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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tory of Galadriel and Celeborn
and of Amroth King of Lórien
Eä of the Ring


IV

Galadriel과 Celeborn의 역사

그리고 Lórien의 왕 Amroth에 대하여


중간대륙(Middle-earth)의 역사 중에 Galadriel과 Celeborn의 내용보다 더 의문들로 가득한 부분도 없으며, 까다로운 모순들이 ‘그 전승들 속에 가득 박혀’ 있다는 것을, 아니면 다른 관점에서 그 문제를 보아서, Galadriel의 역할과 중요성이 더디게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의 내용은 거듭되는 개조를 겪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애초에, 제일 시대(First Age) 말기 전에 Galadriel이 Beleriand에서부터 혼자 저 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가, Lórien의 Celeborn의 땅에서 그를 만났다는 것이 보다 먼저의 구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데, 이것은 미발표된 저술에서 명시적으로 진술되고, 같은 개념이 반지 원정대 II 7에서 Galadriel이 Frodo에게 이르는 말의 근저가 되니, 거기서 그녀는 Celeborn에 대해 ‘그이는 여명의 시절 이래로 서부에서 살아왔고,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그와 함께 살아왔으니, Nargothrond와 Gondolin의 함락 전에 나는 저 산맥을 넘어왔고, 세상의 시대들 내내 우리는 함께 기나긴 패배와 싸워왔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 구상에서는 Celeborn은 Nandorin 요정(즉, Cuiviénen로부터의 대장정(Great Journey) 중에 안개산맥(Misty Mountains)을 넘는 것을 거부했던 Teleri 중 하나)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반지들의 제왕부록 B에서는 그 내용의 후기 판이 나오니, 거기에서는 제이 시대(Second Age) 초기에 ‘Thingol의 친척 Celeborn이 Lune의 남쪽의 Lindon에서 당분간 살았는데, 그의 아내는 여성 요정들 중 가장 위대한 Galadriel이었다’고 진술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 길은 계속 이어진다네(The Road Goes Ever On) (1968년, 60쪽)의 주들에서는 Galadriel은 ‘그녀의 남편 Celeborn (Sindar 중 하나)과 함께 Eredluin의 산맥을 넘어, Eregion으로 갔다’고 한다.

    Silmarillion에는 Galadriel과 Celeborn의 Doriath에서의 만남에 대해, 그리고 그의 Thingol과의 혈연관계에 대해(115쪽), 그리고 제일 시대 말기 이후 중간대륙에 남았던 Eldar 가운데에서의 그들의 존재에 대해(254쪽) 거론이 있다.

    Galadriel이 중간대륙에 잔류함에 주어진 이유와 동기들은 다양하다. 저 길은 계속 이어진다네로부터 금방 인용한 구절은 명시적으로 ‘제일 시대 말기에 Morgoth의 타도 이후 그녀의 귀환에 금지령이 내려졌고, 그녀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당당히 대답하였다.’라고 말한다. 반지들의 제왕에서는 그런 명시적인 진술이 없으나, 1967년에 쓰인 편지에서 내 아버지는

그 망명자들은 귀환이 허락되었습니다 — 그 반역에서의 소수의 주요 관계자들을 제외하고 말인데, 그들 중 반지들의 제왕의 시대 때에는 Galadriel 만이 남았죠. Lórien에서 그녀의 애가를 부르던 때, 그녀는 세상이 지속되는 한 이것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비록 그녀에게 그 길은 닫혀 있지만, 그녀는 Frodo가 특별한 은총으로 Aman의 시야 안의 그 고독한 섬 Eressëa에서 죄를 씻는 (하지만 형벌이 아닌) 체류를 수여 받았으면 하는 소망 혹은 기도로 그녀의 애가를 끝맺지요. 그녀의 기도는 이루어졌죠 — 하지만 Sauron에 대항한 그녀의 공헌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그 반지가 제안되었을 때 그것을 받고 싶은 유혹을 그녀가 거절한데 대한 보상으로 그녀 개인의 금지령 또한 해제되었습니다. 그래서 끝에서 우리는 그녀가 배 타는 것을 보는 거죠.

라고 밝히셨다. 그 자체로 매우 현실적인 이 진술은, 그러나 Galadriel의 서부로의 귀환에 대한 금지령에 대한 구상이 수년 전에 앞서 ‘Lórien에게의 작별’ 장이 지어졌을 때에 있었다고 입증하지는 않는데, 나는 있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기운다(여기를 보라).
    분명히 저 길은 계속 이어진다네의 출판 이후에 쓰인, 매우 나중이며 주로 문헌적인 평론에서는 그 내용이 뚜렷이 구별되게 다르다.

Galadriel과 그녀의 형제 Finrod는 Indis의 둘째 아들 Finarfin의 자식들이었다. Finarfin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머니와 같은 족속 출신으로, Vanyar의 금발, 그들의 고귀하고 온화한 기질, 그리고 Valar에 대한 사랑을 가졌다. 그의 형제들의 불화와 Valar로부터의 반목에서 그는 가능한한 초연하게 잘 있었으며, 종종 Teleri 가운데에서 안정을 구하러 갔는데, 그는 그들의 언어를 알았다. 그는 Alqualondë의 Olwë 왕의 딸 Eärwen과 결혼하였고, 그리하여 그의 자식들은 Beleriand에 있는 Doriath의 Elu Thingol 왕과 혈족이었으니, 그가 Olwë의 형제여서였는데, 이 혈연관계는 저 망명에 가담하겠다던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고, 나중에 Beleriand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입증했다. Finrod는 비록 Noldor의 드높은 용기와 젊을 때에는 그들의 열성과 불안성을 가졌지만, 그의 아름다운 얼굴과 금발에 있어, 그리고 또한 고귀하고 관대한 마음에 있어서는 아버지를 닮았는데, 그는 또한 Telerin 어머니로부터 바다에 대한 사랑과 그가 결코 보지 못했던 먼 땅에 대한 꿈들도 가졌다. Galadriel은 아마도 Fëanor를 제외한 Noldor 중 가장 위대하였으니, 비록 그보다 더 지혜로웠고, 그녀의 지혜는 오랜 세월과 함께 증대하긴 했지만 말이다.
Eä of the Ring    그녀의 모명(mother-name)은 Nerwen(‘여장부(man-maiden)’)이었으며,1 그녀는 Noldor의 여성들의 한계 조차 넘어설 정도로 크게 자랐는데, 그녀는 신체, 정신 그리고 의지에 있어 강하여 Eldar의 석학과 운동선수들 모두에게 상대가 되었다. Eldar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아름답다고 여겨졌고, 그녀의 머리털은 경이로움이 비길 데 없다고 평가되었다.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선대 어머니 Indis의 머리털처럼 금빛이었으나, 그 금빛은 그녀의 어머니의 별처럼 반짝이는 은빛의 어떤 기억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더 윤택하고 더 환하였는데, Eldar는 두나무(Two Trees) Laurelin과 Telperion의 빛이 그녀의 머리털 안에 걸려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은 이 말이 처음으로 Fëanor에게 나중에 그의 손으로 Silmaril들로써 형태를 이루게 되는, 그 나무들의 빛을 가두고 혼합하는 생각을 주었다고 생각하였다. Fëanor는 Galadriel의 그 머리털을 놀라워하고 기뻐하며 바라보았던 것이었다. 그는 머리털을 세 번을 부탁하였지만, Galadriel은 한올의 머리카락 조차 그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Valinor의 Eldar 중 가장 위대한 이들 두 친족은 영원히 친구가 못되었다.
    Galadriel은 Valinor의 낙원에서 태어났으나, 축복의 왕국(Blessed Realm)의 계산으로는 그곳이 어둑해지기 훨씬 전은 아니었는데, 그때부터 그녀는 내면에 평온을 갖지 못했다. Noldor의 반목이 한창이던 그 시험 기간 때 그녀는 이리로 저리로 끌어당겨졌던 것이었다. 그녀는 Finarfin을 제외한 Finwë의 모든 자손들이 그러했듯, 긍지를 가졌고 굳세며 자기본위적이었는데, 그녀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그녀의 모든 혈족 중에서 형제 Finrod처럼, 그녀는 감독 없이 그녀가 하고자 하는 대로 명령할 수 있는, 그녀 소유가 될지 모를 먼 땅들과 영지들을 꿈꾸었다. 그렇지만 Vanyar의 고귀하고 관대한 영혼과, 그녀가 잊을 수 없는 Valar에 대한 경외감이 여전히 그녀 속에 더욱 깊숙이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이른 나이 때부터 다른 이들의 정신 속을 통찰하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자비와 이해로 판단하였고, 누구에게도 그녀의 호의를 베푸는 것을 보류하지 않았으니, Fëanor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의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어둠을 인지하였으니, 비록 그녀는 똑같은 사악의 그림자가 모든 Noldor의 정신 위에, 그리고 그녀 자신의 것 위에 드리워졌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Eä of the Ring    그래서 Valinor의 빛이 Noldor의 생각으로는 영원히 사라졌을 때 그녀는 그들에게 머물라고 명령한 Valar에 대한 반역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일단 그녀는 망명길에 발을 들여놓자 마음이 놓이려 하지 않았으나, Valar의 마지막 전갈을 물리치고 저 Mandos의 선고 하에 들게 되었다. 비록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혈족을 방어하는 데 있어 Fëanor와 격렬히 싸우긴 했지만, 저 무자비한 자들이 Teleri를 강습하고 그들의 배들을 강탈한 후에도 조차 그녀는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녀의 긍지는 용서를 구하는 패배한 애원자로서 귀환하고 싶지가 않았으나, 이제 그녀는 Fëanor가 이를 어느 땅으로든 그를 분노로 좇고자 하는,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를 훼방놓고자 하는 욕망으로 불탔다. 그녀가 태고 시절(Elder Days)의 말기 때 Morgoth의 최후의 타도 이후에 그를 대항해 싸웠던 모든 이들에 대한 Valar의 용서를 거절하여 중간대륙에 남았을 때에, 긍지는 여전히 그녀를 움직였다. 두 개의 긴 시대들이 더 지나서야 그녀는 젊은 시절에 욕망해왔던 모든 것, 그녀가 꿈꿔왔던 그 권능의 반지(Ring of Power)와 중간대륙의 지배권이 자신의 손에 왔을 때, 그녀의 지혜는 완전히 자라 그것을 거절하였고, 그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여 중간대륙에서 영원히 떠나게 된 것이었다.

이 마지막 문장은 Frodo가 Galadriel에게 한반지(One Ring)를 제안하였을 때에 (반지 원정대 II 7) ‘그리고 이제 드디어 그것이 오는군요. 당신은 그 반지를 흔쾌히 나에게 줄 작정이군요! 저 암흑의 군주(Dark Lord)를 대신하여 당신은 여왕을 세울 것입니다.’라던 Lothlórien에서의 장면과 밀접하게 관계있다.
    Silmarillion에서는, Valinor에서의 Noldor의 반역의 무렵에 Galadriel은

떠나기를 열망하였다. 그녀는 어떤 맹세도 하지 않았지만, 드넓고 감시 받지 않는 땅을 보고 자기 뜻대로 거기서 나라를 다스리기를 갈망하였으므로, 중간대륙에 관한 Fëanor의 말은 그녀의 마음속을 불타게 하였다.

라고 전한다(84쪽). 그러나 Fëanor의 반역에 가담할지에 대한 Finarfin의 자식들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서의 Thingol과의 혈연관계, Galadriel이 Fëanor를 처음부터 싫어하고 불신했던 것과 그녀가 그에게 미친 영향, 그리고 Alqualondë에서의 Noldor 자신들간의 싸움이라는, Silmarillion에는 어떤 흔적도 없는 몇몇 특징들이 지금 해설에서는 있다 — Angrod는 Menegroth에서 Thingol에게 Finarfin의 혈족은 Teleri의 학살에 대해 무죄라고만 주장했을 뿐이었다(Silmarillion 129쪽). 그러나 방금 인용한 저 구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Galadriel이 제일 시대 말기에Valar의 용서를 거절하였다는 명시적인 진술이다.
    이 평론의 나중에서는, 어머니에게서 Nerwen, 아버지에게서 Artanis(‘고귀한 여성’)라고 불리긴 했지만, 그녀의 Sindarin 이름으로 선택된 이름은 Galadriel이었으니, ‘그것이 그녀의 이름들 중 가장 아름다웠으며, 나중에 Beleriand에서 결혼한 그녀의 연인, Teleri의 Teleporno가 준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아래(여기)에서 논하다시피, Teleporno는 여기에서는 별개의 역사가 주어진 Celeborn인데, 그 이름 자체에 대해서는 여기의 부록 E를 보라.

    Noldor의 반역의 무렵에 Galadriel의 처신에 대해, 윤곽은 그렸지만 전혀 얘기된 적이 없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매우 늦고 부분적으로 읽기 어려운 주에서 나타나는데, 내 아버지의 생의 마지막 달에 적힌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한 당신의 마지막, 그리고 아마도 중간대륙과 Valinor에 관한 마지막 저술에서이다. 이 안에서 당신은 Valinor에서 벌써, 설령 Fëanor의 자질과는 다를 지라도 동등한 수준인 Galadriel의 지휘 재능을 강조하셨는데, 여기에서는 Fëanor의 반란에 가담하는 데서부터 그녀는 모든 방식에서 그와 대립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실로 그녀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Valinor에서 떠나 중간대륙의 드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했는데, ‘정신에서는 눈부시게, 행동에서는 재빠르게 그녀는 Valar가 Eldar에게 주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가르침 중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일찍 흡수하였고,’ Aman의 감독 속에 가두어져 있다고 느꼈던 것이었다. Galadriel의 이 욕망은 Manwë에게 알려진 듯 하고, 그는 그녀에게 금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떠나도록 정식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무엇을 할지 숙고하다, Galadriel의 생각들은 Teleri의 배들로 향했고, 그녀는 한 동안 Alqualondë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의 일족과 머물기 위해 갔다. 거기서 그녀는 Celeborn을 만났으니, 여기서 그는 다시 Alqualondë의 Olwë의 손자이자 Telerin 왕자이며, 그러므로 그녀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함께 그들은 배를 건조하여 그것으로 중간대륙으로 항해할 계획을 세웠는데, Melkor가 Valmar로부터 달아나 Ungoliant와 함께 돌아가면서 그 나무들의 빛을 파괴하였을 때는 그들이 Valar에게서 그들의 모험에 대해 막 허가를 구하려던 참이었다. Valinor의 암흑화에 뒤이은 Fëanor의 반란에서 Galadriel은 어떤 관여도 없었으니, 실로 그녀는 Celeborn과 함께 Alqualondë의 방어에서 Noldor의 강습에 대항하여 영웅적으로 싸웠고, Celeborn의 배는 그들로부터 구해졌다. 이제 Valinor에 대해 절망하며 Fëanor의 폭력과 잔인함에 공포에 휩싸인 Galadriel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시간에는 보류되었을, 그러나 그것 자체로 그녀의 욕망을 정당화해줬을 Manwë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은 채 저 어둠 속으로 출항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모든 떠남에 내려진 그 금지령 하에 들게 되었고, Valinor는 그녀의 귀환에 대해 폐쇄되었다. 하지만 Celeborn과 함께 그녀는 중간대륙에 Fëanor보다 다소 일찍 도착하여, Círdan이 영주인 항구에 입항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Elwë (Thingol)의 혈족으로서 기쁨으로 환영받았다. 뒤이은 세월 속에서 그들은 Valar의 금지령 하에서 그들의 원조 없이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Angband에 대항한 전쟁에는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의견은 Beleriand에서 철수하여 (그들이 Morgoth가 증원군을 끌어낼까 두려워하던) 동부에서 그 지역의 암흑 요정(Dark Elves) 및 인간들과 친구가 되고 가르치며 세력을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은 Beleriand의 요정들 사이에 받아들여질 가망이 없어, Galadriel과 Celeborn은 제일 시대 말기 전에 Ered Lindon 너머로 떠났는데, 그들은 서부로의 귀환에 대한 Valar의 허가를 받았을 때 그것을 거절하였다.
    심지어 Galadriel에게 Aman에서 (Celeborn과의) 개별적인 떠남을 주는 정도로까지, Fëanor의 반역에 연관된 모든 것에서 그녀를 빼내는 이 내용은 그 외 다른 데에서 전하는 모든 것과 완전히 모순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Valinor에서의 Galadriel의 불복종의 정확한 본질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간대륙에서의 그녀의 지위와 권능에 관한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적’인 고려에 기인한다. 그것이 Silmarillion의 글에 많은 변경을 필요로 했을 것이나, 내 아버지는 필시 그리 하실 작정이셨다는 것은 분명하다. Galadriel은 그녀를 만들기 오래 전에 존재하였던 Noldor의 반역과 도피의 본래 내용에서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또한 물론 Silmarillon이 발표되지 않았었으므로, 제일 시대의 내용들 속에서의 그녀의 등장 이후 그녀의 행동들은 근본적으로 여전히 변형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책은 출판되어있다시피 완성된 글을 따라 구성되었고, 나는 단지 기획되기만 한 교정들은 참작할 수 없었다.
    또 한편, Celeborn을 Aman의 Telerin 요정으로 만드는 것은 Silmarillion에서의 진술들뿐만 아니라, Celeborn은 Beleriand의 Sindarin 요정이라는, 저 길은 계속 이어진다네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에서 이미 인용된 것들(여기)에도 모순된다. 그의 역사에서 왜 이 근본적인 변경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그것은 반역한 Noldor의 무리들과는 구별되는 Galadriel의 Aman에서의 떠남에 대한 새로운 화술적 요소에 기인한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으나, Galadriel이 Fëanor의 반란과 Valinor로부터의 행진에 참여하였던, 그리고 Celeborn이 어떻게 중간대륙으로 왔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예시도 없는, 여기에 인용된 본문에서 Celeborn은 이미 Telerin 요정으로 변형되었다.
    Silmarillion, 저 길은 계속 이어진다네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에서의 진술들이 언급하는, (그 금지령과 용서에 대한 의문과는 별개로) 보다 이전의 내용은 아주 명백하니, Noldor의 두번째 무리의 지도자들중 하나로서 중간대륙으로 온 Galadriel은 Doriath에서 Celeborn을 만나 후에 그와 결혼하였는데, 그는 Thingol의 형제 Elmo의 손자였다 — 그는 Elwë (Thingol)와 Olwë의 남동생이었고, ‘그가 함께 남은 Elwë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그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전해지는 것이 없는 그림자에 싸인 인물이다. (Elmo의 아들은 Galadhon으로 불렸고, 그의 아들들이 Celeborn과 Galathil인데, Galathil은 Thingol의 후계자 Dior와 결혼하였고 Elwing의 어머니였던 Nimloth의 아버지였다. 이 계보에 의해 Celeborn은 Alqualondë의 Olwë의 손녀인 Galadriel의 친척이었지만, 그가 Olwë의 손자로 되었던 저것에서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Celeborn과 Galadriel이 Doriath의 파괴 때 있었다는 것 (어느 곳에서는 Celeborn은 ‘Doriath의 약탈을 모면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Elwing이 Silmaril을 갖고 Sirion 항구로 탈출하는 것을 도왔을 것이다는 것은 자연스런 가정이다 — 하지만 이것은 어디에도 진술되어있지 않다. Celeborn은 Lune의 남쪽의 Lindon에서 당분간 사는 것으로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에서 거론되나,2 제이 시대 초기에 그들은 Eriador로 그 산맥을 넘어갔다. 내 아버지의 저술 중에서 (소위) 같은 양상에 있는, 그들의 뒤이어 일어나는 역사는 여기 다음에 오는 짧은 글에서 전한다.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

이 제목을 지닌 원문은 매우 거칠게 지어진 짧고 신속한 약술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제이 시대 1701년의 Eriador로부터의 Sauron의 패배와 추방까지의 중간대륙의 서부에서의 사건들에 대한 거의 유일한 화술적인 출처이다. 이것 이외의 다른 것은 연대 이야기(Tale of Years)에 있는 간결하고 드문드문 나오는 항목들, 그리고 (Silmarillion에서 발표된) 권능의 반지들과 제삼 시대에 대하여에 있는 훨씬 더 일반화되고 선택적인 해설에 거의 미치지 못한다. 반지들의 제왕에 대한 언급이 거기에 있다는 것에서, 그리고 Galadriel이 Finarfin의 딸이며, Finrod Felagund의 누이로 불리는 사실에서 (이것들은 그 개정판에서 소개된, 저들 왕자들의 나중의 이름들이기 때문인데, 여기의 주해 20을 보라), 이 지금 원문은 그 책의 출판 이후에 지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 원문은 많이 교정되어, 무엇이 그 원고가 작성된 시간에 속하고, 무엇이 막연하게 나중인지 늘 알아보기는 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Amroth를 Galadriel과 Celeborn의 아들로 만드는 그에 대한 저들 언급들의 경우이나, 이 언급들이 언제 삽입되었든, 나는 이것은 반지들의 제왕의 저술보다 더 나중의 새로운 구축물임이 사실상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쓰여졌을 때 그가 그들의 아들로 생각되었다면, 그 사실은 확실히 거론되었을 것이다.
    Galadriel의 서부로의 귀환에 대한 금지령에 대해 이 원문에서는 아무 거론도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해설의 처음 구절에서부터 그러한 개념은 있지 않았던 듯 하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데, 한편 이 글의 더 나중에서는 Eriador에서의 Sauron의 패배 이후의 Galadriel의 중간대륙에서의 잔류는, 그가 아직 최종적으로 정복되지 않은 한 떠나는 것은 자신의 본분이 아니라는 그녀의 의식 탓이라고 한다. 이것이 그 금지령에 대한 내용이 반지들의 제왕의 저술보다 나중이었다는 위에서 (여기) 표명된 그 (주저스러운) 고찰의 주요 근거인데, 또한 여기에 실린 Elessar에 대한 내용에서 있는 구절과 비교하라.
    여기 다음에 오는 것은, 네모진 괄호들로 예시된 다소 점재해 있는 논평들과 함께, 이 원문으로부터 다시 전하는 것이다.

*    *    *

Eä of the Ring    Galadriel은 Finarfin의 딸이자 Finrod Felagund의 누이였다. Olwë의 딸인 그녀의 어머니 Eärwen은 Telerin이자 Thingol의 조카딸이었으므로, 그리고 Finarfin의 사람들은 Alqualondë의 동족학살에는 어떤 관여도 없었으므로, 그녀는 Doriath에서 환영받았는데, 그녀는 Melian의 친구가 되었다. Doriath에서 그녀는 Thingol의 형제인 Elmo의 손자 Celeborn을 만났다. 중간대륙을 떠나지 않으려는 Celeborn에 대한 사랑을 위해 (그리고 그녀는 거기서 모험을 하는데 열망하는 이들 중 하나이었으므로, 아마도 그녀 자신에 대한 어떤 긍지와 함께) 그녀는 Melkor의 파멸 때 서부로 가지 않고, Celeborn과 함께 Ered Lindon을 가로질러 Eriador로 들어갔다. 그들이 그 지역에 들어갔을 때, 많은 Noldor가 그들의 수행원에 있었고 회색요정(Grey-elves) 및 녹색요정들(Green-elves)도 함께 있었는데, 한 동안 그들은 Nenuial 호수 (Shire(고을) 북쪽의 Evendim(해질녘)) 주변 지방에서 살았다. Celeborn과 Galadriel은, Ered Lindon를 넘어 Ossiriand로 내려가 본적이 전혀 없던 Nandorin 태생의 유랑 일행들을 포함한 [Silmarillion 94쪽을 보라], Eriador에 있는 Eldar의 귀인과 귀부인(Lord and Lady)으로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Nenuial 근처에서 체류하는 동안, 350년과 400년 사이의 어느 때에 그들의 아들 Amroth가 태어났다. [Celebrían의 출생의 때와 장소가 여기서인지 아니면 나중에 Eregion에서인지, 혹은 더욱 나중에 Lórien에서인지는 명확히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Galadriel은 Melkor가 감금되었던 고대 시절에서처럼 [Silmarillion 51쪽을 보라], Sauron이 뒤에 남았다는 것을 알아채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Sauron은 아직까지는 어떤 하나의 이름을 갖지 않았었고, 그의 작전들이 Melkor의 최고의 부하였던 단 하나의 사악한 영혼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는 인지되지 않았었으므로, 그녀는 세상에는 널리 목적을 제어하는 악의가 있다고, 그리고 그것은 Eriador와 안개산맥 너머, 더 멀리 동부의 한 근원으로부터 비롯되는 듯 하다고 인지하였다.
    그러므로 Celeborn과 Galadriel은 제이 시대 약 700년에 동쪽으로 가, Eregion에 (결코 단독이 아니라 주되다는 의미의) Noldorin 나라를 수립하였다. Galadriel이 Khazad-dûm (Moria)의 난장이들에 대해 알므로 그녀가 그곳을 선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Nogrod와 Belegost의 아주 고대의 대저택들이 있었던 Ered Lindon의 동쪽 면에는 약간의 난장이들이 있었고 늘 잔류하였으니3 — Nenuial에서 멀지는 않았었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세의 대부분을 Khazad-dûm으로 옮겨놓았다. Celeborn은 (그가 Lothlórien에서 Gimli에게 드러냈듯이) 어느 종족의 난장이들도 좋아하지 않았고, Doriath의 멸망에서의 그들의 책임 때문에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으나, 그 강습에 가담했던 것은 Nogrod의 군대 뿐이었고, 그들은 Sarn Athrad 전투에서 섬멸되었다 [Silmarillion 233–5쪽]. Belegost의 난장이들은 그 소산물로 인한 그 참사와 공포에 경악으로 가득 찼고, 이것은 그들이 동쪽을 향해 Khazad-dûm으로 떠나는 것을 재촉하였다.4 그리하여 Moria의 난장이들은 Doriath의 파괴에 대해 무죄였으며 요정들에게 적의를 가지지 않았다고 추정해도 될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서든, Galadriel은 이것에서 Celeborn보다 더 선견지명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들의 방법과 그들의 척도로 Morgoth에 대항하는 모든 민족들의 연합을 통해서 말고는, 중간대륙은 그가 뒤에 남겨둔 ‘악의 잔재’로부터 구해질 수 없다고 처음부터 인지하였다. 또한 그녀는 지휘관의 눈으로 난장이들을 바라보며, 그들 속에서 Orc들과 대항시킬 가장 뛰어난 전사들을 보았다. 게다가 Galadriel은 Noldo였고, 그녀는 그들의 정신과 그들의 손의 기교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에 자연스런 호의를, Eldar 중 다수 가운데에서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호의를 가졌으니, 난장이들은 ‘Aulë의 자식들’이었고, 다른 Noldor처럼 Galadriel은 Valinor에서 Aulë와 Yavanna의 문하생이었던 것이었다.
Eä of the Ring    Galadriel과 Celeborn은 그들 일행 속에 Celebrimbor라 이름 불리는 Noldorin 장인이 있었다. [그는 여기서 Gondolin의 생존자들 중 하나였고, Turgon의 가장 위대한 명공들 가운데에 있었다고 전해지나, 이 원문은 그를 Fëanor의 자손으로 만든 더 나중의 내용으로 교정되니, (개정판에만 있는)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에서 거론되고, Silmarillion(176, 286쪽)에서 더 충분히 자세하게 전해지듯이 말인데, 거기에서 그는 Fëanor의 다섯째 아들인 Curufin의 아들이었는데 Celegorn과 Curufin이 쫓겨날 때 아버지와 소원해져 Nargothrond에 잔류했다고 한다.] Celebrimbor는 ‘기교에 거의 “난장이적인” 집념이 있었는데,’ 그는 곧 Eregion의 주요한 명공이 되어, Khazad-dûm의 난장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니, 저들 중에서 그의 가장 위대한 친구는 Narvi였다. [Gandalf는 Moria의 서대문에 있는 그 명각에 있는 말 Im Narvi hain echant: Celebrimbor o Eregion teithant i thiw hin, ‘나, Narvi가 그것들을 만들었다. Hollin(호랑가시나무땅)의 Celebrimbor가 이 기호들을 그렸다.’를 읽었다. 반지 원정대 II 4] 요정과 난장이 모두 이 교제로부터 어느 쪽이든 혼자서 해냈을 것보다 거대한 이익을 얻으니, Eregion은 훨씬 더 강해지게 되었고, Khazad-dûm은 훨씬 더 아름답게 되었다.
    [Eregion의 기원에 대한 이 해설은 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Silmarillon 286쪽)에서 전하는 것에 부합하지만, 거기에도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에 있는 간결한 언급들에도 Galadriel과 Celeborn의 존재에 대해 아무 거론이 없는데, 실로 (다시 개정판에만 있는) 후자에서는 Celebrimbor가 Eregion의 군주라고 불린다.]
    Eregion의 주요한 도시 Ost-in-Edhil의 건설은 [연대 이야기에서 Noldor에 의한 Eregion의 건립을 위해 주어진 연도인] 제이 시대 약 750년에 시작되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소식은 Sauron의 귀에 이르러, Lindon과 남쪽으로 더 멀리 해안지대에서의 Númenor인들(Númenóreans)의 도래와 그들의 Gil-galad와의 우정에 관해 느끼던 그 두려움들을 증가시켰는데, 그는 또한 이제는 Harad까지 멀리 내려가 자신의 선박들을 항구로 데리고 가 위대한 조선가가 된, Númenor의 왕 Tar-Meneldur의 아들인 Aldarion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므로 Sauron은 한동안 홀로 Eriador를 떠나, Númenor인의 상륙의 위협에 대한 역으로써의 요새로, 훗날 불렸던 대로, Mordor의 땅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연대 이야기에서는 1000년경으로 적혀있다]. 그는 스스로 안전해졌다고 느꼈을 때, Eriador로 밀사들을 보내었고, 마침내 제이 시대 약 1200년에는 그가 꾀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띠고 몸소 왔다.
    하지만 그동안에 Galadriel과 Celeborn의 세력은 증대하였고, 이에 있어 Moria의 난장이들과의 우정을 통해 도움을 얻은 Galadriel은 안개산맥의 다른 쪽 면에 있는 Lórinand의 Nandorin 나라와 접촉하였다.5 이곳은 Cuiviénen으로부터의 Eldar의 대장정을 저버리고 Anduin 골짜기의 숲에 정착한 저들 요정들에게 점유되었는데 [Silmarillion 94쪽], 그곳은 훗날 Dol Guldur라던 지역을 포함하여, 저 대하(Great River)의 양편의 숲들까지로 확장되었다. Morgoth의 모든 세력이 중간대륙의 북서부에 집중되던 동안 이 요정들은 지배자나 통치자가 없이 근심에서 자유로이 자기들의 삶을 보냈으나,6많은 Sindar와 Noldor가 그들 가운데에서 살려고 왔고, Beleriand(Beleriandic) 문화의 충격 속에 그들의 “Sindar화(Sindarizing)”가 시작되었다.’ [언제 Lórinand으로의 이 이동이 일어났는지는 분명히 해주지 않는데, 그들은 Khazad-dûm의 길을 통하여 Galadriel의 비호 하에 Eregion에서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Sauron의 음모에 대항하려고 노력하는 Galadriel은 Lórinand에서는 성공하였는데, [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Silmarillion 287쪽)에서 더 충분히 전하여지듯] Lindon에서 Gil-galad가 Sauron의 밀사들과 Sauron 본인까지도 가로막던 동안 말이다. 하지만 Sauron은 Eregion의 Noldor와는, 그리고 특히 Celebrimbor와는 운이 더 좋았으니, 그는 마음 속으로 Fëanor의 기술과 명성과 겨루기를 바라였다. [Sauron이 Eregion의 대장장이들의 환심을 사는 것, 그리고 그가 스스로에게 선물의 군주(Lord of Gifts), Annatar라는 이름을 주는 것이 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에서 전해지지만, 거기에는 Galadriel에 대해 아무 거론도 없다.]
    Eregion에서 Sauron은 Valar에 의해 중간대륙으로 보내진 (‘그리하여 저 Istari를 앞지르는’) 혹은 요정들에게 조력을 주기 위해 거기에 남도록 그들에게서 명받은, 그들의 밀사인 체 하였다. 그는 즉시 Galadriel이 자신의 주요한 적수이자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인지하였고, 그러므로 그는 표면상의 인내와 예의로 그녀의 경멸을 견디며, 그녀를 달래기 위해 애썼다. [Galadriel이 그의 변장을 꿰뚫어 보지 않았다면 왜 그녀가 Sauron을 경멸하였는지에 대해, 아니면 그녀가 그의 진짜 본질을 인지하였다면 왜 그를 Eregion에 머무르도록 허락하였는지에 대해, 이 속필로 쓴 약술에서는 아무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7 Sauron은 자신의 모든 책략들을 Eregion에서 매우 강력한 사회 혹은 협회인, Gwaith-i-Mírdain을 구성하였던 Celebrimbor와 그의 동료 대장장이들에게 사용하였으나, 그는 Galadriel과 Celeborn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일하였다. 처음에 Gwaith-i-Mírdain은 자신들의 기교에 대한 은밀한 문제들에서 Sauron의 지도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므로, 그는 오래지 않아 그들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었다.8 Mírdain에 대한 그의 지배력은 아주 거대하게 되어, 드디어 그는 그들에게 Galadriel과 Celeborn에게 반란을 일으켜 Eregion에서의 권세를 빼앗도록 설득하였는데, 그것은 제이 시대 1350년과 1400년 사이의 어느 때였다. 그 후 곧 Galadriel은 Amroth와 Celebrían을 데리고 Eregion을 떠나 Lórinand로 Khazad-dûm을 통과하여 지나갔으나, Celeborn은 난장이들의 대저택에 들어가려 하지 않아, 그는 Celebrimbor에게서 무시된 채 Eregion에서 뒤에 남았다. Lórinand에서 Galadriel은 통치권을 취하여, Sauron에 대한 방어를 착수하였다.
Eä of the Ring    Sauron 자신은 Mírdain이 권능의 반지들(Rings of Power)의 제조를 시작한 후 약 1500년에 Eregion에서 떠났다. 이제 Celebrimbor는 마음 혹은 신념에서는 타락되지 않았지만, Sauron이 진술하는 그대로 그를 받아들였는데, 드디어 그가 한반지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그는 Sauron에 반감을 품고, Galadriel과 한번 더 상의하기 위해 Lórinand로 갔다. 그들은 이때에 모든 권능의 반지들을 파괴했어야 했지만, ‘그들은 그 힘을 찾는 데 실패하였다.’ Galadriel은 요정들의 세 반지들(Three Rings)은 Sauron이 그것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 Eregion에서 멀리 숨겨, 절대로 사용되지 않고, 흩어져야 한다고 그를 권고하였다. 그녀가 Celebrimbor에게서 하얀 반지(White Ring) Nenya를 받고, 그것의 권능으로 Lórinand 나라를 강화하고 아름답게 만든 것이 그때였으나, 그녀의 그 권능은 바다와 서부로의 귀환에 대한 그녀의 잠재적 욕구를 증가시켜 중간대륙에서의 그녀의 기쁨은 줄어들었으므로, 그것은 대단하면서 또한 의외였다.9 Celebrimbor는 공기의 반지(Ring of Air)와 불의 반지(Ring of Fire)는 Eregion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그녀의 의견을 따랐는데, 그는 그것들을 Lindon의 Gil-galad에게 맡겼다. (이때에 Gil-galad는 붉은 반지(Red Ring) Narya를 항구의 군주 Círdan에게 줬다고 하지만, 이 글의 더 나중에는 그가 마지막 동맹 전쟁(War of the Last Alliance)을 위해 출발할 때까지 몸소 그것을 간직하였다는 여백에 쓰인 주가 있다.)
Eä of the Ring    Sauron이 Celebrimbor의 참회와 배반에 대해 알았을 때, 그의 변장이 떨어져 그의 분노가 드러났는데, 그는 거대한 병력을 모아 1695년에 Eriador를 침략하러 Calenardhon (Rohan)을 질러 이동하였다. 이에 대한 소식이 Gil-galad에게 이르자, 그는 반요정인(Half-elven) Elrond의 하에 병력을 내보냈으나, Elrond가 가기에는 멀었고, Sauron은 북쪽으로 바꾸어 즉시 Eregion을 향했다. Sauron의 군대의 척후병들과 선봉대가 이미 접근하고 있자, Celeborn이 돌격대를 만들어 그들을 격퇴하였으나, Sauron의 군대는 그들의 것보다 훨씬 거대하여, 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서 Eregion을 면밀하게 포위하는 데, 양쪽으로 모두 충분할 만큼 거대하였으므로, 그는 자신의 병력을 Elrond의 그것과 합칠 수 있긴 했지만 Eregion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마침내 저 공격자들은 파괴와 유린과 함께 Eregion으로 밀고 들어가, Sauron의 강습의 주요 목표인 Mírdain의 집을 노획하였는데, 거기에 그들의 대장장이 일터들과 그들의 보물들이 있었다. 자포자기한 Celebrimbor는 Mírdain의 거대한 현관의 계단 위에서 몸소 Sauron에게 저항하였으나, 그는 갈고랑이에 걸려 포획되었고, 그 집은 샅샅이 뒤져졌다. 거기서 Sauron은 아홉 반지들(Nine Rings)과 Mírdain의 다른 하위 작품들을 취하였으나, 저 일곱과 셋을 그는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Celebrimbor는 고문대에 놓였고, Sauron은 그에게서 저 일곱이 어디에 두어졌는지 알아냈다. 저 일곱도 아홉도 Celebrimbor는 저 셋을 중시하던 만큼 중시하지는 않았으므로 이것을 그는 폭로하였는데, 그 일곱과 아홉은 Sauron의 조력으로 만들어졌던 반면, 저 셋은 다른 권능과 목적을 가지고 Celebrimbor 혼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것이 내포하는 것은 Sauron이 이때에 일곱 반지들의 소유를 취했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듯 하긴 하지만, 여기서 실제로 그가 그리 하였다고 하지는 않는다.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II)에서는 Durin의 민족의 난장이들 사이에는 Khazad-dûm의 왕 Durin III의 반지는 Sauron에 의해서가 아니라, 요정 대장장이들 스스로에 의해 그에게 주어졌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 본문에서는 일곱 반지들이 난장이들의 소유로 들어온 방법에 대해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다.] 세 반지들에 관해 Sauron은 Celebrimbor에게서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는데, 그는 그를 처형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셋은 요정의 보호자들에게 위탁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Galadriel과 Gil-galad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진상을 추측하였다.
    검은 노여움 속에 그는 전투로 되돌아갔는데, Orc화살로 가득 한 Celebrimbor의 시체를 기처럼 장대에 걸어 가져가며, 그는 Elrond의 부대로 향했다. Elrond는 탈출했던 소수의 Eregion의 요정들을 모았지만, 그 엄습을 버티어 낼 병력은 갖지 못했다. Sauron의 군대가 후위에서 공격받지 않았다면, 그는 실로 괴멸되었을 것이니, Durin이 Khazad-dûm에서 난장이 부대를 내보내었고, 그들과 함께 Amroth에 의해 인솔된 Lórinand의 요정들이 왔던 것이었다. Elrond는 스스로를 구출할 수 있었지만 북쪽으로 밀려났고, 그가 Imladris (Rivendell(갈라진골))에서 피난처이자 요새를 설립하였던 것이 그때 [연대 이야기에 따르면, 1697년에] 였다. Sauron은 Elrond 추격에서 철수하여, 난장이와 Lórinand의 요정들에게로 돌려 그들을 몰아냈으나, Moria의 대문은 폐쇄되어 그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후로 늘 Moria는 Sauron의 증오를 받았고, 모든 Orc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언제든 난장이들을 괴롭히라고 명해졌다.
    하지만 이제 Sauron은 Eriador의 지배권을 얻으려 시도하였으니, Lórinand는 미뤄둘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작은 무리들을 모두 학살하거나 물러나게 하고, 남아있는 요정들을 사냥하면서 그가 그 땅들을 휩쓸자, 많은 이들이 Elrond의 군대를 불리러 북쪽으로 달아났다. 이제 Sauron의 직접적인 목적은 Lindon을 취하는 것이었으니, 그는 거기에서 그가 세 반지들 중 하나, 아니면 더 많이 쥘 공산이 가장 크다고 믿었는데,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흩어진 부대들을 불러, 가는 대로 휩쓸며 Gil-galad의 땅을 향해 서쪽으로 행군하였다. 하지만 Elrond를 견제하고 그가 자신의 후위를 급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한 파견대를 남길 필요가 있어 그의 병력은 약화되었다.
    이제 오랜 세월 동안 Númenor인들이 자신들의 배들을 회색항구(Grey Havens)로 가져왔었고, 거기서 그들은 환영을 받았다. Gil-galad는 Sauron이 노골적인 전쟁과 함께 Eriador로 올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하자마자 Númenor로 전갈을 보냈는데, Lindon의 바닷가에서 Númenor인들은 전쟁을 위한 병력과 보급품들을 증강하기 시작하였다. 1695년에 Sauron이 Eriador로 침입했을 때에, Gil-galad는 Númenor에 원조를 호소했다. 그러자 왕 Tar-Minastir는 막대한 해군을 보냈으나, 그것은 지체되어 1700년까지 중간대륙의 해안지방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 무렵까지 Sauron은 오직 포위된 Imladris만을 제외한, 전 Eriador를 정복하였고, Lhûn 강의 경계선에 이르렀다. 그는 더 많은 병력을 소환하였는데, 그들은 남동쪽으로부터 접근하고 있어, 실로 Enedwaith에 있는 Tharbad의 도강지에 있었으니, 그곳은 가벼이 지켜질 뿐이었다. Gil-galad와 Númenor인들이 회색항구의 절망적인 방어물에서 Lhûn을 지키고 있을 때, 아슬아슬하게 때를 맞추어 Tar-Minastir의 거대한 군이 들어왔는데, Sauron은 심하게 패하고 격퇴되었다. Númenor의 Ciryatur 제독은 자신의 배들 일부를 남쪽으로 더 멀리에서 상륙하도록 보냈다.
    Sauron은 Sarn 여울 (Baranduin의 도강지)에서의 거대한 살육전 이후로 남동쪽으로 쫓겨났는데, Tharbad에서 있던 그의 병력을 통해 강화되긴 했지만, 그는 갑자기 그의 후위에서 다시 Númenor인들의 군대를 발견하였으니, Ciryatur는 ‘Númenor인의 작은 항만이 있는’ Gwathló (Greyflood(회색범람))의 하구 기슭에 강력한 병력을 두었던 것이었다. [이곳은 훗날 Lond Daer라 불리는, Tar-Aldarion의 Vinyalondë였는데, 여기의 부록 D를 보라.] Gwathló 전투에서 Sauron은 철저히 완패당하였고, 스스로만 가까스로 탈출하였다. 그의 소수의 남아있는 병력은 Calenardhon의 동쪽에서 습격당하였고, 그는 고작 한명의 호위병과 함께 훗날 Dagorlad (전투 평원(Battle Plain))라 불리는 지역으로 달아났으며, 망신창이가 되고 굴욕을 당한 그는 거기서부터 Mordor로 돌아와, Númenor에 복수를 맹세하였다. Imladris를 포위하고 있던 군단은 Elrond와 Gil-galad 사이에서 붙들려 철저히 섬멸되었다. Eriador는 적이 일소되었지만, 대부분이 폐허 속에 놓였다.
    이 무렵에 첫 회의가 개최되었고,10 Eriador의 동쪽에서의 요정의 본거지는 Eregion에서보다는 차라리 Imladris에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거기서 결정되었다. 그 무렵에 또한 Gil-galad는 푸른 반지(Blue Ring) Vilya를 Elrond에게 주어 그를 Eriador에서의 그의 대리섭정으로 임명하였으나, 붉은 반지는 그가 마지막 동맹의 그 시절에 Lindon에서 출발할 때 Círdan에게 그것을 줄 때까지 그가 간직하였다.11 수많은 세월 동안 그 서부지대(Westlands)는 평화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시간을 가졌으나, Númenor인들은 중간대륙에서 권세를 맛보아, [연대 이야기에서는 ‘1800년경’으로 적힌] 그 무렵부터 죽 그들은 그 서쪽 해안 지대에 영구적인 정착지들을 만들기 시작하여, 오랫동안 Sauron이 서쪽으로 Mordor 밖을 나오기를 꾀하기에는 너무 강력하게 되었다.
    그 결말 구절에서 Galadriel은 자신의 속에서 바다에 대한 갈망이 너무 강하게 자라, (Sauron이 아직 최종적으로 정복되지 않은 한 중간대륙에 잔류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녀는 Lórinand를 떠나 바다 근처에서 살기로 결심하였다고 전하며, 그 글은 그녀에게로 되돌아간다. 그녀는 Lórinand를 Amroth에게 위탁하고, Celebrían과 함께 다시 Moria를 지나 Celeborn을 찾으러 Imladris로 왔다. 거기서 그녀는 그를 찾아, 거기에서 함께 오랫 동안 살았는(듯 한)데, 그때 Elrond는 처음으로 Celebrían을 보고, 그녀를 사랑하였으니, 비록 그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긴 했지만 말이다. 위에서 언급된 그 회의가 개최된 것은 Galadriel이 Imladris에 있는 동안이었다. 하지만 [그 연도에 대해 아무 예시가 없는] 다소 얼마 뒤에 Galadriel과 Celeborn은 Celebrían과 함께 Imladris를 떠나, Gwathló와 Ethir Anduin 사이의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땅으로 갔다. 거기서 그들은 Belfalas에 있는, 훗날 Dol Amroth라 불리던 장소에서 살았는데, 거기로 그들의 아들 Amroth가 때때로 그들을 방문하였고, 그들 일행은 Lórinand에서 온 Nandorin 요정들로 불어났다. 제삼 시대(Third Age)가 한참 지나서야, 1981년에 Amroth가 실종되고 거기가 위태롭게 되었을 때에 Galadriel이 Lórinand로 돌아간 것이었다. 여기서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 원문은 끝에 이른다.



    반지들의 제왕에 어긋나는 어떤 예시도 부재하다는 것이 해설자들로 하여금 Galadriel과 Celeborn이 제이 시대의 나중의 절반과 삼 시대 전부를 Lothlórien에서 보냈다고 자연스레 가정하도록 하였음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 같으나, 이는 그렇지가 않았으니, 하긴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에서 약술한 그들의 내용은 아래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후에 크게 수정되긴 했어도 말이다.

Amroth와 Nimrodel

나는 반지들의 제왕이 쓰여졌을 때 Amroth를 실로 Galadriel과 Celeborn의 아들로 생각했었다면, 그토록 중요한 연줄은 거론을 거의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다 먼저(여기)에서 말했다. 하지만 그가 그랬든 아니었든, 그의 태생에 대한 이 고찰은 나중에는 버려졌다. 나는 (1969년 혹은 더 나중으로 날짜가 적힌) ‘간결하게 상술한 Amroth와 Nimrodel의 전설의 일부’라는 제목이 붙은 다음의 짧은 이야기를 싣는다.

Amroth는 그의 아버지 Amdír[제이 시대 3434년에] Dagorlad 전투에서 전사한 이후로 Lórien의 왕이었다. 그의 땅은 Sauron의 패배 이후로 많은 세월 동안 평화를 누렸다. 비록 혈통으로는 Sindarin이었음에도 그는 숲 요정들(Silvan Elves)의 방식을 따라 생활하며, 이후로 늘 Cerin Amroth라 불리던 거대한 푸른 둔덕의 높다란 나무들 속에서 살았다. 이것을 그는 Nimrodel에 대한 그의 사랑 때문에 하였다. 그녀는 그와 결혼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오랜 세월 동안 그는 그녀를 사랑하면서, 어느 아내도 얻지 않았다. 그는 Eldar 가운데 하나로 친다 하여도 아름다웠고, 용감하며 지혜로웠으므로, 그녀는 실로 그를 사랑하였으나, 그녀는 숲 요정 출신이었고, (그녀가 말한 대로) 전쟁을 가져오고 옛적의 평화를 파괴하는 그 요정들이 서부로부터 들어온 것을 유감으로 여겼다. 그녀는 숲 요정들의(Silvan) 말이 Lórien의 민족 사이에서 쇠퇴한 이후로도, 늘 오직 그 말로만 말하려 하였는데,12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준 Nimrodel 강의 폭포 옆에서 그녀는 홀로 살았다. 하지만 그 공포가 Moria 밖으로 나와 난장이들이 밖으로 내몰리고, 그들 대신에 Orc들이 기어 들어가자, [제삼 시대 1981년에] 그녀는 당황하여 홀로 남쪽으로 텅빈 땅으로 달아났다. Amroth가 그녀를 좇아가, 그 시절에는 Lórien에 훨씬 더 가까웠던, Fangorn의 처마 아래에서 마침내 그녀를 찾아냈다.13 그녀는 감히 그 숲으로 들어가지 못했으니, 그 나무들이 자신을 위협하였고 어떤 것들은 자신의 길을 막으려고 움직였다고 그녀는 말했던 것이었다.
    거기서 Amroth와 Nimrodel은 기나긴 논의를 가졌는데, 마침내 그들은 약혼을 서약하였다. ‘이것에 저는 진실하겠으며, 우리는 당신께서 저를 평온의 땅으로 데려가시면 결혼하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Amroth는 그녀를 위해 그의 백성이 곤란한 때일지라도 그들을 떠나, 그녀와 함께 그러한 땅을 찾아내겠다고 맹세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중간대륙에는 아무 데도 없으며, 요정민족(Elven-folk)을 위해서는 다시는 결코 없을 것이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저 대해(Great Sea) 너머의 고대의 서부로 가는 항로를 찾아내야만 하오.’ 그러고서 그는 그녀에게 본인의 백성들 다수가 오래 전에 이르렀었던, 남쪽에 있는 항구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대부분이 서부로 출항하였으므로 그들은 이제 줄어들었으나, 그들 중 잔존자들이 아직 배들을 건조하고, 중간대륙에 지쳐 그들에게 오는 그들 혈족의 누구에게나 항로를 제공하오. Valar께서 저 바다를 건너도록 우리에게 주신 그 은총은, 이젠 또한 저 대장정을 행했던 이라면 비록 그들이 지난 시대에 그 바닷가에 이르지 않았고 아직 그 축복받은 땅(Blessed Land)을 보지 못했을 지라도, 누구나 수여받은 것이라고 하오.
    여기에 그들의 Gondor의 땅으로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할 여지는 없다. 그곳은 남부 왕국의 왕들 중 하나를 뺀 마지막인, Eärnil II의 시절이었으며, 그의 땅들은 고난을 당했다.
[Eärnil II는 1945년부터 2043년까지 Gondor를 군림하였다.] 이 외 다른 데에서 어떻게 그들이 갈라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Amroth가 헛되이 그녀를 찾다가 후에 어떻게 요정항구로 가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아직 거기서 꾸물거리던 것을 알게 되었는지 전한[다지만 어떤 현존하는 저술에서도 없]다. 배 한 척분의 수용인원보다는 적었는데, 그들은 항해에 적합한 배를 딱 한 척만 가졌다. 이 안에서 그들은 지금 출발하여 중간대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적은 일행 수를 보강시키는 것을 기뻐하며 Amroth를 환영하였으나, Nimrodel을 기다리는 것은 내키지 않아 했는데, 그녀가 오는 것은 그들로서는 이제 희망이 없는 듯 하였다. ‘그분이 Gondor의 정착된 땅들을 통해 오셨다면, 위해를 당하지 않으셨을 테고, 도움을 받으셨을지도 모르니, Gondor의 인간들은 착하며, 아직 우리 말을 그럭저럭 할 수 있는 옛날의 저 요정친구들의 자손들이 다스리지만, 저 산맥에는 비우호적인 인간들과 사악한 것들이 많거든요.’ 그들이 말했다.
    그해는 가을로 이울고 있었고, 오래지 않아, 심지어 요정배들에게도 그것들이 아직 중간대륙에 가까이 있는 동안에도 적대적이고 위험한 거대한 바람이 예상되려 하였다. 하지만 Amroth의 비탄은 매우 커서 그럼에도 불구 그들은 여러 주 동안 떠나기를 미루었는데, 바닷가 위의 그들의 집들은 벗겨지고 비었으므로 그들은 그 배 위에서 살았다. 그러고서 그 가을에 Gondor의 연대기에서는 가장 지독했던 것 중 하나였던, 거대한 폭풍의 밤이 거기로 왔다. 그것은 저 추운 북부 황야(Northern Waste)로부터 와, 대소동을 벌이며 Eriador를 뚫고 Gondor의 땅에다 고함을 쳐댔는데, 저 백색산맥(White Mountains)도 그것에는 방패가 못되어, 인간의 배들 중 대다수가 Belfalas의 만으로 쓸려가 소실되었다. 그 가벼운 요정배는 계류 시설에서 떼어져, Umbar의 해안지대를 향해 드넓은 바다로 내몰렸다. 그것에 대한 소식은 아무것도 중간대륙에서는 결코 들리지 않았으나, 이 여행을 위해 만든 요정배들은 침몰하지를 않았으며, 그것은 필시 저 세상의 원들(Circles of the World)을 떠나 마침내 Eressëa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Amroth를 거기로 데려가지는 않았다. 막 새벽이 저 날아다니는 구름을 뚫고 살짝 보여지고 있을 때에 그 폭풍이 Gondor의 해안지대로 닥쳤으나, Amroth가 깨어났을 때에는 그 배는 이미 땅에서 멀리 있었다. 그는 절망 속에 Nimrodel!이라고 크게 외치며 바다로 뛰어들어 희미해지는 바닷가를 향해 헤엄쳤다. 그 뱃사람들은 자신들의 요정의 시야로 파도와 싸우는 그를 오랫동안 볼 수 있었고, 마침내 떠오르는 태양이 그 구름들을 뚫고 희미하게 빛나 멀리서 그의 밝은 머리털을 번쩍이는 황금처럼 비추었다. 요정 혹은 인간의 어느 눈도 다시는 결코 중간대륙에서 그를 보지 못하였다. Nimrodel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그녀의 운명에 관하여 수많은 전설들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않는다.

    상술한 글은 실제로 중간대륙의 특정 강들의 이름들, 이 경우에서는 Ethir Anduin의 서쪽에서 Belfalas 만으로 흐르던 Gondor에 있는 Lebennin의 강 Gilrain에 대한 어원학적인 논문으로부터의 곁가지로서 지어졌으며, Nimrodel의 전설의 또 다른 한 면이 rain이라는 요소에 대한 그 논문에서 나온다. 이것은 아마 (Mithrandir에서, 그리고 달의 Rána라는 이름에서처럼) ‘유랑하다, 헤매다, 불확실한 경로를 가다’라는 어간 ran-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Gondor의 강들 중 어느 것에도 알맞지 않은 듯 했을 것이나, 그 강들의 이름들이란 종종 그 경로의 일부에만, 그 수원에만, 혹은 그 하류에만, 아니면 그것들에 이름을 붙인 탐험가들을 떠올리는 다른 지형물들에만 해당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는 Amroth와 Nimrodel의 전설의 단편들이 설명을 제공한다. Gilrain은 그 지역의 다른 강들이 그랬듯이 그 산맥으로부터 빠르게 내려왔으나, 그것은 Celos로부터 그것을 분리하는 Ered Nimrais의 외지의 끝에 이르면 [반지들의 제왕 3권에 첨부된 지도를 보라], 넓고 얕은 저지대로 흘러갔다. 이곳에서 그것은 한동안 유랑하다, 그 산마루를 뚫고 Serni와 합류하러 다시 빠르게 나아가기에 앞서, 남쪽 끝에서 작은 못을 형성하였다. Nimrodel이 Lórien에서부터 달아났을 때에, 바다를 찾다가 백색산맥에서 그녀는 길을 잃게 되었고, 마침내 (전해지지 않는 무슨 도로나 협로를 통해) Lórien에 있는 그녀 자신의 개울을 생각나게 하는 강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녀의 마음은 가벼워졌고, 그녀는 못 옆에 앉아서, 그 어둑한 물에 반사되는 별들을 보고, 저 바다로 여행을 다시 나서는 그 강 옆의 폭포소리를 들었다. 거기서 그녀는 피곤으로 깊은 잠에 빠졌고, 너무 오래 잠들어 Amroth의 배가 바다로 바람에 불려 나가고, 그가 Belfalas로 헤엄쳐 돌아오려 하다 실종될 때까지 그녀는 Belfalas로 내려오지 않았다. 이 전설은 Dor-en-Ernil(제후의 땅(Land of the Prince))에서 잘 알려졌고,14 그 이름이 그것을 추도하여 주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평론은 Lórien의 왕으로서의 Amroth가 Celeborn과 Galadriel의 거기에서의 통치와 어떻게 관계되는지에 대한 간결한 설명과 함께 계속된다.

Lórien의 백성들은 제삼 시대 말기에도 많이 그랬듯이 그때[즉, Amroth을 잃었던 때]에도 그 기원이 숲 요정들이었지만, Sindarin 혈통의 지배자들에 의해 다스려졌(으니, Mirkwood(어둠숲)의 북쪽 지방에 있는 Thranduil의 나라처럼이다만, Thranduil과 Amroth가 동족인지 아닌지는 지금은 알려져있지 않지만 말이)다.15 그러나 그들은 (Sindarin 말을 하는) Noldor와 많이 섞였으니, 그들은 제이 시대 1697년에 Sauron에 의한 Eregion의 멸망 이후에 Moria를 통해 건너왔었다. 그 무렵 Elrond는 서쪽으로 가 [원문대로인데, 아마 그가 안개산맥을 넘지 않았다는 것을 간단히 의미하는 듯 함] Imladris라는 피난처를 설립하였는데, Celeborn이 먼저 Lórien으로 가, Anduin을 건너려고 하는 Sauron의 어떤 더 한 시도들에 대해서도 대비하여 그곳을 요새화하였다. 그러나 Sauron이 Mordor로 철수하고, (보고된 대로) 완전히 동부에서의 정복에 관여하였을 때, Celeborn은 Lindon에서 Galadriel과 재회하였다.
    그때부터 Númenor의 파멸과 Sauron의 중간대륙으로의 갑작스런 귀환 때까지 Lórien은 그곳 본래의 왕 Amdír의 통치 하에 평화와 애매함의 긴 세월을 보냈다. Amdír는 Gil-galad의 호출에 응하여, 그가 소집할 수 있을 만큼 큰 병력을 그 마지막 동맹에 데려왔지만, 그는 자신의 중대의 대부분과 함께 Dagorlad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Amroth가 왕이 되었다.

이 해설은 물론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에 있는 것과 크게 모순된다. Amroth는 더 이상 Galadriel과 Celeborn이 아니라 Sindarin 출신의 지배자인 Amdír의 아들이다. Galadriel과 Celeborn의 Eregion과 Lórien과의 관계에 대한 더 오래된 그 내용은 여러 중요한 점에서 수정된 듯 하지만,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어떤 완전히 쓴 글 속에서라도 유지되었을지는 말해 줄 수 없다. Celeborn의 Lórien과의 연관은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에서 그는 제이 시대 동안에는 결코 전혀 Lórien으로 가지 않았었으므로) 이제 훨씬 더 앞당겨 놓이게 되는데, 우리는 여기서 Noldorin 요정들이 Eregion의 멸망 이후에 Lórien으로 Moria을 통과하여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먼저의 해설에서는 이것에 대해 어떤 암시도 없으며, ‘Beleriand의’ 요정들의 Lórien으로의 이동은 여러 해 전에 평화로운 상태에서 일어났었다(여기). 방금 실린 발췌가 내포하는 것은 Eregion의 함락 이후 Celeborn이 Lórien으로의 이 이주를 인솔하였고, 한편 Galadriel은 Lindon에서 Gil-galad와 합류하였다는 것이나, 그 외 다른 데의, 이것과 동시기의 한 저술에서는 그들 모두는 그 무렵 ‘Noldorin 망명자들 중 상당한 수의 수행원들과 함께 Moria를 통과하여 Lórien에서 수많은 해 동안 살았다’고 명시적으로 전한다. Galadriel (혹은 Celeborn)이 1697년 이전에 Lórien과 관계를 가졌다고는 이들 최근의 저술들은 단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며, (1350년과 1400년 사이의 어느 때에) Eregion에서의 그들의 지배에 대한 Celebrimbor의 반란에 대해서도, 그 무렵에 Celeborn이 Eregion에서 뒤에 남았던 동안 Galadriel의 Lórien으로의 떠남과 그녀가 거기의 통치권을 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 외에는 다른 언급이 없다. Eriador에서의 Sauron의 패배 이후에 Galadriel과 Celeborn이 어디에서 제이 시대의 긴 세월을 보냈는지는 그 최근의 해설들에서는 분명히 해주지 않는데, 아무튼 그들의 Belfalas에서의 오랜 세월동안의 체류(여기)에 대해 더 이상의 거론은 없다.
    Amroth에 대한 논문은 계속된다.

하지만 제삼 시대 동안 Galadriel은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 차게 되어, 특히 Mirkwood에서 자라나는 그림자와 Dol Guldur에 있는 그 어둠의 본거지에 대한 모든 소식과 소문들을 알아내려는 생각으로, Celeborn과 함께 Lórien으로 여행하여 Amroth와 함께 거기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하지만 그의 백성들은 Amroth에 만족하였는데, 그는 용감하고 지혜로웠으며, 그의 작은 왕국은 아직 번영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Rhovanion에서, Gondor와 저 Mordor의 경계로부터 북부의 Thranduil에게까지의 조사를 위한 긴 여행 이후, Celeborn과 Galadriel은 Imladris로 그 산맥을 넘어가, 거기서 수많은 해 동안 살았으니, Elrond가 제삼 시대 초기에 [연대 이야기에 따르면 109년에] 그들의 딸 Celebrían과 결혼한 이래로 그는 그들의 친척이었던 것이었다.
   
[1980년에] Moria의 재난과 (Amroth는 Belfalas 만의 바다에서 익사하였고, 후계자를 남기지 않아) 이제 통치자 없이 남겨진 Lórien의 고난 이후로, Celeborn과 Galadriel은 Lórien으로 귀환하여 그곳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다. 거기서 그들은 제삼 시대가 지속되는 동안 살았지만, 그들은 왕이나 여왕이라는 직함은 취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요정들의 마지막 동쪽 전초지인, 이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의 보호자들일 뿐이라고 말하였던 것이었다.

    그 외 다른 데에 저 해들 동안에 그들의 이동에 대한 또다른 언급이 하나 있다.

Celeborn과 Galadriel은 마지막 동맹과 제이 시대의 말기 이전에 두번 Lórien으로 돌아왔었는데, 제삼 시대에 Sauron의 회복의 그림자가 생겨났을 때 그들은 다시 거기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녀의 지혜로 Galadriel은 Lórien이,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그 그림자가 다시 패배하기 전에는 필연적으로 닥칠게 틀림없는 전쟁에서 그것이 Anduin을 건너는 것을 막는 세력의 본거지이자 첨병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곳은 그 숲 요정 민족이 가진 것보다 더 위대한 힘과 지혜의 통치를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 그 Moria의 재난 때에야, Galadriel의 선견지명을 넘어서는 수단을 통해 Sauron의 세력이 사실상 Anduin을 건너고, Lórien은 그 왕이 실종되고, 그 백성들은 달아나 그곳을 Orc들의 차지가 되도록 버린 채 두려는 듯 하여 크게 위태롭게 되었을 때에 Galadriel과 Celeborn이 Lórien에 그들의 영구적인 거처와 정부를 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왕이나 여왕의 직함은 취하지 않았으니, 결국에는 반지 전쟁(War of the Ring) 동안 그곳이 더럽혀지지 않게 한 보호자들이 되었다.

    같은 시기의 또 다른 어원학적인 논문에서는 Amroth란 이름은 높은 talan 혹은 flet, 즉 저 Galadhrim이 사는 Lothlórien의 나무들 속에 높게 들어 찬, 목재로 된 노대들(반지 원정대 II 6을 보라)에서의 그의 생활로부터 유래하여 별명이 된 것으로 설명되는데, 그것은 ‘위로 오르는 이, 높이 오르는 이’를 의미하였다.16 여기에서는 나무들 속에서 사는 그 관습은 일반적으로 숲 요정들의 풍습이 아니었지만, 그 땅의 성질과 상태로 인해 Lórien에서 발전하였다고 하니, 그곳은 서쪽의 산맥에서 채석되어 Silverlode(은빛수로)를 어렵게 따라 내려가야 가져올 수 있던 것을 제외하고는 좋은 석재라곤 없는 평지였다. 그곳의 주요한 부는 태고 시절의 거대한 숲들의 잔존물인 그 나무들 속에 있었다. 하지만 나무들 속에서 사는 것은 Lórien에서 조차 보편적이 아니었고, 그 telain 혹은 flet들은 공격이 있는 경우에 사용될 피난처들에서, 아니면 대개는 요정의 눈으로 그 땅과 그곳의 경계를 둘러볼 수 있는 감시 초소들에서 기원하였으니, 제삼 시대의 첫 천년간의 말기 이후로 Lórien은 편치 않은 경계의 땅이 되었고, Amroth는 Dol Guldur가 Mirkwood에 건립된 이래로는 늘 자라나는 불안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것이었다.

Eä of the Ring북쪽 경계의 관리인들에 의해 사용되던 그런 감시 초소가, Frodo가 밤을 보내었던 그 flet이었다. Caras Galadhon에 있는 Celeborn의 거처도 또한 그 기원은 똑같았으니, 반지 원정대(Fellowship of the Ring)가 보지 못했던 그곳의 가장 높은 flet이 그 땅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었다. 더 초기에, 많은 수작업으로 쌓여진 Cerin Amroth의 거대한 둔덕 혹은 언덕의 꼭대기에 있는 Amroth의 flet은 가장 높았었고, 주로 Anduin 건너편의 Dol Guldur를 지켜보도록 설계되었다. 이들 telain의 영구적인 거처들로의 전환은 더 나중에 있던 발전이었고, 오직 Caras Galadhon에서만 그러한 거처들이 엄청나게 있었다. 하지만 Caras Galadhon은 그 자체로 요새였고, Galadhrim 중 적은 일부 만이 그곳의 성벽 안쪽에서 살았다. 그런 우뚝 솟은 집들에서 사는 것이 처음에는 범상치 않은 생각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Amroth가 아마도 그리 한 최초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높은 talan에서의 그의 생활로부터 그의 이름이 — 나중에 전설에서 기억된 유일한 이름이 — 거의 아마 유래되었을 것이다.

Amroth가 아마도 그리 한 최초의 사람이었을 것이다’는 말의 주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그게 Nimrodel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녀의 동기는 달랐다. 그녀는 오래도록 이별하지 않으려 하였던, Nimrodel의 물과 폭포를 사랑하였으나, 시대가 어두워지자, 그 개울은 북쪽 경계와 너무 가까웠고, Galadhrim이 이제는 거의 살지 않는 지방에 있었다. 아마도 그녀로부터 Amroth가 높은 flet에서 사는 개념을 따왔을 것이다.17

    위에 실린 Amroth와 Nimrodel의 전설로 되돌아가서, Amroth가 Nimrodel을 기다렸던,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전하였던 대로) ‘본인의 백성들 다수가 오래 전에 이르렀었던’(여기) 그 ‘남쪽에 있는 항구’는 무엇이었는가? 반지들의 제왕에서는 두 구절들이 이 질문에 관계가 있다. 하나는 반지 원정대 II 6에서 Legolas가 Amroth와 Nimrodel의 노래를 부른 후 ‘Belfalas 만, 거기서 Lórien의 요정들은 출항하였지’라고 이야기 하는 데서이며, 다른 하나는 왕의 귀환 V 9에서 Legolas가 Dol Amroth의 Imrahil 제후를 바라보며, 그가 ‘그의 정맥 속에 요정의 피를 가진 이 임’을 알아보고는, ‘Nimrodel의 사람들이 Lórien의 삼림지대를 떠났던 것은 훨씬 전인데도, 역시 모두가 Amroth의 항구에서 바다 건너 서쪽으로 항해하였던 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알아볼 수 있을 것 같군요.’라고 그에게 말하던 데서이다. 어느 쪽에 대해서든 Imrahil 제후는 ‘내 땅의 지식에서도 그렇게 전해지지요.’라고 답하였다.
    최근이며 단편들로 된 주들은 이 언급들을 얼마간 설명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이를테면 (1969년 혹은 더 나중으로 날짜가 적힌) 중간대륙에서의 언어학적이고 정치적인 상관관계에 대한 한 논문에서는, ‘Morthond와 Ringló의 합류지점의 남쪽에 있는 요정들의 항구와 작은 정착지를 제외하곤’(즉 Dol Amroth의 바로 북쪽), Númenor의 더 초기의 정착 시절에는 그 Belfalas 만의 바닷가는 아직 대개는 황량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지나가는 언급이 있다.

Dol Amroth의 전승들에 따르면, 이곳은, Morgoth의 세력이 Eldar와 Atani를 제압하였을 때 세 척의 작은 배들로 달아났던, Beleriand의 서쪽 항구들에서 온 바다를 업으로 삼는 Sindar에 의해 설립되었으나, 그곳은 바다를 찾아 Anduin을 따라 내려온 숲 요정들의 모험들을 통해 증대하였다.

숲 요정들은 ‘때때로 그들 중 일부를 자기들의 고향으로부터 유랑하게 하였던 저 바다에 대한 초조함과 갈망에서 결코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이 여기서 주목된다). ‘세 척의 작은 배들’에 대한 이 내용을 Silmarillion에 기록된 전승들과 연관시키려면, 우리는 아마도 Brithombar나 Eglarest (Beleriand의 서부 해안 지대에 있는 Falas의 항구들)가 Nirnaeth Arnoediad 이후 몇 년 안에 파괴되었을 때(Silmarillion 196쪽) 그들이 그곳들에서 탈출하였다고, 하지만 Círdan과 Gil-galad가 Balar 섬에 피난처를 만들었던 반면에 이 세 척의 승무원들은 훨씬 더 멀리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Belfalas까지 항해해 내려갔다고 억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요정의 항구의 설립을 더 나중으로 만드는 아주 다른 해설이 Belfalas란 이름의 기원에 대한 미완의 단편에 실려 있다. 여기에서는 Bel-이라는 요소는 확실히 Númenor인 이전 사람들의(pre-Númenórean) 이름에서 유래되는 한편, 그것의 근원은 사실 Sindarin이었다고 한다. 그 주는 Bel-에 대하여 실은 약간 더 나아간 정보 앞에서 점차 사라지지만, 그것의 Sindarin 기원에 대해 주어진 이유는 ‘Gondor에는 아주 이례적인 종류의, 즉 Eldarin 정착지라는, 작지만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었다’는 것이다. Thangorodrim이 부숴진 이후, Beleriand의 요정들은, 만일 그들이 대해를 건너는 배를 타거나 Lindon에 남지 않았으면, 동쪽으로 청색산맥(Blue Mountains)을 넘어 Eriador로 유랑하여 들어갔으나, 그럼에도 불구 제이 시대 초기에 남쪽으로 간 Sindar 집단이 있었다고 거기에서 나온다. 그들은 Noldor에 대한 그들의 악감을 아직 품은 Doriath 주민들 중의 잔존자였는데, 회색항구에서 한동안 잔류하면서 그들은 배를 건조하는 기교를 배우고는, ‘세월이 경과하여 그들은 그들만의 삶을 위한 터를 찾으러 갔고, 마침내 그들은 저 Morthond의 하구에 정착하였다. 어민들의 원시적인 항만이 거기에 이미 있었지만, 이들은 그 Eldar를 두려워하여 저 산맥으로 달아났다.18
    1972년 12월이나 더 나중에 쓰인 주에서는, 그리고 중간대륙을 주제로 한 내 아버지의 마지막 저술들 가운데에는 인간들 내에서의 요정의 체질에 대한, 즉 수염이 없는 점을 물려받은 자들은 그 점을 통해 식별 가능하다는 점에 관한 논문이 있는데 (수염이 없는 것이 모든 요정들의 특징이었다), Dol Amroth의 제후 가문에 관련하여, (위에서 인용된 왕의 귀환 V 9에 있는 Legolas와 Imrahil 간의 담화에 대한 언급과 함께) ‘그곳 고유의 전설들에 따르면, 이 가계는 특별한 요정의 체질을 가졌다’는 것이 여기에서 주목된다.

Nimrodel에 대해 Legolas가 거론한 것이 보여 주듯, Dol Amroth 근처에는 고대 요정의 항도가 있었고, Lórien에서 온 숲 요정들의 작은 정착지가 거기에 있었다. 그 제후의 가계의 전설이란 가장 초기의 선조 중 하나가 요정소녀와 결혼하였다는 것이니, 어떤 판들에서는 그것은 실로 (분명 일어날 성 싶지 않은 것으로) Nimrodel 본인이었다고 하였다. 또 다른, 그리고 보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들에서는 그것은 그 산 위의 험한 골짜기지대에서 길 잃은 Nimrodel의 동행인들 중 하나였다.

그 전설에 대한 이 후자의 판은 반지 전쟁 무렵의 Dol Amroth의 제후 Imrahil의 아버지인 Adrahil의 아버지이자, 이십대 제후인 Angelimar에서부터 시작되는, 미발표된 Dol Amroth의 가계의 계보에 덧붙인 주에서 보다 상세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의 가문의 전승에서 Angelimar는 Dol Amroth의 초대 영주 Galador(삼 시대 2004–2129년경)로부터 끊어지지 않은 혈통으로 이십대째였다. 마찬가지인 전승들에 따르면, Galador는 Belfalas에서 살던 Númenor인 Imrazôr와 요정아내 Mithrellas의 아들이었다. 그녀는 Moria에서 악이 일어났던 제삼 시대 약 1980년에 그 해안지대로 달아났던 요정들 다수 가운데, Nimrodel의 동행인들 중 하나였는데, Nimrodel과 그녀의 소녀들은 숲이 있는 구릉에서 머물다 길을 잃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Imrazôr가 Mithrellas를 숨겨주고는, 그녀를 아내로 취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아들 Galador와 딸 Gilmith를 낳고는, 밤중에 도망쳐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Mithrellas는 하위 숲 종족 출신이(며 고위 혹은 회색요정이 아니)긴 했지만, Dol Amroth의 영주들의 가문과 혈족은 얼굴과 정신이 아름다웠던 만큼 그들은 혈통적으로 고귀하였다고 늘 여겨졌다.


Elessar

Celeborn과 Galadriel의 역사에 관해서는, ‘Elessar’란 제목을 단 넉 장짜리의 매우 거친 원고 말고는, 발표되지 않은 저술에서는 달리 찾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것은 작문의 첫 단계에 있는 것이지만, 연필로 쓴 교정된 것들이 약간 실려 있는데, 어떤 또다른 변형판이란 없다. 그것은 약간의 매우 사소한 편집적인 교정과 함께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Gondolin에는 Fëanor의 사후로 Noldor 가운데 그 기교에 있어 가장 위대하였던, Enerdhil이라 불리는 보석세공인이 있었다. Enerdhil은 모든 자라나는 푸른 것들을 사랑하였고, 그의 가장 큰 기쁨은 나뭇잎들을 통해 햇빛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태양의 그 선명한 빛을 내부에 가둘 보석 장신구를 만들자는게 그의 마음 속에 떠올랐지만, 그 보석 장신구는 나뭇잎처럼 녹색이어야 했다. 그리고는 그는 이것을 만들어냈고, Noldor 조차 그것에 경탄하였다. 이 돌을 통해 본 이들은 시들거나 바싹 마른 것들이 다시 치유되는 것을, 아니면 그것들이 젊음이라는 은총을 입는 것처럼 보았다고, 그리고 그것을 쥔 자의 손은 그것이 만지는 모든 것이 상처에서 치유되도록 하였다고 하니 말이다. 이 보석을 Enerdhil은 왕의 딸 Idril에게 주었고, 그녀는 가슴에 그것을 달았는데, 그래서 그것은 불타오르는 Gondolin으로부터 구해졌다. 그리고 Idril은 출항하기에 앞서 그녀의 아들 Eärendil에게 ‘중간대륙에는 그대가 치유해야 할지 모를 심한 상처들이 많으므로, 나는 그대와 함께 Elessar를 남긴다. 하지만 그대는 다른 누구에게도 그것을 넘겨주지 말지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로 Sirion의 항구에는 인간과 요정들 모두에게서, 그리고 저 북부의 공포로부터 도망쳐 온 짐승들에게서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많았는데, Eärendil이 거기서 사는 동안 그들은 치유받고 번영하였으며, 모든 것들이 한동안 푸르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Eärendil이 저 바다로 그의 위대한 항해를 시작하였을 때, 그는 탐색하는 내내 Idril을 아마 다시 찾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늘 앞에 있었으므로, Elessar를 자기 가슴에 달았는데, 중간대륙에 대한 그의 첫 기억은, Gondolin이 아직 한창이었던 동안 그녀가 그의 요람 위에서 노래할 때 그녀의 가슴 위에 있던 그 초록빛 돌이었다. 그래서 Eärendil이 중간대륙으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을 때, 그 Elessar는 떠나간 것이었다.
    뒤이은 시대에 Elessar는 다시 있었고,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들이 전해지니, 다만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지금은 사라진 저들 현자만이 말해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 두번째 것은 실로 오직 Valar의 은총으로 돌아온 첫번째 것이었다고, 그리고 (중간대륙에서는 Mithrandir라고 알려진) Olórin이 그것을 서부 밖으로 갖고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때에 Olórin은 이제는 거대한 Greenwood(푸른숲)의 나무들 아래에서 거주하던 Galadriel에게로 왔는데, 그들은 함께 긴 담화를 가졌다. 그녀의 망명의 세월은 그 Noldor의 귀부인을 무겁게 내리누르기 시작하였고, 그녀는 자신의 혈족의 소식과 자기가 태어난 그 축복받은 땅을 그리워 하였음에도, 중간대륙을 저버리는 것은 내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문장하였지만, 아직 중간대륙을 저버리도록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었다로 정정되었다]. 그리고 Olórin이 수많은 소식들을 그녀에게 전하자,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잎들이 떨어지고 꽃들이 시들므로 저는 중간대륙에서 비탄에 잠겨 있으며, 제 마음은 죽지 않는 나무들과 풀밭을 기억하며 갈망합니다. 저는 제 집에서 이것들을 가지려고 하였죠.’라고 말했다. 이윽고 Olórin이 ‘그러면 Elessar를 가지시겠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Galadriel이 ‘그 Eärendil의 돌은 이제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그것을 만들었던 Enerdhil은 사라졌군요.’라고 말했다. ‘누가 아오?’ Olórin이 말했다. ‘분명히 그들은 바다를 건너갔죠, 그 옆의 아름다운 것들 거의 모든 것들처럼요.’ Galadriel이 말했다. ‘그러면 중간대륙은 영원히 시들고 소멸해야만 하는 건가요?’ ‘그것이 그 운명이오.’ Olórin이 말했다. ‘그래도 만약에 그 Elessar가 돌아온다면, 그것은 약간 동안은 좋아질지도 모르오. 인간의 시절(Days of Men)이 도래하는 때까지 약간 동안 말이오.’‘만약이라 — 그래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요?’ Galadriel이 말했다. ‘분명히 Valar께서는 이제 모습을 감추셨고, 중간대륙은 그분들의 생각에서 멀리 있으며, 그것에 집착하는 모든 이는 그늘 아래에 있는 것일 텐데요.
    ‘그렇지 않소.’ Olórin이 말했다. ‘그분들의 눈은 흐릿하시지도 그분들의 마음은 완고하시지도 않소. 어느 쪽에 대하여든 증표로 이것을 보시오!’ 그리고 그는 그녀 앞에서 Elessar를 쥐었고, 그녀는 그것을 보고는 놀랐다. 그리고 Olórin은 ‘이것을 나는 Yavanna께로부터 당신께 가져왔소. 당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그것을 사용하시고, 한 동안 당신은 중간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살면서 당신의 땅을 만들어야 할거요. 하지만 당신이 소유하라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때가 왔을 때 그것을 넘겨주어야 할 것이오. 당신이 점차 피곤해 져, 마침내 중간대륙을 저버리기에 앞서, 그것을 받기로 되어 있는 한 사람이 올 것이고, 그의 이름은 그 돌의 그것이 될 것이니, Elessar라 그는 불릴 것이오.’라고 말했다.19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니, 오래 전 Sauron이 Eregion의 장인들을 현혹시키기 전에, Galadriel이 거기로 와, 요정장인들의 우두머리인 Celebrimbor에게 ‘내가 사랑하는 잎들이 떨어지고 꽃들이 시들므로 저는 중간대륙에서 비탄에 잠겨 있으며, 내가 사는 땅은 봄을 되찾을 수 없다는 낙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들이 중간대륙에 붙어 있으면, 그곳이 달리 어찌 Eldar를 위해 있을 수 있겠습니까?’ Celebrimbor가 말했다. ‘그러면 바다를 건너가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녀가 말했다. ‘Angrod가 사라졌고, Aegnor가 사라졌으며, Felagund는 더 이상 없습니다. Finarfin의 자식들 중 제가 마지막이에요.20 하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긍지를 가졌답니다. 제가 Valar의 용서를 구하거나, 축복받은 곳 Aman이 태어난 땅인 제가 저 바다에 있는 한 섬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로, Finarfin의 황금 가문이 무슨 잘못을 했던 거죠? 여기에서 나는 보다 강력해요.
    ‘그러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Celebrimbor가 말했다.
    ‘저는 제 주위로 죽지 않는 나무들과 풀밭을 가지려고 하였죠 — 여기 제 것이 된 땅에서요.’ 그녀가 대답했다. ‘Eldar의 솜씨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리고 Celebrimbor는 ‘그 Eärendil의 돌은 이제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만들었던 Enerdhil은 사라졌군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바다를 건너갔죠, 그 외의 아름다운 것들 거의 모두와 함께요.’ Galadriel이 말했다. ‘그러면 중간대륙은 영원히 시들고 소멸해야만 하는 건가요?
    ‘그것이 그 운명이라 전 생각합니다.’ Celebrimbor가 말했다. ‘하지만 부인은 (비록 부인은 그 나무들의 Celeborn께로 돌리셨지만) 제가 부인을 사랑한다는 걸 아시고, 제 기예로 우연히도 부인의 비탄을 덜어낼 수만 있다면, 그 사랑을 위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오래 전 Gondolin 출신이었으며, Enerdhil의 친구였다고는 Galadriel에게 말하지 않았으니, 비록 대부분의 것들에서 그의 친구가 그를 이기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Enerdhil이 없었다면, Celebrimbor는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생각에 잠기더니, 기나긴 섬세한 작업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그는 Galadriel을 위해 그의 작품들 중 (그 세 반지들만 제외하고) 가장 위대한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그 초록빛 보석은 Enerdhil의 그것보다 더 미묘하고 선명하였지만, 그럼에도 그 빛은 덜한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Enerdhil의 그것은 젊은 시절의 태양에 의해 밝혀졌던 반면, Celebrimbor가 자신의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미 많은 세월이 지나갔고, 비록 Morgoth가 저 허공으로 내쫓아져 다시는 들어 올 수 없긴 했지만, 그의 먼 그림자가 그것에 드리워졌으므로, 중간대륙 어디에서도 그 빛은 예전에 그랬었던 만큼 선명치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Celebrimbor의 Elessar는 환하였는데, 그는 날개를 펴고 솟아오르는 독수리 형상의 커다란 은제 브로치 안에 그것을 박았다.21 그 숲으로의 저 그림자의 도래 때까지는, 그 Elessar를 다루어 Galadriel의 주위에서 모든 것이 아름답게 자라났다. 하지만 후에 그 셋 중에서 최고인 Nenya가22 Celebrimbor에 의해 그녀에게 전해졌을 때, 그녀는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그것이 더 이상 필요치 않아, 그것을 자신의 딸 Celebrían에게 주었고, 그래서 그것은 Arwen에게로 그리고 Elessar라 불린 Aragorn에게로 왔다.

그 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Elessar는 Gondolin에서 Celebrimbor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Idril에게로 이어서 Eärendil에게로 왔다. 하지만 그것은 떠나갔다. 하지만 두번째 Elessar가 Eregion에서 역시 Celebrimbor에 의해 (그가 사랑하는) Galadriel 귀부인의 요청으로 만들어졌으며, 그것은 Sauron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만들어져, 그 하나 하에 있지 않았다.

    이 글은 어떤 특징들에서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와 동조하며, 아마도 대략 같은 때에, 아니면 조금 더 일찍 쓰여졌을 것이다. Celebrimbor는 여기서는 다시 Fëanor인들(Fëanorians) 중 하나라기 보단(여기와 비교하라), Gondolin의 보석세공인인데, Galadriel은 중간대륙을 저버리는 것이 내키지 않다고 한다(여기와 비교하라) — 비록 그 원문은 나중에 교정되어, 그 금지령에 대한 구상이 소개되었고, 그리고 이 글의 더 나중 지점에서는 그녀가 Valar의 용서에 대해 이야기하긴 하지만 말이다.
    Enerdhil은 어떤 다른 저술에서도 나오지 않는데, 그 원문의 결말짓는 말은 Celebrimbor가 Gondolin에서 Elessar를 만든이로 그를 대신하기로 되었음을 보여준다. Celebrimbor의 Galadriel에 대한 사랑에 대해 그 외 다른 데에는 어떤 흔적도 없다.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에서 암시하는 것은 그가 그들과 함께 Eregion으로 왔었다는 것이나(여기), 그 본문에서는 Silmarillion에서 대로, Galadriel은 Celeborn을 Doriath에서 만났으니, ‘비록 부인은 그 나무들의 Celeborn께로 돌리셨지만’이라는 Celebrimbor의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거대한 Greenwood의 나무들 아래에서’의 Galadriel의 거주에 대한 언급도 또한 애매하다. 이것은 Lórien의 숲을 Anduin의 반대편에 포함시키려는 표현의 (어느 다른 데에서도 명시되지 않은) 산만한 사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숲으로의 저 그림자의 도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II)에서‘숲 속의 그림자’라 불리는 Sauron의 Dol Guldur에서의 일어남을 말한다. 이것은 Galadriel의 세력이 예전에는 거대한 Greenwood의 남쪽 지방에까지 확장하였음을 내포하는데, 이를 위한 뒷받침은 Lórinand (Lórien) 나라는 ‘훗날 Dol Guldur라던 지역을 포함하여, 저 대하의 양편의 숲들까지로 확장되었다’고 하는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의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또한, 똑같은 구상이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에서의 진술의 근저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니, 그 첫번째 판본의 제이 시대 연대 이야기의 두주에서 ‘Sindar 중 다수가 동쪽으로 건너가 멀리 떨어진 숲 속에 나라들을 수립하였다. 이들 중 주요한 이는 거대한 Greenwood의 북쪽에 있는 Thranduil과 그 숲의 남쪽에 있는 Celeborn이었다.’라고 나왔었듯이 말이다. 그 개정판에서 Celeborn에 관한 이 논평은 빠졌고, 대신에 그의 Lindon에서의 거주에 대한 (위의 여기에서 인용된) 언급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Elessar에게 있었던 Sirion 항구에서의 그 치유 능력은 Silmarillion(247쪽)에서는 그 Silmaril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주해

1 여기의 부록 E를 보라.
2 미발표된 자료에 있는 주에서는, Harlindon 혹은 Lune의 남쪽의 Lindon의 요정들은 Sindarin 태생이 대부분이었고, 그 지역은 Celeborn의 통치 하의 봉토였다고 한다. 이것을 부록 B의 그 진술과 연관 짓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1697년의 Eregion의 함락 이후의 Celeborn과 Galadriel의 이동과 거주 장소는 극도로 애매하므로, 그 언급은 아마 더 나중의 시기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3 반지 원정대 I 2에서 ‘고대의 동서 도로(East-West Road)는 Shire를 통과하여 회색항구에 있는 그 끝에까지 이어졌으며, 난장이들은 청색산맥에 있는 자기들 광산들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그것을 이용했었다.’라는 것과 비교하라.
4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II)에서는 Nogrod와 Belegost의 고대 도시들은 Thangorodrim이 부숴지는 중에 파괴되었다고 하나, 부록 B에 있는 연대 이야기에서는 ‘40년경 많은 난장이들이 Ered Luin에 있는 자신들의 옛 도시들을 떠나, Moria로 가 그곳의 수를 늘리다.’라고 한다.
5 그 원문의 주에서는 Lórinand는 (훗날 LórienLothlórien이라 불린) 이 지역의 Nandorin 이름이었고, ‘황금의 계곡’에서 ‘황금빛’을 의미하는 요정어 단어를 함유하였다고 설명한다. 그 Quenya형은 Laurenandë, Sindarin은 Glornan 또는 Nan Laur였을 것이다. 여기와 그 외 다른 데에서 모두 그 이름의 의미는 Lothlórien의 황금빛 mallorn나무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 설명하나, 그것들은 Galadriel에 의해 거기로 가져와졌으며 (그것들의 기원에 대한 내용은 여기를 보라), 더 나중의 또다른 논문에서는 Lórinand는 그 자체가 더더욱 옛날 이름인 ‘가수들의 땅의 골짜기(Vale of the Land of the Singers)’, Lindórinand가 mallorn들이 전래된 이후에 변형된 것이었다고 한다. 이 땅의 요정들은 Teleri에서 기원하였으므로, Teleri가 자신들을 부르던 ‘가수들(Singers)’, Lindar라는 이름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이름들끼리 어느 정도는 불일치하는 Lothlórien의 이름들에 대한 많은 다른 논문들로부터는, 더 나중의 모든 이름들이, laurë ‘금’, nan(d) ‘계곡’, ndor ‘땅’, lin- ‘노래하다’라는 별개의 요소들을 결합시킨, 그리고 (나무수염(Treebeard)이 그 Hobbit들에게 보다 이른 이름이었다며 전했던) ‘노래하는 황금의 계곡(Valley of Singing Gold)Laurelindórinan에서 Valinor에서 자랐던 그 금빛 나무(Golden Tree)의 이름을 일부러 모방한, Galadriel 본인에게서 아마 기인했을 것이라고 드러나는데, ‘솔직하자면, 그것에 대한 Galadriel의 갈망은 해가 거듭되면서 결국에는 압도적인 후회로 커져갔다.
    Lórien 그 자체는 원래 ‘휴식과 그늘진 나무들과 분수들의 터, 근심과 비탄으로부터의 피난처’라는 Valinor에 있는 한 지역의 Quenya 이름으로, 종종 그곳을 소유한 Vala (Irmo)의 이름으로써 사용되었다. Lórinand ‘황금의 계곡(Valley of Gold)’에서 Lórien으로의 더 나중의 변화는 ‘Galadriel 본인에게서 기인했던 것이 당연하니’, 왜냐하면 ‘그 유사함이 우연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는 평온과 아름다움의 안식처이자 섬인 Lórien을 고대 시절의 기념물로 만들려고 애써왔지만, 그 황금빛 꿈이 회색빛 자각을 앞당기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이제는 후회와 의혹들로 가득찼다. 나무수염이 Lothlórien을 ‘꿈꽃(Dreamflower)’으로 해석했던 것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 속에서 나는 전부 Lórinand라는 이름을 유지하였는데, 비록 그것이 쓰여졌을 때에는 Lórinand가 그 지역의 원래이자 고대의 Nandorin 이름으로 예정되었고, Galadriel에 의한 mallorn의 전래에 대한 내용은 아직 고안되지 않았긴 했지만 말이다.
6 이것은 더 나중에 교정된 것인데, 처음에 쓰인 원문에서는 Lórinand는 토착 지배자들에 의해 통치되었다고 진술하였다.
7 한 따로 분리되고 날짜가 없는 주에서는, 비록 Sauron이라는 이름이 연대 이야기에 있는 이것보다 더 일찍부터 사용되지만, Silmarillion에서 Morgoth의 위대한 부관과 동일인임을 내포하는 그의 이름은, 한반지가 주조되던 때인 제이 시대 약 1600년까지는 실제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 불가사의한 적대적인 세력은 요정과 Edain에게는 500년이 조금 지나서, Númenor인 가운데에서는 Aldarion을 통해 (대략 그가 Vinyalondë 항구를 설립하였던, 여기) 팔 세기 말기 정도에 인지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알려진 중심부가 없었다. Sauron은 유혹하는 이라는 자신의 두가지 면을 뚜렷이 하려고 애썼다. 그는 Noldor 가운데로 왔을 때 (일종의 더 나중의 Istari를 미리 흉내낸) 그럴 듯한 가장 아름다운 형상과 Artano ‘높은 대장장이(high-smith)’ 혹은 Vala Aulë에 대한 복무에 전념하는 이를 의미하는 Aulendil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채택하였다. (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 287쪽에서는, 이무렵 Sauron이 스스로에게 준 이름은 선물의 군주 Annatar였으나, 그 이름은 여기에서는 거론되지 않는다.) 그 주는 이어서 Galadriel은 이 Aulendil은 Valinor에서 Aulë의 수행원 중에 있지 않았다고 말하며 속지 않았다고 하나, ‘Aulë는 “Arda의 건설” 전에 존재하였고, Sauron은 사실 “Arda가 시작하기 전에” Melkor에게 매수된, Aulë의(Aulëan) Maiar 중 하나였을 공산이 있으므로, 이것은 확정적이지 않다.’ 이것과 ‘옛적에 Sauron이라는 Maia가 있었다.... Arda의 초기에 Melkor가 그에게 충성토록 그를 꼬드겼다.’는 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의 처음 문장을 비교하라.
8 1954년 9월에 쓴 편지에서 내 아버지는 ‘제이 시대 초기에 그[Sauron]는 여전히 보기에 아름다웠거나, 아니면 여전히 아름답게 눈에 보이는 외형을 꾸밀 수 있었습니다 — 실로 완전히 사악하지는 않았으니, 긍지, 그리고 의지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열망이 “재건”과 “재편”에 열중하기도 전에, 이것들을 서두르기를 원하는 모든 “개혁가들”이 완전히 사악하지 않다면 말이죠. 고위 요정들(High Elves) 중 특정 분가는 Noldor 혹은 석학들이, 우리식으로 부르자면 “과학과 기술”이라는 쪽에서 늘 취약하다고 근심하였으니, 그들은 Sauron이 순수하게 지녔던 학식을 갖기를 원하였고, Eregion의 저들은 Gil-galad와 Elrond의 경고를 거절하였던 거죠. Eregion 요정들의 그 독특한 “욕구”는 — 만일 당신이 기계에 대한 애착과 기술적 장치들을 좋아한다면 “비유”가 되겠죠 — 또한 Moria의 난장이들과의 그들의 특별한 우정을 통해 상징화 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9 Galadriel은 그 지배 반지(Ruling Ring)의 분실 이후로 훨씬 나중의 시간까지는 Nenya의 능력들을 사용했을 리가 없으나, (비록 그녀가 Celebrimbor에게 요정 반지들(Elven Rings)은 절대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바로 위에서 전하는 데도 불구) 그 원문은 이를 전혀 암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10 그 원문은 ‘첫 백색 회의(White Council)’로 정정되었다. 연대 이야기에서 백색 회의의 성립은 제삼 시대의 2463년 난에 실려있으나, 제삼 시대의 회의의 그 이름은 오래 전에 개최된 이 회의의 그것을 일부러 모방한 것일 지도 모르니, 한 쪽의 주요 회원들 중 몇몇은 다른 쪽의 회원들이었던 만큼 특히 더욱 그렇다.
11 이 글의 더 먼저(여기)에서는 Gil-galad 본인이 Celebrimbor에게서 붉은 반지 Narya를 받자마자 그것을 Círdan에게 주었다고 하며, 이것은 Círdan이 처음부터 그것을 보유하였다는,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와 권능의 반지들에 대하여에 있는 진술들에 부합한다. 다른 것들과 불일치하는 여기서의 저 진술은 그 원문의 여백에 덧붙어졌다.
12 숲 요정들과 그들의 언어에 대해서는 여기의 부록 A를 보라.
13 Lórien의 경계에 대해서는 여기의 부록 C를 보라.
14 Eä of the RingDor-en-Ernil이란 이름의 기원은 어디에도 실려있지 않은데, 그것이 출현하는 유일한 다른 데는 반지들의 제왕에 있는 Rohan, Gondor 및 Mordor의 커다란 지도에서이다. 그 지도 상에서 그것은 Dol Amroth에서부터의 산맥의 다른 쪽 면에 놓여져 있지만, 지금 문맥에서 그것이 출현한다는 것은 Ernil이란 (어떻게든 생각이 들 수 있을) Dol Amroth의 제후였음을 암시한다.
15 숲 요정들의 Sindarin 지배자들에 대해서는 여기의 부록 B를 보라.
16 그 설명은 Amroth란 이름에서의 첫번째 요소는 Quenya의 amba ‘위로’와 똑같은 요정어 단어이며 또한 가파른 사면들로 된 언덕이나 산이라는 Sindarin의 amon에서도 찾아진다고 추정하는데, 한편 두번째 요소는 ‘오르다’를 의미하는 어간 rath-로부터의 파생어(인데, Gondor에서 사용된 Númenor인의 Sindarin에서의 명사 rath는 Minas Tirith의 보다 긴 모든 도로들과 거리, 비탈진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되었으니, 그 성채에서부터 왕묘(Tombs of the Kings)로 내려가는 Rath Dínen, 침묵의 거리(Silent Street)가 그렇)다.
17 Amroth와 Nimrodel의 전설에 대한 ‘간결한 상술’에서는 Amroth가 ‘Nimrodel에 대한 그의 사랑 때문에’(여기) Cerin Amroth의 나무들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18 Eä of the RingBelfalas에 있는 그 요정들의 항구의 터는 Pauline Baynes가 장식한 중간대륙의 지도 상에 Edhellond(‘요정항구(Elf-haven)’, Silmarillion의 부록의 edhellondë 난을 보라)란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나는 이 이름이 그 외 또 나오는 것은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여기의 부록 D를 보라. Tom Bomdadil의 모험 (1962년) 8쪽에서 ‘Langstrand와 Dol Amroth에는 고대 요정의 거처들에 대해, 그리고 제이 시대에 Eregion의 함락 때만큼이나 멀리 거슬러 올라가, “서쪽을 향하는 배들”이 출항하였던 Morthond 하구의 항구에 대해 많은 전승들이 있었다.’라는 것과 비교하라.
19 이것은, Galadriel이 그 초록빛 돌을 Aragorn에게 주면서 ‘이 시간에 당신에게 예언되었던 그 이름을 받으세요, Elendil 가문의 요정석(Elfstone) Elessar!’라고 말했던 반지 원정대 II 8에 있는 구절과 일치한다.
20 여기 본문과 다시 바로 아래는 Finrod로 되어 있는데, 나는 혼동을 피하도록 Finarfin으로 바꾸었다. 1966년에 반지들의 제왕의 개정판이 출판되기에 앞서, 내 아버지는 Finrod를 Finarfin으로 바꾸셨고, 한편 이전에 Inglor Felagund로 불렸던 그의 아들 Felagund는 Finrod Felagund가 되었다. 그 부록 B와 F의 두 구절들은 그 개정판을 위해 적절히 교정되었다. — Galadriel의 형제 가운데, Finrod Felagund 이후의 Nargothrond의 왕 Orodreth가 여기서 그녀를 통해 불리지 않는 것이 눈에 띈다. 나에게 알려져 않은 이유로, 내 아버지는 그 Nargothrond의 두번째 왕을 옮겨, 그를 같은 일가의 다음 세대의 일원으로 만드셨으나, 이것과 그와 연관된 변화들은 Silmarillion의 글들에서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21 그러고서[Galadriel은] 선명한 초록빛을 띄는 커다란 돌을 무릎에서 들어올리니, 그것은 날개를 편 독수리 형상으로 만든 은제 브로치 속에 박혀있었는데, 그녀가 그것을 쥐어들자, 그 보석은 봄에 나뭇잎들을 통과하여 비치는 태양처럼 반짝였다.’라고 하는 반지 원정대 II 8에서의 그 요정석에 대한 기술과 비교하라.
22 하지만 그 푸른 반지가 Elrond의 손가락에서 보여지는 왕의 귀환 VI 9에서는, 그것은 ‘그 셋 중에서 가장 강력한 Vilya’라고 불린다.


부록

부록 A
숲 요정들과 그들의 언어

Silmarillion(94쪽)에 따르면, 안개산맥의 동쪽 면에서 Eldar의 행진을 그만 둔 Telerin 요정들인 Nandor 중 어떤 이들은 ‘저 대하의 골짜기의 숲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고, 한편 다른 이들은 Anduin을 그 하구까지 따라 내려갔고, 또 다른 이들은 Eriador로 들어갔으니, 바로 이들로부터 Ossiriand의 녹색요정들이 왔다고 한)다.
    Galadriel, Celeborn과 Lórien의 이름들에 대한 최근의 어원학적인 논문에서는, Mirkwood의 숲 요정들과 Lórien은 Anduin 골짜기에 잔류하였던 Telerin 요정들에서 유래되었음이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숲 요정들(Tawarwaith)은 기원이 Teleri이었으며, 그래서 Sindar의 더 먼 혈족이었으니, 비록 Valinor의 Teleri보다도 더욱 오래 전에 그들로부터 갈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들은 Teleri 중에서 대장정 중에 안개산맥에 위압되어 Anduin의 골짜기에서 처져서, Beleriand나 그 바다에는 결코 이르지 못했던 이들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들은 그러므로 결국 그 산맥을 넘어가 마침내 Beleriand로 들어온 Ossiriand의 (다르게는 녹색요정들로 불리는) Nandor와 더 가까운 혈족이었다.

숲 요정들은 안개산맥 너머의 삼림지대의 도피처에 스스로를 숨겨, 작고 흩어진 민족이 되어, Avari와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

으나,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기원이 세번째 씨족(Third Clan)의 일원들인 Eldar임을 기억하여, 바다를 건너가지 않고 동쪽으로 이주한 Noldor와 특히 Sindar인 이들을 [즉 제이 시대 초기에] 환영하였다. 이들의 지도력 하에 그들은 다시 질서있는 민족이 되었고, 지혜가 늘어났다. 저 아홉 보행자들(Nine Walkers) 중 Legolas의 아버지 Thranduil은 Sindarin이었으며, 그 말은 그의 모든 민족은 아니긴 했지만, 그의 집안에서 사용되었다.
    Lórien에서는 그 백성들 중 다수가 태생이 Sindar이거나, 아니면 Eregion에서 온 생존자들인 Noldor로
[여기를 보라], Sindarin이 모든 백성들의 언어가 되었다. 그들의 Sindarin이 Beleriand의 형식과 어떤 식으로 다른지는 — 그 숲의 요정 민족이 그들끼리 사용하는 언어가 서부의 그것과는 닮지 않았다고 Frodo가 전하는, 반지 원정대 II 6을 보라 — 물론 지금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주로 모음 소리와 억양의 차이, 지금은 ‘강세’라고 흔히 불리곤 하는 데 불과한 것에서 아마 달랐을 것이니, Frodo처럼 보다 순수한 Sindarin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를 오해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물론 또한 이전 숲 요정들의 말의 영향으로 결국 생겨난 어떤 그 고장 특유의 단어들 및 다른 특징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Lórien은 바깥 세상으로부터 오랫동안 매우 격리되었었다. 분명히 AmrothNimrodel 같은 그곳의 과거로부터 보존된 어떤 이름들은, Sindarin으로는 비록 그것을 형태에 맞춘다 해도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Caras는 Sindarin에서는 찾아지지 않는, 해자로 둘러싼 요새라는 옛 단어인 듯 하다. Lórien은 아마도 지금은 잃어버린 보다 옛 이름의 변형일 것이다 [비록 더 먼저에서 그 본래의 숲 요정들의 혹은 Nandorin 이름은 Lórinand라고 진술되긴 했지만 말이니, 여기의 주해 5를 보라].

숲 요정들의 이름들에 대한 이들 논평들과,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F (I)의 ‘요정들에 대하여’ 편의 (그 개정판에만 있는) 각주를 비교하라.
    숲 요정어(Silvan Elvish)에 관한 또 다른 일반적인 진술이, 방금 인용되었던 것과 똑같은 최근의 시기로 날짜가 적힌 한 언어학의 역사에 대한 논문에서 찾아진다.

비록 숲 요정들이 오래 전에 헤어졌던 그들의 일족을 다시 만났을 때에 그들의 방언들은 거의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Sindarin에서 아주 멀리 갈라져 나왔지만, 그들의 혈연관계를 Eldarin 말들로 밝히기 위해 공부할 필요는 거의 없었다. 비록 그 숲 요정들의 방언들과 그들 고유의 언어를 비교하는 데에 석학자들이 많이, 특히 Noldorin 태생인 이들이 흥미를 갖긴 했지만, 그 숲 요정어에 대해 지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숲 요정들은 어떤 글쓰는 양식도 발명하지 않았으며, Sindar에게서 이 기예를 배운 이들은 Sindarin으로는 가능한 만큼 잘 썼다. 제삼 시대 말기까지 숲 요정들의 말들은 아마도 반지 전쟁의 무렵 때 중요성을 가졌던 Lórien과 Mirkwood 북쪽의 Thranduil의 나라, 두 지역들에서 말하는 게 중지되었을 것이다. 약간의 단어들과 몇몇의 인명 및 지명들이 그것들 중 기록들 속에 잔존한 전부였다.


부록 B
숲 요정들의 Sindarin 지배자들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B에 있는 제이 시대의 연대 이야기의 두주에서는, ‘Barad-dûr의 건설 이전에 Sindar 중 다수가 동쪽으로 건너가, 일부는 멀리 떨어진 숲 속에 나라들을 수립하였는데, 그들의 백성들은 주로 숲 요정들이었다. 거대한 Greenwood의 북쪽의 왕 Thranduil이 이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들 숲 요정들의 Sindarin 지배자들에 대해 더 많은 무언가가 내 아버지의 최근의 문헌적인 저술들에서 찾아진다. 이를테면 한 평론에 의하면, Thranduil의 나라는,

Moria에서 망명한 난장이들이 오고 그 용의 침략이 있기에 앞서, 외로운 산(Lonely Mountain)을 둘러싸고 긴 호수(Long Lake)의 서부 연안을 따라 자라던 숲까지 확장하였다. 이 나라의 요정 민족은 남쪽으로부터 이주해온 Lórien의 요정들의 혈족이자 이웃이었으나, 그들은 Anduin의 동쪽의 거대한 Greenwood에서 살았었다. 제이 시대에 [Legolas의 아버지 Thranduil의 아버지인] 그들의 왕 Oropher은 Gladden(창포) 벌판 너머의 북쪽으로 물러났다. 그는 이것을, 역사에 기록된 난장이들의 대저택들 중 가장 위대한 곳으로 성장하였던 Moria의 난장이들의 세력과 침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하였는데, 그는 또한 Celeborn과 Galadriel이 Lórien에 개입하는 것에 분개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Greenwood와 저 산맥 사이에는 두려울게 거의 없었으며, 그의 백성과 그 강 건너의 그들의 혈족 간에는 마지막 동맹 전쟁 때까지 변함없는 교류가 있었다.
    Noldor와 Sindar, 아니면 다른 어떤 민족이든, 난장이, 인간 또는 Orc들의 사정에 가능한 적게 참견하려는 숲 요정들의 요망에도 불구하고, Oropher는 Sauron이 정복되지 않으면 평화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지혜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는 그의 엄청난 백성들로 된 거대한 군단을 집합시켜, Lórien의 Malgalad의 보다 적은 군단과 합류, 숲 요정들의 군대를 전투로 인솔하였다. 숲 요정들은 강하고 용맹하였지만, 서부의 Eldar에 비해 갑옷과 무기들로 잘 무장되지 못하였는데, 또한 그들은 독자적이며, 자신들을 Gil-galad의 최고 사령부 하에 배속시킬 마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손실은 그들이 그 지독한 전쟁에서 조차 필요로 했던 것보다 더욱 통탄스러웠다. Dagorlad의 저 위대한 전투에서 Malgalad와 그의 수행원 중 절반 이상이 그 주력 군대와 차단되고 죽음의 늪지대(Dead Marshes)로 몰리면서 숨졌다. Oropher는 Mordor로의 첫 강습에서, Gil-galad가 전진하라는 신호를 주기도 전에 그의 가장 담대한 전사들의 맨 앞에서 돌진하다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Thranduil은 살아남았지만, 그 전쟁이 끝나고 (그리 보였다시피) Sauron이 살해되었을 때, 그는 전쟁으로 행군하였던 그 군단의 겨우 삼 분의 일을 고국으로 인솔해 돌아왔다.

Lórien의 Malgalad는 다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으며, 여기에서는 Amroth의 아버지라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Amroth의 아버지 Amdír는 두 차례 (위의 여기여기) Dagorlad 전투에서 전사하였다고 하며, 그러므로 Malgalad는 간단히 Amdír와 동일시 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어느 이름이 다른 것을 대체했던 것인지는 나는 말할 수 없다. 이 평론은 계속된다.

숲 요정들이 다시 성장하는 긴 평화가 뒤이어 왔으나, 그들은 제삼 시대가 가져오려는 세상의 변화를 느끼며 초조하고 근심하였다. 또한 인간들이 수적으로 세적으로 증가하였다. Gondor의 Númenor인 왕들의 지배권은 Lórien과 Greenwood의 경계를 향해 북쪽으로 뻗치고 있었다. (Dúnedain의 통치 하에 있지 않으며, 대부분이 Sauron이나 그의 종복들의 지배를 받지 않았으므로, 요정들이 그렇게 부르는) 북부의 자유인들(Free Men)은 남쪽으로, 주로 Greenwood의 동쪽으로 퍼지니, 비록 일부는 그 숲의 처마와 Anduin 골짜기 지대의 초원에서 자신들의 기반을 세우고 있었지만 말이다. 더 심상치 않은 것은 야인들(Wild Men)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저 멀리 동부에서 오는 소문들이었다. Sauron의 이전 종복들과 숭배자들인 그들은 이제 그의 폭정으로부터 풀려났지만, 그가 그들의 마음 속에 놓은 그 사악과 암흑으로부터는 아니었다. 잔인한 전쟁들이 그들 사이에 격심하여, 일부는 서부에 사는 모두를 학살하고 약탈할 적으로 간주하며, 증오로 가득한 정신으로 서쪽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Thranduil의 마음 속에는 더욱 더 깊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는 Mordor의 공포를 보았었고, 그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언제고 남쪽을 보면 그 기억이 태양 빛을 어둑하게 하였고, 비록 그곳은 이제 깨부수어지고 비워졌으며, 인간의 왕들(Kings of Men)의 경계 하에 있음을 그도 알긴 했지만, 그곳은 영원히 정복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그곳은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그의 마음 속에서 말하였다.

    상술한 것과 같은 무렵에 쓰인 또 다른 구절에 의하면, 제삼 시대의 천 년이 지나고, 그 그림자가 거대한 Greenwood에 드리어졌을 때, Thranduil의 통치를 받는 숲 요정들은

그것이 계속 북쪽으로 퍼져가자 그것에 쫓겨 물러났고, 마침내 Thranduil은 그 숲의 북동쪽에서 그의 나라를 수립하고, 거기에서 지하에 요새와 거대한 전당들을 팠다. Oropher는 Sindarin 태생이었고, 그의 아들 Thranduil이 오래 전 Doriath에서의 Thingol 왕의 예를 따르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비록 그의 전당들이 Menegroth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는 난장이들의 기예도 부도 도움도 갖지 못했는데, Doriath의 요정들과 비교하면 그의 숲의 요정 민족은 허름하고 소박하였다. Oropher는 오직 몇몇의 Sindar와 함께 그들 가운데로 왔었고, 그들의 언어를 차용하고, 숲 요정들의 형태와 형식으로 이름들을 취하면서, 그들은 곧 숲 요정들과 동화되었다. 이것을 그들은 일부러 하였던 것이니, 그들(과 전설들 속에서 잊혀지거나 오직 간단하게 이름이 불리는 다른 유사한 모험가들)은 Doriath의 파괴 이후에 그곳으로부터 왔고, 중간대륙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Doriath의 민족이 대단한 애정이 없는 저 Noldorin 망명자들에게 지배를 받으며 Beleriand의 다른 Sindar와 합쳐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실로 저 숲의 요정 민족이 되기를, 그리고 그들이 말했다시피, 그 Valar의 초청으로 어지럽혀지기 이전의 요정들에게 자연스러웠던 단순한 생활로 되돌아가기를 바라였다.

여기서 기술된 대로 Mirkwood의 숲 요정들의 Sindarin 통치자들이 숲 요정들의 언어를 차용한 것이, 제삼 시대 말기까지 숲 요정어는 Thranduil의 나라에서 말하는 게 중지되었다는, 여기에서 인용된 진술과 어떻게 관계되는 지는 어디에서도 명확히 해주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저 뒤에 여기의 ‘Gladden 벌판의 재난’의 주해 14를 보라.

부록 C
Lórien의 경계

반지들의 제왕의 부록 A (I, iv)에서는, Gondor 왕국은 Hyarmendacil I (삼 시대 1015–1149년)의 시절에 그 세력의 절정일 때 북쪽으로 ‘Celebrant와 Mirkwood의 남쪽 처마까지’ 확장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내 아버지는 오류이니, 올바른 글은 ‘Celebrant 벌판까지’여야 한다고 여러 번 진술하셨다. 중간대륙의 언어들의 상관관계에 대한 당신의 마지막 저술에 따르면,

Celebrant (Silverlode) 강은 Lórien 나라의 경계 안에 있었으며, Gondor 왕국의 (Anduin 서쪽의) 북쪽의 유효 범위는 Limlight 강이었다. 이전에 Lórien의 삼림지대가 더 멀리 남쪽으로까지 걸쳐있던 Silverlode와 Limlight 사이의 초원 전체는, Lórien에서는 Parth Celebrant (즉, Silverlode의 벌판 혹은 울타리로 둘러진 초원)로 알려졌고, 비록 그곳의 요정 민족은 그 숲의 처마 너머에서 살지는 않긴 했지만 그 나라의 일부로 간주하였다. 더 뒤의 시절에 Gondor는 Limlight의 상류에 다리를 건설하고, 그곳의 동쪽 방벽의 일부로서 Limlight 하류와 Anduin 사이의 그 좁은 땅을 종종 점유하였으니, Anduin의 (그 강이 Lórien을 지나서 빠르게 흘러내려와, Emyn Muil의 협곡 안으로 다시 하강하기 전에 들어오는 낮고 평평한 땅의) 커다란 굽이들에는 과단성 있고 잘 무장한 적이 뗏목이나 배다리로 무리하게 건널 수 있는 얕으면서 넓은 모래톱들이, 특히 북부와 남부 Undeep(안 깊은 곳)들로 알려진 두 개의 서쪽을 향한 굴곡부들에서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Parth Celebrant란 이름이 Gondor에서는 이 땅에 적용되었던 것이었는데, 그러므로 그것이 사용된 것은 고대의 북쪽 경계를 정의하는 데에 있었다. 반지 전쟁 무렵에는, (Anórien을 제외한) Limlight까지의 백색산맥 북쪽의 모든 땅이 Rohan 왕국의 일부가 되었을 때, Parth(벌판) Celebrant란 이름은 오직 청년 Eorl이 Gondor의 침략자들을 섬멸하였던 저 위대한 전투에 대해서만 사용되었다 [여기를 보라].

    또 다른 평론에서 내 아버지는, Lórien의 동쪽과 서쪽은 Anduin과 저 산맥에 의해 경계를 이루었는데 (그리고 당신은 Lórien이란 나라가 Anduin 건너로 조금이라도 확장한 것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시는데, 여기를 보라) 반해, 북쪽과 남쪽으로는 명확하게 정의된 경계선이 없었다고 적으셨다.

옛적에 Galadhrim은 Frodo가 씻긴 곳인 Silverlode의 그 폭포까지의 숲을 자신들이 다스린다고 주장했었는데, 그곳은 남쪽으로는 Silverlode 너머 멀리, Fangorn 숲으로 서서히 변하는 좀더 작은 나무들로 된 보다 광활한 삼림지대로까지 걸쳐있었으니, 비록 그 나라의 심장부는 Caras Galadhon이 서있는 Silverlode와 Anduin 사이의 모퉁이에 있었지만 말이다. Lórien과 Fangorn 사이에는 눈에 보이는 경계선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Ent들도 Galadhrim도 한번도 그곳을 지나가지 않았다. 전설에서는 고대 시절에 Fangorn이 몸소 Galadhrim의 왕을 만나, ‘나는 내 것을 알고, 당신은 당신 것을 아니, 어느 쪽도 다른 쪽의 것을 범하지 말도록 합시다. 하지만 만일 요정 하나가 즐기기 위해 내 땅을 걷기를 바라게 된다면 그는 환영받을 것이며, Ent 하나가 당신 땅에서 보이게 된다면 악을 염려 마시오.’라고 말했었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Ent 혹은 요정이 다른 쪽 땅에 발을 들인 이래로 오랜 세월이 지나갔다.


부록 D
Lond Daer 항도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에서는 제이 시대 십칠 세기 말기에 Eriador에서의 Sauron에 대항한 전쟁에서 Númenor인 제독 Ciryatur는 ‘Númenor인의 작은 항만이 있는’ Gwathló (Greyflood)의 하구 기슭에 강력한 병력을 두었다고 전한다(여기). 이것이 그 항도에 대한 첫 언급이 될 듯 싶은데, 나중의 저술들에서 이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들이 전한다.
    가장 충만한 해설은 Amroth와 Nimrodel의 전설과 관련되어 이미 인용되었던 강들의 이름들에 관한 문헌적인 평론에 있다(여기). 그 평론에서 Gwathló란 이름은 다음과 같이 논의된다.

Gwathló 강은 ‘Greyflood’로 번역된다. 하지만 gwath는 구름이나 엷은 안개로 인한 어둑한 빛의 의미에서의, 혹은 깊은 계곡에서의 ‘그늘’이라는 Sindarin 단어이다. 이것은 지리학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 Gwathló에 의해, Númenor인들에게서 Minhiriath (Baranduin과 Gwathló ‘강들 사이’) 와 Enedwaith (‘중간민족(Middle-folk)’)라 불리는 지역들로 나뉘는 그 광대한 땅들은 대개 트이고 산이 없는 평원 지대였다. Glanduin과 Mitheithel[Hoarwell(희뿌연샘)]의 합류 지점에서 그 땅은 거의 평지였고, 그 강물은 완만하게 되어 소택 저지대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 비탈은 Tharbad 아래로 백 miles 쯤에서 증가하였다. 그러나 Gwathló는 결코 빠르지 않았고, 보다 작은 흘수의 배들은 Tharbad까지 어렵지 않게 범주하거나 노 저어갈 수 있었다.
    Gwathló란 이름의 기원은 역사 속에서 찾아내어야만 한다. 반지 전쟁 무렵에 그 땅들은 여전히 여러 곳에서, 특히 Minhiriath에서와 Enedwaith의 남동쪽에서 여전히 나무들로 잘 우거져 있었으나, 그 평원의 대부분은 초원이었다. 제삼 시대 1636년의 대역병(Great Plague) 이래로 Minhiriath는 거의 완전히 비워졌으니, 소수의 비밀스러운 수렵민족이 그 숲에서 살긴 했지만 말이다. Enedwaith에서는 Dunland인들(Dunlendings)의 잔존자들이 동쪽에 있는 안개산맥의 기슭의 언덕들에서 살았는데, 꽤 엄청난 수지만 미개한 어민들이 Gwathló와 Angren (Isen) 하구들 사이에서 거주하였다.
    하지만 더 이른 시절인 Númenor인들의 첫 탐험 무렵에는 그 상황은 아주 달랐다. Minhiriath와 Enedwaith는, 대 소택지(Great Fens)의 중심 지역을 제외하고는, 광활하면서 거의 계속 이어지는 숲들로 메워졌다. 뒤이어 일어난 변화들은 Gil-galad와 우정과 동맹을 이룬 뱃사람왕(Mariner-king) Tar-Aldarion의 사업에 크게 기인하였다. Aldarion은 Númenor를 위대한 해군국으로 만들기를 바라며 목재에 크게 허기져있었는데, Númenor에서의 그의 벌목은 커다란 불화를 야기하였다. 그 해안을 따라 내려가던 항해에서 그는 거대한 숲들을 놀라워하며 보았고, Númenor인이 완전히 통제하는 새로운 항구 용지로 Gwathló 어귀를 선택하였다 (Gondor는 물론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서 그는 거대한 작업을 시작하였으니, 그것은 그의 시절 이후로 계속 연장되었다. 이 Eriador로의 진입은 나중에 Sauron에 대항한 전쟁에서 (이 시대 1693–1701년) 막대한 중요성을 입증하였으나, 그곳은 목재항이자 선박 건조 항만이 그 기원이었다. 그 토착민들은 꽤 엄청난 수였고 호전적이었지만, 중심적인 지도부 없이 산재한 공동체들로 된 숲 속의 거주자들이었다. 그들은 Númenor인들을 경외하였지만, 그 벌목이 황폐화하게 될 때까지는 적대적으로 되지는 않았다. 그때 부터 그들은 할 수 있을 때면 언제나 Númenor인들을 공격하고 습격하였고, Númenor인들은 그들을 적으로 대하며, 보호나 새로 심는 데에는 일고의 여지를 주지 않은 채, 사정없이 벌목하게 되었다. 그 벌목은 먼저 Gwathló의 양쪽 둔덕들을 따라 되었고, 목재는 그 항구 (Lond Daer)로 떠내려왔으나, 이제 Númenor인들은 Gwathló에서 북쪽과 남쪽의 숲들로 장대한 궤도와 도로들을 놓았고, 생존한 토착 민족은 Minhiriath에서, Baranduin을 설사 건널 순 있었을지라도 저 요정민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건너지 못하고, 그 하구 남쪽의 Eryn Vorn이라는 거대한 갑의 어두운 숲으로 달아났다. Enedwaith에서 그들은 훗날의 Dunland인 동쪽의 산맥으로 피난하였는데, 그들은 Isen을 건너지도, Belfalas 만의 북쪽 후미를 이루는 Isen과 Lefnui 사이의 거대한 곶으로
[Ras Morthil 혹은 Andrast이니, 여기의 주해 6을 보라] 피난하지도 못했으니, ‘Púkel인들’ 때문.... [이 구절의 계속을 위해 여기를 보라.]
    Númenor인들에 의해 황폐된 곳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땅들은, Lond Daer의 조선소들과 그 외 다른 데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Númenor 본국을 위한 그들의 주요한 목재 공급원이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뱃짐들이 바다를 건너 서쪽으로 갔다. 그 땅들을 벌거벗기는 일은 Eriador에서의 전쟁 동안에 증가되었으니, 그 망명한 토착민들이 Sauron을 환영하고 저 바다의 인간들(Men of the Sea)에 대한 그의 승리를 바라였던 것이었다. Sauron은 그 거대한 항구(Great Haven)와 그곳의 조선소들이 적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이들 Númenor를 미워하는 이들을 자신의 침략자들을 위한 첩자와 길잡이들로 이용하였다. 그는 그 항구의 성채들에 대한, 혹은 Gwathló의 둔덕들을 따라가는 어떤 강습에라도 할애할 정도로 병력이 충분치는 않았지만, 그의 침략자들은 숲에다 불을 놓고 다수의 Númenor인들의 거대한 재목 저장소들을 태우며, 그 숲들 주위에서 수많은 대소동을 벌였다.
    Sauron이 마침내 패배하고 Eriador 동쪽 밖으로 몰아내졌을 때에는, 그 옛 숲들 중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Gwathló는 나무는 없지만 경작되지 않은 황무지인, 양안 위의 멀고 드넓은 땅을 지나 흘렀다. 그곳이 작은 보트들로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모험에 나섰던 Tar-Aldarion의 배의 대담한 탐험가들에게서 그 이름을 처음 받았을 때에는, 그곳은 그렇지 않았다. 소금기 공기와 세찬 바람의 그 바다를 향한 지역을 지나자마자, 숲이 그 강의 양안으로 끌려 내려왔고, 그 강물은 폭이 넓었음에도 그 높다란 나무들이 커다란 그림자들을 그 강 위로 던졌으니, 저 모험가들의 보트들은 그 아래에서 미지의 땅으로 조용히 살그머니 다가갔다. 그래서 그들이 그것에 준 첫 이름이 ‘그늘의 강(River of Shadow)Gwath-hîr, Gwathir 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들은 거대한 소택 저지대가 시작하는 데까지 북쪽으로 뚫고 나갔는데, 아직 훨씬 전이었음에도 불구, 그들은 두 왕국(Two Kingdoms) 시절에 Tharbad가 서있게 되는 부지에 거대한 항도를 만드는, 배수로와 제방 건설 같은 거대한 작업을 착수하는데 필요한 혹은 충분한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그 소택 저지대에 사용한 Sindarin 단어는
[‘젖은, 스며든, 습지의’를 의미하는 어간 log-로부터인] loga의 더 이른 이었는데, 저 북쪽에 있는 산들에서 내려와, Bruinen [Loudwater(시끄러운물)]과 Glanduin의 강물을 모아 저 평원에다 그 넘치는 물을 쏟아내는 Mitheithel을 그들은 아직 알지 못한 채, 처음에는 그곳이 그 숲강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Gwathir라는 이름은, 소택지에서 오는 그늘진 강 Gwathló로 바뀌었다.
    Gwathló는 Númenor에서 뱃사람들 이외의 다른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Adûnaic으로 번역된 소수의 지명들 중 하나였다. 이것이 Agathurush였다.

Eä of the Ring    * Glanduin (‘경계선강’)은 Moria 남쪽의 안개산맥에서부터 흘러내려와 Tharbad 위에서 Mitheithel와 합류하였다. 반지들의 제왕의 원래 지도 상에서는 그 이름은 표시되어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 책에서는 부록 A (I, iii)에서만 한 번 나온다). 1969년에 내 아버지는 Pauline Baynes 양에게 (위의 여기 주해 18에서 언급된) ‘Edhellond’, ‘Andrast’, ‘Drûwaith Iaur (옛 Púkel땅)’, ‘Lond Daer (유적)’, ‘Eryn Vorn’, ‘Adorn 강’, ‘Swanfleet(백조후미)’, 그리고 ‘Glanduin 강’이라는, 그녀가 장식한 중간대륙의 지도에 포함시킬 약간의 추가적인 이름들을 전달하셨던 듯 하다. 이 이름들 중 마지막 세 개가 그 무렵에 그 책에 딸린 원래 지도에 써넣어졌지만,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나는 알아낼 수 없었는데, ‘Adorn 강’은 올바르게 놓인 반면, ‘Swanfleet’와 ‘Glandin 강’[원문대로]은 Isen의 상류에 잘못 놓여 있다. GlanduinSwanfleet라는 이름들 간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위해 여기를 보라.

또한 Lond Daer와 Tharbad의 역사가 Glanduin이란 이름에 대한 논문에 있는 바로 이 평론에서 거론된다.

Glanduin이란 ‘경계선강’을 의미한다. 그 강은 Eregion의 남쪽 경계이었으므로, 그것이 (제이 시대에) 처음으로 주어진 이름이었는데, 예를 들면 Dunland인들의 조상들 등 Númenor인 이전 사람들이자 일반적으로 비우호적인 민족들이 그 너머에서 살았다. 나중에 그것은, Mitheithel과 합류하여 형성한 Gwathló와 함께 저 북왕국(North Kingdom)의 남쪽 경계를 이루었다. 그 너머 땅인 Gwathló와 Isen (Sîr Angren) 사이는 Enedwaith (‘중간민족’)이라고 불렸는데, 그곳은 어느 왕국에도 속하지 않았고, Númenor 태생의 사람들의 어떤 영구적인 정착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를 통해서 말고는 두 왕국 간의 주요한 통신 노선이었던 저 장대한 남북 도로(North-South Road)가 그곳을 통과하여 Tharbad에서 Isen 여울 (Ethraid Engrin)까지 이어졌다. 북왕국의 쇠퇴와 Gondor에서 일어난 재난들에 앞서, 실로 삼 시대 1636년의 대역병의 도래 때까지, 양 왕국은 이 지역에서 이권을 공유하였고, 함께 Tharbad의 다리와, Minhiriath와 Enedwaith의 평원 지대에 있는 소택지를 건너 Gwathló와 Mitheithel의 양편에서 거기까지 도로를 연장하여 긴 방죽길들을 건설하고 유지하였다.* 상당한 수의 주둔군, 뱃사람 그리고 기술자들이 제삼 시대 십칠 세기까지 그곳에 두어졌다. 하지만 그때부터 죽 그 지역은 빠르게 쇠퇴기에 빠져들었는데, 반지들의 제왕의 무렵 훨씬 전에 황량한 소택 저지대로 되돌아갔다. Boromir가 Gondor에서 Rivendell까지 대 여행을 하였을 때에 — 이에 요구되는 그 용기와 대담성은 그 글에서는 알아보기가 충분치 않다 — 그 남북 도로는 허물어져 가는 그 방죽길들의 잔여물들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이를 통한 Tharbad로의 모험적인 접근은, 점점 적어지는 둔덕들 위의 유적과, 그 다리의 유적에 의해 형성된 위험한 여울을 찾아내야지만 달성되었을 것인데, 만일 그 강이 거기서 느리고 얕지 않았다면 건널 수가 없었을 것이다 — 하지만 폭이 넓었다.
    Glanduin이란 이름이 적어도 기억되었다면, 그곳은 Rivendell에서만이었을 것인데, 그것은 그 강이 빠르게 달리는 그 상류에다만 적용되었을 것이니, 그 강은 곧 그 평원 지대에서 길을 잃어, 습지, 못 그리고 작은 섬들의 망상조직인 그 소택지에서 사라졌는데, 그 거주자라고는 백조 무리와 다른 수많은 물새들뿐이었다. 만일 그 강이 어떤 이름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Dunland인들의 언어였다. 왕의 귀환 VI 6에서 그것은 간단히 ‘백조들의 습지대(Waterlands of the Swans)’ Nîn-in-Eilph로 내려가는 강으로서 Swanfleet (그냥 강이 아니라) 의 강이라고 불린다.

    * 그 왕국들의 이른 시절에는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의 (거대한 군을 제외한) 가장 신속한 노선은, 바다를 통해 Gwathló의 어귀의 머리에 있는 그 고대 항도로, 이어서 Tharbad의 하항으로, 그리고 거기서부터 그 도로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 고대 해항과 그곳의 거대한 부두들은 파괴되어갔지만, 오랜 노동으로 항해에 알맞은 선박들을 받아줄 수 있는 항도가 Tharbad에 만들어졌으며, 그 강 양편에서는 한 때 유명했던 Tharbad의 다리를 지키기 위한 성채가 거대한 토목공사로 거기에 세워졌다. 그 고대 항도는, 유명한 뱃사람왕 Tar-Aldarion에 의해 시작되어, 나중에 확대되고 요새화된 Númenor인들의 가장 초기의 항도들 중 하나였다. 그곳은 (북부의 Lindon과 Anduin의 Pelargir의 사이에 있어서) 거대한 중간 항구(Great Middle Haven) Lond Daer Enedh라고 불렸다. [저자의 주.]
    † 백조라는 Sindarin alph는 복수형으로 eilph인데, Quenya에서는 Alqualondë에서처럼 alqua이다. Eldarin 중 Telerin 어파는 본래의 kwp로 바꿨(지만 본래의 p는 바꾸지 않은 채 두었)다. 중간대륙의 많이 변화된 Sindarin은 lr 다음에 마찰음으로 끝내는 것으로 변했다. 그리하여 본래의 alkwa는 Telerin에서는 alpa, 그리고 Sindarin에서는 (alph를 발음기호로 옮겨) alf가 되었다.

반지들의 제왕의 개정된 지도에서 Glanduin을 그 강의 상류의 이름으로 기입하고, 그 소택지 자체만을 Nîn-in-Eilph (혹은 Swanfleet)라는 이름으로 표시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의도였다. 결국에 당신의 의도는 오해받게 되었으니, Pauline Baynes의 지도에서는 그 하류가 ‘Swanfleet 강’으로 표시돼있고, 한편 그 책의 지도에서는 위에서(여기) 주석을 단 대로 그 이름들이 틀린 강에 놓여 있는 것이다.
    Tharbad는 반지 원정대 II 3에서 ‘파괴된 도회지’라고 언급되는 것, 그리고 Lothlórien에서 Boromir가 Tharbad에서 그 Greyflood의 얕은 곳을 건널 때 자기 말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던 것 (같은 책 II 8)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연대 이야기에서는 Tharbad의 파괴와 버려짐은 대홍수가 Enedwaith와 Minhiriath를 유린하였을 때인 제삼 시대 2912년으로 적혀있다.

    이들 논문들로부터 Gwathló 하구에 있는 Númenor인의 항만에 대한 구상은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가 쓰여졌을 무렵 이래로 ‘Númenor인의 작은 항만’에서 거대한 항구 Lond Daer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은 물론 ‘Aldarion과 Erendis’의 Vinyalondë 혹은 새 항구(New Haven)인데 (여기), 비록 그 이름은 방금 인용한 저 논문들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말이다. ‘Aldarion과 Erendis’에서는 (여기) Aldarion이 왕이 된 후 그가 Vinyalondë에서 다시 시작했던 작업들은 ‘결코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것들이 그를 통해 결코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에 불과함을 의미할 것인데, Lond Daer의 나중의 역사는 그 항구는 마침내 회복되었고, 바다의 강습으로부터 공고히 해졌음을 전제로 하며, 실로 ‘Aldarion과 Erendis’에 있는 바로 그 구절은 Aldarion이 ‘오랜 세월 후의 Sauron과의 첫 전쟁에서의 Tar-Minastir의 위업을 위한 토대를 놓았고, 그의 작업이 없었다면 Númenor의 함대는 자신들의 병력을 제때에 올바른 장소로 가져올 수 없었을 것이다 — 그가 예견했었듯이 말이다.’라고 이어서 전하기 때문이다.
    그 항도가 북부의 Lindon의 항구와 Anduin의 Pelargir 사이에 있어서 ‘거대한 중간 항구’ Lond Daer Enedh라고 불렸다는, 위의 Glanduin에 대한 논문에 있는 진술은 Eriador에서의 Sauron에 대항한 전쟁에서 Númenor인이 개입한 이후로 훨씬 후의 시간을 언급하는 게 틀림없는데, 연대 이야기에 따르면 Pelargir는 제이 시대 2350년에야 세워져, 신실한 Númenor인들의 주요한 항구가 되었던 것이었다.

부록 E
Celeborn과 Galadriel의 이름들

Valinor에서의 Eldar 사이에서의 이름주기 관습에 관한 평론에서는, 그들은 두 개의 ‘주어진 이름들’ (essi)을 가졌으며, 그 중 첫번째는 출생 때 아버지에 의해 주어졌다고 하는데, 이 이름은 느낌이나 형태에서 아버지 본인의 이름을 닮아 일반적으로 그것을 생각나게 하였고, 아니면 심지어는 사실상 아버지의 것과 똑같을 수도 있었으니, 나중에 그 아이가 다 자랐을 때 어떤 구별되는 접두사가 거기에 더해질 수도 있었다. 두번째 이름은 어머니에 의해 나중에, 때로는 훨씬 나중에지만 때로는 출생 이후에 곧 주어졌는데, Eldar의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의 성격과 능력에 대한 통찰력이 있으며, 또한 다수가 예언적인 선견지명이라는 선물을 가졌으므로, 이들 모명들은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더구나, Eldar의 어떤 이든 그들만의 혈족에 의해 주어질 필요는 없는 별명, epessë (‘후명(after-name)’)를 얻어도 되었으니 — 대개가 칭찬과 명예의 칭호로서 주어졌는데, (예를 들면, 언제나 epessë인 Gil-galad로 알려져있는 Ereinion의 경우처럼) epessë는 나중의 노래와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인정되는 이름이 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관계에 대한 내용의 최근 판(여기)에 따라 Aman에서 Celeborn에 의해 Galadriel에게 주어진 Alatáriel이라는 이름은 epessë였는데 (그것의 어원에 대해 Silmarillion의 부록의 kal- 항목을 보라), 그녀는 자신의 ‘부명(father-name)Artanis, 혹은 ‘모명’ Nerwen보다는 그것을 Galadriel이라고 Sindarin으로 옮겨 중간대륙에서 사용하기로 택하였다.
    물론 오직 그 최근 판에서만 Celeborn은 Sindarin이 아니라 Teleporno라는 고위요정어의(High-elven) 이름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형태적으로는 Telerin이라고 진술되는데, ‘은’이라는 요정어 단어의 고대의 어간은 kyelep-로, Sindarin에서는 celeb, Telerin에서는 telep-, telpe, 그리고 Quenya에서는 tyelep-, tyelpe가 되었다. 하지만 Quenya에서는 Telerin의 영향으로 telpe라는 형태가 일반적이게 되었는데, Teleri는 은을 금보다 높게 평가하였고, 은세공인으로서의 그들의 기술은 Noldor에게서 조차 중히 여겨졌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Valinor의 백색나무(White Tree)의 이름으로 TelperionTyelperion보다 더 보통적으로 사용되었다. (Alatáriel 또한 Telerin인데, 그 Quenya형은 Altáriel이었다.)
    처음에 고안된 Celeborn이라는 이름은 ‘은빛 나무(Silver Tree)’를 의미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는데, 그것은 Tol Eressëa의 그 나무의 이름이었다 (Silmarillion 59쪽). Celeborn의 가까운 혈족은 ‘나무이름들(tree-names)’을 가졌으니 (여기), 그의 아버지 Galadhon, 그의 형제 Galathil, 그리고 Númenor의 백색나무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조카딸 Nimloth가 그렇다. 그러나 내 아버지의 가장 최근의 문헌적인 저술에서는 ‘은빛 나무’를 의미한다는 것은 버려졌으니, (인명으로서의) Celeborn의 두번째 요소는 관계명사 ornē ‘나무’로부터가 아니라, 고대의 형용사형 ornā ‘솟아오르는, 키 큰’으로부터 파생되었다. (ornē는 원래는 자작나무처럼 보다 곧고 날씬한 나무들에 적용되었지만, 참나무와 너도밤나무처럼 보다 뚱뚱하고 벌려진 나무들은 고대 언어로 galadā ‘대단한 성장’이라고 불렸으나, 이 구별은 Quenya에서는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고, Sindarin에서는 사라져 모든 나무들이 galadh로 불리게 되었으며, orn은 일반에게 사용되지 않게 되어, 시와 노래들에서, 그리고 사람과 나무 모두의 수많은 이름들에서만 남았다.) Celeborn이 키가 컸다는 것은 여기의 Númenor인의 길이 측정에 대한 논문의 주에서 거론된다.
    Galadriel의 이름이 galadh라는 단어와 가끔씩 혼동되는 것에 대해, 내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Celeborn과 Galadriel이 (주로 숲 요정들이 기원이며 자신들을 Galadhrim이라고 부르는) Lórien의 요정들의 통치자들이 되었을 때, Galadriel의 이름은 나무들을 연상하게 되었으니, 또한 나무 단어가 들어간 것 같아 보이는 그녀의 남편의 이름이 거들은 연상이었는데, 그러므로 고대 시절과 Galadriel의 역사에 대한 기억들이 어렴풋해진 Lórien 바깥의 이들 속에서 그녀의 이름은 종종 Galadhriel로 바뀌었다. Lórien 그곳에서는 아니었다.

    Galadhrim이 Lórien의 요정들의 이름의 올바른 철자라는 것, 그리고 유사하게 Caras Galadhon도 그렇다는 것이 여기서 거론되어야 할 것 같다. 내 아버지는 원래는 요정어 이름들에서의 (현대영어(Modern English)then에서의) th의 소리형을 d로 바꾸셨으니, (당신이 쓰셨던 대로) dh는 영어에서 사용되지 않고 별나 보였던 것이었다. 이후 당신은 그 점에 대해 생각을 바꾸셨지만, GaladrimCaras Galadon반지들의 제왕의 개정판의 발표 후 (최근의 재판에서 그 변화가 이루어졌을 때)까지 정정되지 않은 채 남았었다. 이 이름들은 Silmarillion의 부록에서 alda 항목에 틀리게 철자되어있다. Eä of the 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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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시대의 Galadriel과 Celeborn
Galadriel과 Celeborn에 관하여
Amroth와 Nimrodel
Elessar
주해
부록 A 숲 요정들과 그들의 언어
부록 B 숲 요정들의 Sindarin 지배자들
부록 C Lórien의 경계
부록 D Lond Daer 항도
부록 E Celeborn과 Galadriel의 이름들