른 초안에는 ‘Imladris의 협로에서부터 내려와 Anduin을 (저 동맹군의 통과를 위해 확장되고 강화되었던) 다리로 건너, 동쪽 계곡을 지나 Greenwood에 이르는 고대의 숲 도로(Forest Road). 더 내려간 지점에서는 어디에서도 Anduin에 다리를 놓을 수 없었으니, 그 숲 도로 아래로 수 mile에서 땅이 가파르게 꺼지고, 강물은 Gladden 벌판의 거대한 저지에 이를 때까지 매우 빠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 벌판 너머에서 그것은 다시 점차 빨라졌고, 이윽고 많은 개울들을 통해 불어나 거대한 범람이 되었으니, 그 중 보다 큰 것들인 Gladden (Sîr Ninglor), Silverlode(은빛수로) (Celebrant), Limlight (Limlaith)를 제외한 이름들은 잊혀져 있다.’고 언급한 주가 있다. Hobbit에서 그 숲 도로는 옛 여울(Old Ford)로 그 거대한 강을 횡단하며, 그 도강지에 예전에 다리가 있었다는 거론은 없다.
15 그 사건에 대한 별개의 전승이, 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 (Silmarillion 295쪽)에 실린 간결한 해설에서 ‘Isildur는 안개산맥에서 기다리며 있던 Orc 부대에게 괴멸되었는데, 그들은 Greenwood와 대하(Great River) 사이에 있는, Gladden 벌판이라는 Loeg Ningloron 부근의 그의 야영지에서 불시에 그에게 달려들었으니, 그는 모든 적들이 굴복되었다고 생각하며, 부주의하여 보초를 세우지 않았던 것이었다.’라고 나타난다.
16 thangail ‘방패방벽(shield-fence)’은 Elendil의 백성들의 통상적인 구어인 Sindarin으로 이 대형의 이름이었는데, 그 ‘공식’ 이름은 Quenya로 sandastan ‘방패장애물(shield-barrier)’이니, 원시의 thandā ‘방패’와 stama- ‘막다, 차단하다’에서 파생되었다. 그 Sindarin 단어는 별개의 두번째 요소인, 대못과 날카로운 말뚝으로 된 방벽 혹은 울타리 cail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원시형 keglē에 있는, 또한 Sindarin의 cai가 나온 원시 단어 kegyā ‘담’에서도 보이는(Mordor에 있는 Morgai와 비교하라), 어간 keg- ‘걸려 찢어지다, 가시를 달다’에서 파생되었다.
    dírnaith, Quenya nernehta ‘인간 창끝(man-spearhead)’은 한덩어리로 모이고는 있지만 아직 정렬되지 않은 적에게, 혹은 트인 지형 위에서 방어 대형을 짠 적에게 단거리로 달려나가는, 쐐기 모양의 대형이었다. Quenya nehte, Sindarin naith는 창끝, 삼각천, 쐐기, 좁은 곶 (어근 nek ‘좁은’)처럼, 한 끝이 점점 가늘어지는 어느 형성물 혹은 돌출부에든 적용되었는데, Celebrant와 Anduin의 실제 합류 지점이 작은 척도의 지도 상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좁고 더 뾰족한 두 강의 모퉁이 땅, Lórien의 Naith와 비교하라.
[저자의 주.]
17 Ohtar는 그 전설들 속에서 사용된 유일한 이름이나, 그것은 아마도 Isildur가 이 비극의 순간에 격식을 차려 그의 감정들을 숨기며 사용한 성명상의 호칭이었을 것이다. ohtar ‘전사, 병사’는 완전히 훈련받고 경험을 쌓긴 했지만, roquen ‘기사’ 계급에 들어갈 자격은 받지 못한 모두의 호칭이었다. 하지만 Ohtar는 Isildur에게 친애를 받았고, 그 자신의 혈족이었다. [저자의 주.]
18 더 이른 초안에서는 Isildur는 두 명의 동행인을 데려가라고 직접 명령하였다. 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 (Silmarillion 295쪽)와 반지 원정대 II 2에서는 ‘오직 세 명만이 저 산맥을 넘어 돌아왔다’라고 전해진다. 여기에 실린 본문에서는 그 제삼자는 그 전투에서 살아남은, Elendur의 종자 Estelmo였다는 암시가 있다 (여기를 보라).
19 그들은 Gladden 벌판의 깊은 저지를 통과하였으니, 그 너머의 (깊은 물길에서 흐르는) Anduin의 동편의 지형은 그 지세가 바뀌어 더 단단하고 더 건조하였다. 북쪽으로는 오르막이 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숲 도로와 Thranduil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갈 수록 Greenwood의 처마와 거의 같은 고도가 되었다. 이것을 Isildur는 잘 알았다. [저자의 주.]
20 저 동맹에 대해 매우 정통하였던 Sauron이 그가 할애할 수 있는 만큼의 붉은 눈(Red Eye)의 Orc 군단들을 내보내어, 저 산맥을 횡단하여 길을 단축하려고 꾀하는 어느 병력이든 괴롭히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을 만한 것을 하도록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결국에 Gil-galad의 주요 병력이 Isildur와 Arnor의 인간의 일부와 함께 Imladris와 Caradhras의 협로를 지나왔고, 그 Orc들은 당황하여 스스로를 숨겼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숫적으로 우세하면 어느 요정이나 인간 일행이든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조심스레 남아있었다. Thranduil을 그들은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으니, 그의 줄어든 군대 조차도 그들에게는 너무 훨씬 강했던 것이었으나, 그들은 다른 자들이 강기슭을 따라 잠복하는 동안, 대부분은 저 숲 속에서 숨어서 그들의 때를 기다렸다. Sauron은 Mordor에서 꽉 포위되었고, 그의 모든 병력들은 섬멸되었으므로, 그의 몰락에 대한 어떤 소식도 그들에게 이르렀을 것 같지는 않다. 설령 어느 소수가 탈출했더라도, 그들은 저 반지망령들과 함께 동부로 멀리 달아났다. 북부의 하잘 것 없는 이 작은 파견부대는 잊혀졌다. 아마도 그들은 Sauron이 승리를 거두었고, Thranduil의 전쟁흉터가 난 군대는 저 숲의 도피처에 숨으러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그들은 주요 전투들에서는 있지 못하긴 했지만, 그들은 대담해지고, 그들의 주인의 칭찬을 받기를 갈망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어느 누구라도 그의 회복을 볼 정도로 충분히 오래 살았을 지라도, 그들이 받을 것은 그의 칭찬이 아니었다. 어떤 고문도, 중간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포획물이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둔 저 졸렬한 바보들에 대한 그의 격노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것이니, Sauron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것의 노예들인 오직 저 아홉 명의 반지악령들에게만 알려져 있는 그 한반지(One Ring)에 대해서 비록 그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Isildur에 대한 그 강습의 포악성과 결의는 그 반지에서 얼마간 기인하였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그의 손을 떠난 지 거의 이 년을 넘지 않았고, 비록 그것은 빠르게 식고있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사악한 의지로 무거웠으며,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그가 재기하고 새 거주지를 얻었을 때 다시 그랬듯이) 모든 수단을 찾아내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 Orc 우두머리들은 Dúnedain을 섬멸하고 그들의 지도자를 포획하고자 하는 사나운 욕망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저 반지 전쟁이 Gladden 벌판의 재난 때 분실되었음이 판명되었다. [저자의 주.]
21 Númenor인들의 활에 대해서는 ‘Númenor에 대한 기술문’의 여기를 보라.
22 스무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런 위급한 경우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저자의 주.]
23 Isildur가 그가 Gondor에서 그의 마지막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그 반지에 관하여 썼으며, Gandalf가 ‘내가 그것을 처음 주웠을 때 그것은 뜨거웠으니, 붉은 석탄만큼 뜨거워 내 손은 눌었고, 그 고통에서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내가 이것을 쓰는 중에 그것은 식고, 크기는 줄어든 듯 한데...’(반지 원정대 II 2)라고 Rivendell의 Elrond 회의에 보고한, 그 두루마리의 말과 비교하라.
24 그 반지는 Orodruin의 불 속에서 파괴되어야 한다는 Elrond와 Círdan의 의견을 거슬러 그것을 간직하도록 그를 이끈 그 교만 (반지 원정대 II 2, 그리고 Silmarillion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 295쪽).
25 충분히 주목할 만한 이 구절의 의미는 Elendilmir의 빛은, 설령 한반지를 끼지 않고도 그 빛이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 반지를 꼈을 때 그것에 의해 부여되는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능력에 저항하는 듯이 보이나, Isildur가 두건으로 그의 머리를 덮자 그 빛은 꺼졌다.
26 훗날에 그를 회상한 (Elrond 같은) 이들은, 그 반지와 Sauron을 영원히 끝을 맺은 반지 전쟁의 승리자 Elessar 왕이 몸과 정신에서 그를 크게 닮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Dúnedain의 기록들에 따르면 Elessar는 Elendur의 형제 Valandil의 서른 여덟번째 항렬에 있는 자손이었다. 그가 복수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 [저자의 주.]
27 그 전장으로부터 칠 leagues 정도. 그가 달아났을 때에는 밤이 드리워졌는데, 그는 자정이나 그 무렵에 Anduin에 이르렀다. [저자의 주.]
28 이것은, 일 foot에서 일과 반 feet 정도 길이의, 끝이 뾰족하고 양날의 넓은 검신으로 된 찌르기용 단검인, eket라 불리는 종류였다. [저자의 주.]
29 마지막으로 서있던 곳은 그것들의 북쪽 경계 너머로 일 mile 정도였지만, 아마 그 어둠 속에서 그 땅의 내리막 경사가 그의 진로를 다소 남쪽으로 굽게 하였을 것이다. [저자의 주.]
30 Imladris의 감로주miruvor 한 병이 그 일행이 Rivendell에서 출발할 때 Elrond를 통해 Gandalf에게 주어졌는데 (반지 원정대 II 3), 또한 저 길은 계속 이어진다네(The Road Goes Ever On) 61쪽을 보라.
31 그 금속은 Númenor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저자의 주.] — ‘Elros의 가계’(여기)에서는 Númenor의 제십오대 통치자 Tar-Telemmaitë는 자신의 은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렇게 (즉 ‘은을 손에 든 이(silver-handed)’) 불렸으‘며, 그는 자기 부하들에게 늘 mithril을 찾아내라 명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Gandalf는 mithril은 ‘세상에서 홀로’ Moria에서만 찾아진다고 말하였다 (반지 원정대 II 4).
32 ‘Aldarion과 Erendis’ (여기)에서는 Erendis가 Aldarion이 중간대륙에서 그녀에게 가져온 금강석을 ‘은제 머리띠에 별처럼 박히게 하’였‘는데, 그녀의 부탁에 그는 그것을 그녀의 이마에 둘러주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유로 그녀는 별이마의 귀부인(Lady of the Star-brow), Tar-Elestirnë로 알려졌는데, ‘그리하여, 이마에 하얀 보석 장신구를 별처럼 쓰는 것이 이후 왕과 왕비들의 관례가 되었고, 그들은 왕관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의 주해 18). 이 전승은 Arnor의 왕실의 증표로써 이마 위에 얹힌 별 모양의 보석인 Elendilmir의 그것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으나, 원래의 Elendilmir 자체는 Silmarien 것이었으므로 그것은 (그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Aldarion이 중간대륙에서 Erendis의 보석 장신구를 가져오기 전에 Númenor에 존재하였고, 그것들이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
33 두번째 Elendilmir는 Valandil을 위해 만든 것이므로, 실제 수는 서른 여덟 명이었다 (위의 주해 26과 비교하라). —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의 연대 이야기(Tale of Years)에 있는 (Shire력 1436년에 실린) 제사 시대의 16년 항목에서는 Elessar 왕이 그의 친구들과 인사하러 Brandywine 다리에 왔을 때 그가 Dúnedain의 별을 Samwise 장관에게 주는 한편, 그의 딸 Elanor는 Arwen 왕비의 명예 시녀로 임명되었다고 진술한다. 이 기록을 근거로 Robert Foster 씨는 중간대륙으로의 완벽 안내서(The Complete Guide to Middle-earth)에서 ‘ [Elendil의] 별은 제사 시대 16년에 Elessar가 Sam Gamgee에게 그것을 줄 때까지 북왕국의 왕들의 이마에 착용되었다’라고 한다. 지금 단락이 명백하게 내포하는 것은 Elessar 왕이 Valandil을 위해 만든 Elendilmir를 무기한으로 보유하였다는 것인데, 나로서는 아무리 그가 Shire(고을)의 행정장관을 대단히 중히 여겼다 해도 그가 그에게 그런 선물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을 듯 하다. Elendilmir는 Elendil의 별, 북부의 별(Star of the North), 북왕국의 별(Star of the North-kingdom)이라는 몇몇 이름들로 불리는데, (오직 연대 이야기의 이 항목에서만 나오는) Dúnedain의 별이 Robert Foster의 안내서와 J.E.A. Tyler의 Tolkien 지침서(Tolkien Companion) 양책에서는 또 하나의 다른 이름이라고 억단한다. 나는 그것에 대한 다른 언급은 찾아내지 못했으나, 나로서는 그것은 아니며, Samwise 장관은 어떤 다른 (그리고 보다 적합한) 우대를 받은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부록

Númenor인의 길이 측정

Osgiliath에서 Imladris로 가는 다른 노선에 관한 ‘Gladden 벌판의 재난’의 저 단락(여기여기의 주해 6)과 연관된 주는 다음과 같이 나간다.

거리 측정단위들은 가능한 한 현대 용어들에 가깝게 변경되었다. ‘league’는 그것이 가장 긴 거리 측정치였기에 사용되었는데, (십진법인) Númenor인들의 계산법에서는 오천 rangar(최대 보폭)가 우리네 삼 miles에 매우 가까운 일 lár를 이루었다. 강행군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이 거리에 이른 이후에 잠시 멈추게 되어있었으므로, lár는 ‘중지’를 의미하였다 [위의 주해 9을 보라]. Númenor인들네 ranga는 그들의 큰 신장 덕에 우리네 yard보다 약간 더 길어, 대략 삼십 팔 inches였다. 그러므로 오천 rangar는 우리네 ‘league’인 5280 yards와 거의 정확하게 대등하였을 것이니, 그 등치관계가 정확하다고 가정하면 5277 yards 이 feet 사 inches이다. 이것은 역사책들 속에 실린 다양한 물건과 거리들의 길이들을 기초로 하여, 우리 시대의 그것들과 비교하여 정할 수는 없다. (손, 발, 손가락과 보폭이 길이 단위의 이름의 유래가 되었을 듯 하므로) Númenor인들의 거대한 신장에 대한 것을, 그리고 일상 용도와 정확한 계산을 위해 측정 체제를 고정하고 체계화함에 따라 생겨난 이들 평균치나 표준치의 변동에 대한 것을 모두 고려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이 rangar는 종종 ‘사람높이(man-high)’로 불렸으니, 삼십 팔 inches 비율로 하면 육 feet 사 inches의 평균 키가 나오나, 이것은 Dúnedain의 신장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는 후대에서였고, 또한 그들 가운데에서 남성의 신장을 관찰하여 얻은 평균치를 정밀하게 진술하여 나타낸 것이 아니라, 잘 알려진 단위인 ranga로 표현된 대충의 길이였다. (ranga는 종종 완전히 성장한 남자가 빠르지만 편하게 행진하는 동안의 뒷발 뒤꿈치에서 앞발 발가락까지 한 달음의 길이였다고 하는데, 완전한 한 달음은 ‘일과 반 ranga에 매우 가까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높이 이상이었던 과거의 거대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 전하여진다. Elendil은 ‘사람높이보다 거의 반 ranga 이상이었다’고 하나, 그는 그 파멸을 모면한 Númenor인들 모두 중에서 가장 키가 컸던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실로 일반적으로 장신의 Elendil로 알려져있었]다. 태고 시절의 Eldar 또한 매우 키가 컸었다. ‘이야기들 속에서 전해지는 Eldar의 모든 여성들 중 가장 키가 큰’ Galadriel은 사람높이라고 전해졌지만, ‘Dúnedain과 옛 사람들의 측정단위에 따르면’ 육 feet 사 inches 정도의 키를 가리킨다는 것이 주목된다.
    Rohirrim은 그들의 멀리 떨어진 조상 대에 더 넓게 퍼지고 더 무거운 체격의 사람들과 섞였으므로, 일반적으로 더 작았다. Éomer는 Aragorn과 거의 같은 키였다고 하나, 그와 Thengel 왕의 다른 자손들은 고귀한 Númenor인 혈통인 Gondor의 귀부인이자 Thengel의 아내 Morwen으로부터 이 특징을 (어떤 경우에는 더 어두운 머리색과 함께) 물려받아 Rohan의 표준치보다 더 컸다.

상술한 본문에 대한 주는 반지들의 제왕 (부록 A (II), ‘Mark의 왕들’)에 실린 것에 Morwen에 관한 어떤 정보를 덧붙인다.

그녀는 그곳에서 거주하였으므로 Lossarnach의 Morwen으로서 알려졌으나, 그녀는 그 땅의 주민의 일원은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꽃이 만발한 골짜기 지대에 대한 사랑 때문에 Belfalas에서 그곳으로 이사하였는데, 그는 그 봉토의 이전 제후의 후손이었으므로, Imrahil 제후의 친척이었다. 그의 Rohan의 Éomer와의 혈연관계는 비록 멀긴 하지만 Imrahil에게서 인정받았고, 대단한 우정이 그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Éomer는 Imlahil의 딸[Lothíriel]과 결혼하였고, 그들의 아들 금발의 Elfwine은 그의 어머니의 아버지를 이목을 끌 정도로 닮았다.

또 다른 주는 Celeborn에 대해, 그는 ‘Valinor의 한 Linda’ (즉, 그들 스스로의 이름이 가수들, Lindar인 Teleri의 하나)였다고, 그리고

그는 그의 이름이 (‘은빛의 키가 큰 자(silver-tall)’를) 가리켰듯이 키가 컸다고 그들을 통해 여겨졌으나, Teleri는 일반적으로 체격과 신장에서 Noldor보다 다소 작았다

고 논평한다. 이것이 Celeborn의 태생에 대한, 그리고 그의 이름의 의미에 대한 가장 최근의 판인데, 여기, 여기를 보라.

    또 다른 곳에 내 아버지는 Hobbit의 신장에 대해 Númenor인들의 그것과 관련하여, 그리고 반인들(Halflings)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 쓰셨다.

반지들의 제왕의 서문에 있는 [Hobbit들의 신장에 대한] 논평들은 후대의 그 종족의 잔존자들에 대한 언급들을 포함한 덕에 쓸데없이 모호하고 복잡하나, 반지들의 제왕에 관한 한 그것들은 이렇게 요약되니, Shire의 Hobbit들은 삼에서 사 feet 사이의 키였고, 그 이하는 전혀 없었으며 그 이상은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물론 그들 스스로를 반인들이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들에 대한 Númenor인들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분명 Númenor의 남자들과 비교하여 그들의 키를 언급한 것이었고, 그것이 주어졌을 때에는 대체로 정확하였다. 그것은 십일 세기에 Arnor의 통치자에게 알려지게 된 Harfoots에게 처음으로 [연대 이야기의 1050년 항목과 비교하라], 그 다음에는 나중에 Fallohides와 Stoors에게도 적용되었다. 북과 남왕국들은 그무렵에는, 그리고 실로 훨씬 나중 때까지는 변함없이 친밀한 연락을 취하였고, 서로가 다른 지역에서 있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 특히 모든 종류의 민족들의 이동에 대해 정통하였다. 그리하여, 알려져 있는 한, 비록 Peregrin Took 이전에 ‘반인’이 실제로 Gondor에 나타나지는 않긴 했지만, Arthedain 왕국 내에 있는 이 민족의 존재는 Gondor에 알려져 있었고, 그들은 반인 혹은 Sindarin으로 perian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Elrond 회의에서] Frodo가 Boromir의 주목을 끌자마자, 그는 그가 이 종족의 일원임을 인지하였다. 그는 아마 그때까지는 그들을 우리가 옛날 이야기들이나 민간전승이라고 부를게 뻔한 것들의 피조물들로 간주하였을 것이다. 사실상 Pippin이 Gondor에서 받아들여짐으로 인해 ‘반인들’이 그곳에서 기억이 나게 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듯 하다.

이 주의 또 다른 판에서는 반인들과 Númenor인들 모두의 신장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보다 많은 것들이 전해진다.

Dúnedain이 점차 작아진 것은, 중간대륙이 적합한 고향인 민족들을 통해 공유되는 통상적인 경향은 아니었으나, 서부에서 멀리 떨어진, 모든 필멸의 땅들 중 저 불사의 왕국(Undying Realm)에 가장 가까운, 그들의 고대의 땅의 손실에 기인하였다. 훨씬 나중에 Hobbit들이 점차 작아진 것은 그들의 사정과 삶의 방식의 변화에 기인하였는데, (큰 민족(Big Folk)인 인간들이 더욱 더 엄청나게 많아지게 되고, 보다 비옥하고 살기에 알맞는 땅들을 강탈하자) 그들은 숲과 황야에 있는 피난처로 내몰려, 도망다니는 은밀한 백성이 되었으니, 그들의 기예는 망각하고, 먹을 것을 찾는 데 열중하는 불안정한 삶을 살며, 눈에 보여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가난한 유랑 민족말이다. Eä of the 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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